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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Feb 21. 2020

전쟁과 폭력은  인간의 본성 아닌가요?

전쟁을 사유할 때 본성보다 중요한 것

병역거부 운동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는 이런 겁니다.



인류 역사상 전쟁이 존재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전쟁은 인간의 본성이다.



아주 단호합니다. 그리고 편리하기도 한 규정입니다. 전쟁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우리는 전쟁을 피할 수 없는 것이 될 테니까요. 그리고 얼핏 보면 맞는 말 같기도 합니다. 20세기 이후만 살펴보더라도 인류는 제1차 세계대전을 겪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핵무기의 끔찍한 살상력까지 경험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참혹함을 직면하고 반성하고 성찰했죠. 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베트남 전쟁이 일어납니다. 그 뒤로도 걸프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라크 전쟁... 와 진짜, 인간은 전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인 거 같습니다.


전쟁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생각의 바탕에는 『리바이어던』을 쓴 홉스식 사고방식이 깔려있습니다. 홉스는, 자연 상태의 인간은 무질서한 존재이고, 그렇기 때문에 '민안의 만인에 대한 투쟁'과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고 봤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무질서한 상태에서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고 본 것이죠. 지금 우리에겐 홉스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지만 홉스 이전에는 이런 생각은 보편적인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의 인식의 토대에는 '인간은 무리 지어 더불어 사는 존재'라는 생각이 오히려 더 강했습니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인간은 폴리스적(정치적) 동물이다"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전쟁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인식은 홉스 이후, 즉 근대 이후에 들어서야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잡기 시작한 셈입니다.



재난에서 꽃 피우는 이타주의


근대 이후라고 해서 꼭 홉스처럼 생각한 사람들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맨스플레인'이라는 말을 알려 유명해진 레베카 솔닛은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재난을 연구하는 여러 학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물론 재난은 전쟁과 동일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이 과연 무질서하고, 만인이 만인에 대해 투쟁하는 게 자연스러운 모습인지를 논하는 것이라면 재난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연구한 학자들의 이야기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레베카 솔닛은 20세기 초반 샌프란시스코 대지진과 캐나다 핼리팩스의 폭발 사고부터, 비교적 최근의 일인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상륙한 뉴올리언스의 이야기까지, 주로 북미지역의 재난을 살펴보며 그 재난을 마주한 사람들이 어떤 모습을 보여줬는지 이야기합니다.


레베카 솔닛이 연구한 여러 재난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보여준 모습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배려하고, 돕고, 이타적인 행동을 합니다. 집에 있는 음식을 가지고 와 무료 급식소에서 나누고, 건물에 깔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섭니다. 많은 사람들의 편견이나 우려와는 달리 군중은 폭도가 되지도, 무질서가 혼란을 가져오지도 않았습니다. 폭력적으로 굴거나 야만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많지 않았고, 그들은 남들이 야만적으로 행동할 거라 생각하는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정치인, 군인 같은 권력을 가진 엘리트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폭도가 될 거라는 공포에 휩싸인 나머지 상황을 악화시키는 결정을 합니다. 샌프란시스코 지진의 여파로 도시에 불이 났는데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불을 끄는 것을 주방위군이 금지시키면서 지진보다 더 큰 화재 피해를 유발하는 것처럼요. 이런 예시들을 살펴보면, 전쟁 혹은 폭력은 인간의 본성이라기보다는 권력의 속성이라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한 거 같습니다.



당신은 사람을 향해 총을 쏠 수 있나요?


전쟁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말에 대해 반박할 수 있는 이야기가 또 있습니다. 역사학자 박노자는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에서 군인 출신의 군사학 연구자 새뮤얼 마셜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예컨대, 제1차 세계대전 때 처음엔 모든 참전국에서 교회와 정당, 언론이 전쟁을 열렬히 부추겼다. 하지만 실제 전투에서 '용감하게 돌진해서 적을 사살하는 데 열정을 보이는 모범 전사'는 전체 군인의 10%에 불과했다고 한다. 연구의 정확성에 대한 의문은 있지만, 미국의 유명한 군사 연구자 새뮤얼 마셜(Samuel Marshall, 1900~1977)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때 실제로 방아쇠를 당겨 의식적으로 가시권에 있는 적군 병사를 사살하거나 사살을 시도한 미국 군인은 대략 15~20%에 불과헀다.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231쪽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조차 보통의 사람들은 나와 똑같은 모습을 한 인간을 죽이는 것을 굉장히 꺼려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들 중에는 정치적으로 총 쏘기를 거부한 사람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아마 무의식적으로 동종의 인간을 죽이는 것에 거부반응을 보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저 비율이 거꾸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전쟁터에서 군인이라면  적군을 조준 사격할 수 있을 거 같나요? 아마 전쟁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대부분 조준사격을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평화주의자거나 병역거부자가 아니라도 말이에요. 물론 이것을 가지고 인간의 본성은 오히려 전쟁을 반대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건 논리적인 비약입니다. 하지만, 전쟁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은 인간의 일, 본성보다 중요한 것


사실 전쟁이 인간의 본성이나 아니냐를 논하는 것 자체가 저는 의미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은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재난이 아닙니다. 전쟁은 지극히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행위입니다. 정치적인 행위는 정치적인 의도가 있을 뿐이지 그 안에 변하지 않는 본성 같은 것은 없습니다.


무슨 소리냐, 순자의 성악설도 모르냐고 타박하시는 분들도 있겠죠? 그렇다면 이 설명을 한번 봅시다. 신영복 선생님은 동양고전을 설명한 책 『강의』에서 순자의 성악설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순자는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주장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성악설을 그렇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매우 피상적이고 도식적인 이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性은 선악 이전의 개념입니다. 선과 악은 사회적 개념입니다. 따라서 성과 선악을 조합하는 개념 구성은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구나 천과 천명을 부정한 순자의 사상 체계에 있어서 본성이라는 개념이 설 자리는 처음부터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성악설은 인성론이 아니라 순자의 사회학적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강의』412쪽


즉 인간의 본성을 선과 악으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구분이라는 것이 신영복 선생님의 결론입니다. 그리고 본성보다 교육을 강조합니다. 선한 성질은 교육을 통해서 유지하고, 악한 설질은 교육을 통해서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인간들 중에는 전쟁을 좋아하거나 폭력을 즐기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합니다. 반대로 전쟁에 반대하거나 전쟁을 막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본성 뒤에 숨거나 본성에 기대 손 놓고 있을 게 아니라, 전쟁이 나쁘다는 것을 끊임없이 이야기해야 하고, 그럼에도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것을 어떻게 중단시킬 수 있을지를 서로 가르쳐주고 배워야 합니다. 이러한 배움이 인간과 전쟁의 본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입니다.




전쟁을 인간의 본성으로 규정 내리는 태도는 오랫동안 전쟁을 당연한 것으로 만드는 데 일조해왔습니다.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조차도 전쟁을 피할 수 없는 것이라 여기 기도록 만들어버린 것이죠. 이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본성이 악하든, 선하든 우리는 본성대로만 행동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본성이 아닙니다. 인간 사회에 내재된 폭력을 억제하고, 사람들의 이타적인 마음과 태도를 북돋기 위해서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교육이 중요합니다. 전쟁이 왜 일어나고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 분석하고, 막기 위해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간(정치인과 군인)이 일으킨 전쟁을 인간(시민)이 중단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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