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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Feb 06. 2020

17살 때부터 활동가가 되고 싶었어요

전쟁없는세상 김민영 활동가 인터뷰 


영화 <벌새>를 보면 은희가 맨 마지막에 선생님한테 편지를 읽고서 수학여행 버스를 타는 그 순간에 자기 주변을 찬찬히 돌아보는 시선이 있잖아요. 그 시선이 뭔가 내 열다섯 살 때 시선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상을 발견하게 되는 시점이 저한테도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러면 뭉치는 막연하게나마 '내가 사회운동을 해야겠다' 혹은 '활동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청소년 때부터 한 거예요?


저는 17살 때부터 NGO 활동가가 장래희망 란에 항상 있었어요. 


엄마가 활동가였는데 사실 저는 엄마 일에 관심은 없었어요. 그러다가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2008년이었는데 한참 촛불집회를 하고 경찰은 광화문에서 명박산성을 쌓고 이럴 때였어요. 저는 그때 서울에 없었거든요. 담양에서 대안학교를 다녔어요. 그때 처음으로 광주를 갔어요, 5월에. 5월 18일을 앞두고 망월동 묘지를 한 바퀴 돌고 그다음에 도청 앞에서 열리는 전야제에 참가를 했는데, 그 문화제가 자연스럽게 촛불집회로 된 거예요. 그때부터 친구들이랑 같이 촛불도 들고, 중간 방학 때는 같이 광화문 촛불집회도 갔어요.


부모님이 활동가인 사람 중에 사회운동을 되게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어요. 


제 주변에도 많아요. 대안학교 출신이다 보니 부모가 활동가인 친구들도 되게 많았거든요. 그 친구들 중에 몇몇은 자기가 방임됐다고 느끼는 친구들도 있어요. 


제가 봉천동 출신인데, 어머니는 봉천동에서 빈곤지역 아이들 돌보는 활동을 하셨죠.


17살 때 뭉치가 꿈꾼 활동가를 모습은 뭉치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상상한 이미지 었겠네요?


그랬던 거 같기도 하고... 근데 저는... 모르겠어요. 추상적이었어요. 어떤 단체에서 소속되어 활동한다는 생각보다는... 저 촛불을 조직하는 사람들이 활동가인 건가 그런 어렴풋한 생각을 했고, 대안학교에서 제가 학생회 자연부 부장을 했는데 몇백 명이 모여서 생활하다 보니까 마을에서 폐를 안 끼치고 어떻게 자연과 공존할 수 있을까, 그런 거를 맨날 고민했거든요. 그래서 어렴풋하게 환경운동가가 되지 않을까... 그냥 뭐라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지금 활동가인데, 꿈을 이룬 거네요?


그렇죠 저 그래서 되게 감격스러워요. 그런 거 생각하면. 근데 생각해보면 사실 이미 17살 때부터 활동가였는데 나는 그때 활동가가 될 것이랄 고 생각했지 당시 하던 일을 활동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런 궁금증을 취직하고서야 갖게 됐어요. 


NGO 단체에 취직했을 때 처음에는 마냥 좋았던 거 같아요. 너무 신났어요. 저는 광장에 나가서 피켓 들고 소리치고 이런 일을 일상적으로 하고 거기 나가서 사람들이랑 부대끼는 걸 좋아했는데, 그 일은 언제든지 같이 하고 고민할 수 있는 동료들이 생겨서 되게 꿈같았고, 심지어 돈을 줘요, 그 일을 하면. 그게 너무 뭐라고 해야 하지, 되게 신기했어요. 


병역거부로 감옥 갔을 때 한 번은 비리 공무원이 같은 방에 있었는데, 대추리 투쟁으로 재판받으러 다니는 저한테 그랬어요. 얼마 받고 집회 다니냐고. 자기가 뇌물 받는 사람이라 남들도 다 돈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했던 거죠. 근데 돈 주니까 집회 가는 건 아니지만, 집회 기획하고 조직하고 참가하면서 돈 받은 건 맞네요


그러네. 전문 시위꾼이네, 진짜 



활동가들이 되게 다양한 일을 하는데, 뭉치는 거리에 나가서 현장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부대끼는 이런 일들을 좋아하는 편인가 봐요?


네 그런 일은, 뭐라고 해야 할까, 제가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그런 소스인 거 같아요. 사실 그 일을 맨날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그 전에는 무조건 되는 대로 하자는 편이었는데, 직장 생활하면서는 활동을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맞아요 집회 한 번 하려면 그걸 준비하는 시간은 훨씬 더 길고, 집회 신고부터 프로그램 짜고, 발언자나 공연팀 섭외하고, 음향이나 시스템 대여하고, 현수막이나 손피켓 만들고, 보도자료 만들고... 엄청 많은 페이퍼 작업을 해야 하잖아요. 


그 전에는 다른 활동가들이 깔아놓은 판에 가서 그냥 열심히 소리치고 오는 사람이었다면, 이제는 판을 까는 역할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거예요. 그전에는 고민하지 않았던 포인트가 된 거죠 그게.


무기박람회 아덱스를 반대하는 직접행동에 참가한 날. 이제 그냥 참가자가 아니라 이런 판을 까는 일을 해야 한다.


판을 까는 일을 해보니까 되게 어려웠어요, 저는... 그걸 같이 고민해줄 수 있는 사람이 당시에는 근처에 별로 없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판을 어떻게 깔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잘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잘하고 싶은 일이에요.


사람마다 기질이 다르듯이 활동가들도 다 잘하는 것 하고 싶어 하는 일이 다르잖아요. 어떤 사람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집회에서 사회 보는 일을 잘하는데, 어떤 사람은 남들 앞에 나서는 일은 싫어하지만 무언가를 조사하고 연구하고 이런 일을 잘하기도 하고. 또 기질이나 성향과 상관없이 해야 하는 역할이 있기도 하고.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할 때도 있죠.


저는 그런 역할도 잘하고 싶어요. 이전에 못해봤던 역할이기도 하고, 공부를 하는 것도 스스로 좋아하기도 하고. 


활동가라는 직업을 겪어보니 어떤 게 가장 지겹거나 싫은가요.


할 수 있는 말이 제한되어 있을 때 지겨운 거 같아요. <병역거부: 변화를 위한 안내서>로 세미나 할 때는 너무 재밌었어요.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연결시키고 싶은 일도 많았는데, 막상 단체에서 활동할 때는 이걸 다 지우고 유엔 이야기만 하게 되는 상황이 지겨웠어요.  


그리고 홍보물을 만들 때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억지로 예쁘게 하는 게 싫었어요.


근데 잘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우리 주장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이, 어떻게 우리가 주장하고 포장해야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가질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아요?


저도 그래서 되게 좋아했는데, 하다 보니까 겉치레만 중요하고 알맹이가 빠지는 경우가 생기더라고요. 어쩔 수 없는 건지, 어쩔 수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되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데도 싫더라고요. 알맹이 빠진 느낌이라서 싫었어요. 




최근에 전쟁없는세상으로 이직을 했잖아요. 전쟁없는세상에서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어땠어요?


제안받았던 날이 마침 비폭력 트레이너로 처음 간 날이었어요. 제주로 갔다가 돌아와서 전쟁없는세상에서 진행한 병역거부 상담 교육, 시우님 강연을 들으러 갔어요. 강연 끝나고 나서 뒤풀이 가는 길에 제안을 받은 거였는데, 깜짝 놀랐어요. 깜짝 놀랐는데 그날 밤에 꾼 꿈이 예사롭지 않아서 오늘 무슨 일이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은 했어요.


무슨 꿈 꿨어요? 


똥 꿈이요. 



제안받았을 때 처음에는 되게 감사했어요. 내가 너무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이 나랑 같이 일을 하고 싶다고 제안을 주신 거니까. 그것 자체가 너무 좋았어요.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해서 걱정이 됐어요. 저는 좀 용감한 결정을 한 거예요.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하기로 한 거는. 왜냐면 비폭력 트레이너를 하면서 비폭력 프로그램은 무슨 일을 하는지 조금은 알고 있었고 병역거부도 앰네스티에서 접했던 주제였는데 무기 감시 운동은 전혀 모르거든요. 


전없세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싶어요?


고민을 아직 안 해봤어요. 그냥, 일을 즐기면서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전없세를 거쳐간 활동가들 대부분이 전없세를 통해서 서로 성장했던 거 같아요. 뭉치에게도 전없세가 성장을 촉진하는 기회가 되면 좋겠어요.

 

성장할 수 있겠다는 생각 했어요. 전없세에서 일하는 게 나한테 좋은 기회인 거 같아요. 성장에 대해 목말라했어요. 내가 활동가라는 이름을 달고 뭔가를 같이 배우고 고민할 수 있었던 곳이 전없세였어요. 평화캠프 처음 갔을 때 3박 4일 동안 되게 많이 배웠는데 전없세에서 같이 일하면서 더 많이 배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은 술을 마셨고, 맛있는 비건 식사도 많이 먹었던 평화캠프


저는 관계에서 오는 배움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전쟁없는세상에서는 중요한 의사 결정이 다수결이 아니라 합의에 의한 의사결정을 원칙으로 세우고 있고, 전없세 활동가들이 오래 활동한 사람이나 최근에 시작한 사람이나 항상 서로 존중하고 평등하려고 노력하는 거 같았어요. 


노력은 하지만 완벽하게 평등하지는 않아요. 아무래도 오래 활동한 사람들의 말에 더 무게가 실리죠. 정보나 경험도 더 많고. 완벽한 평등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거 같아요. 어느 조직이든. 


노력이 중요한 거 같아요. 항상 되돌아봐야 하고. 그런 태도를 배울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저는 전없세에서 내가 생긴 그대로 있을 수 있어서 좋았던 거 같아요. 억지로 다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돼서 그게 좋았던 거 같아요. 


예전에는 쉬고 싶을 때 전없세 오는 곳이었어요. 안식처 같은 곳. 그래서 많이 고민했어요. 안식처를 잃을까 봐. 일터가 되어 버리면.  "내가 굳이 여기를 내 안식처로 마련해 놓고...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여기를 가면 좋을까?" 이렇게 엄마한테 물어봤어요. 엄마는 네가 좀 더 더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 가라고 하셨죠. 




10년 전에 활동가를 꿈꿨고 지금 활동가로 살고 있는데, 10년 뒤를 생각해본 적 있어요? 요즘 제가 이런 생각을 많이 해서 궁금해요. 다른 활동가들은 어떨지. 


용석은 예전에 어떤 상상했어요? 10년 뒤 모습을 상상하면서


저는 계속 활동가로 살고 싶었어요. 그래서 서른 살 되었을 때 되게 좋았어요. 어른들이 맨날 "그래 젊어서는 그렇게 사는 것도 좋지. 나이 들면 너도 생각이 달라질 거야" 이런 말을 했는데, 그 말이 다 틀렸다는 걸 내가 증명한 거잖아요. 물론 생각은 많이 달라졌지만 일이 달라진 건 아니죠. 나는 여전히 활동가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저는... 모르겠어요. 재작년 평화 수감자의 날 행사 때 2040년 전없세 신입활동가 모집 컨셉으로 콩트를 했잖아요. 1000명이 지원했다고. 콩트 끝나고 제가 이야기 손님이었는데, 제가 그랬어요. 2040년에 저는 그 1000명 중에 한 명일 거라고. 근데 그거를 빨리 이룬 거잖아요. 이미 20년 후의 삶을 이뤘으니ㅋㅋ


활동가라는 직업을 가져도 되겠구나. 그런 생각을 주변 사람들한테 주는 활동가가 되고 싶어요. 제가 활동가가 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뜯어말리는 사람밖에 없었고, 활동가라는 직업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 엄마는 최근까지도 그렇게 생각하시는지는 모르겠는데, 자원봉사라고 생각하셨어요.


저도 그래요. 저도 최근까지 석사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이, 제가 활동하는 사진 SNS에 올리니까 뭘 하는 줄은 아는데, 제가 이게 직업이라고 말하면 "너 그거 하고 돈을 받아?" 이러면서 깜짝 놀라더라고요. 이 일이 직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 못하더라고요. 근데 저는 '아 평생 저렇게 살아도 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한 활동가가 되고 싶어요. 저렇게 살고 싶으면 살아도 되는구나, 안심을 줄 수 있는 사람. 활동가라는 직업을 택하기 불안하고 다들 현실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도 현실이거든요, 저한테는. 활동가로 살아가는 삶도 충분히 행복하고 금전적인 여유가 없더라도 지속 가능한 삶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친구들한테는 활동가라는 직업을 뭐라고 설명해요?


활동을 하고 있을 때 만난 친구들이라서, 니가 우리 중에 제일 십 년 전 생각했던 모습대로 살고 있다고 말해줘요. 되게 뿌듯했어요. 고마운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만약 잘 아는 친구나 동생, 후배가 활동가를 한다면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어요?


대학생 때만 해도 어디 소속되어야지만 활동가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주변에 의미 있고 소중한 일을 하는 동료 활동가들이 많아서, 마음을 먹었으면 그때부터 이미 활동가라고 생각해요. 저는 직업 활동가를 하지만, 전없세도 팀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다들 직업 따로 있고 전없세 활동을 하잖아요. 저는 그런 사람들을 정말 존경하거든요. 그렇게 하는 방법도 있고, 일상 속에서 실천하는 일, 일상 속에서 균열을 만드는 일이 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직업 활동가가 되고 싶다는 사람은 완전 환영할 거 같아요. 







평화활동가들을 한 명씩 만나 그들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 활동가는 뭉치(김민영)님입니다. 뭉치님은 최근에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저의 직장동료가 된 것이죠. 새로운 동료가 생기는 일은 무척 두려운 일입니다. 새로운 만남은 늘 새로운 긴장이 유발하기 때문이죠. 물론 그 긴장은 우리는 풍성하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에 설레는 일이기도 합니다. 


뭉치 님을 인터뷰 하면서 우리가 만들어갈 긴장이 저와 뭉치 님, 전쟁없는세상 모두에게 설레는 일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반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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