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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라소라빵 Dec 02. 2021

갑자기 뜬금없지만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갑자기 뜬금없지만 내일 당장 지구가 멸망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신 적 있나요? <인터스텔라>나 , <투모로우>, <2012>, <설국열차>,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 이런 영화를 보고 난 직후가 아닌 이상 ‘내일 지구가 어떻게 멸망할지 몰라.’라는 상상에 깊게 빠지는 사람은 드물 겁니다. 대부분은 내일 먹을 점심메뉴나 만날 사람, 조금 더 진지한 고민이 있다면 미래설계 같은 것들이 먼저 떠오르겠죠. 매년 가을이란 놈의 인상이 점점 옅어진 것이 느껴질 때면 ‘지구 온난화가 정말 오고 있구나...’하는 실감 정도는 있습니다. 다만 통장에 찍힌 숫자에 대한 걱정을 찍어 누르고 올라오기엔 부족할 뿐이죠. 미디어에 묘사되는 기후위기도 온실가스로 인해 뜨거워지는 날씨와 녹아내리는 빙하,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북극곰 정도로 떠올려집니다.

얼마 전 지구 끝의 온실을 읽다가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저‘지구 멸망’에 대해 조금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된 계기는 국내에서 젊은 작가들이 불어넣었던 일명 ‘SF붐’이나 최근에 봤던 콘텐츠들이 기후위기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한데 있습니다. 뛰어난 창작자들이 제가 좋아하는 인문학과, 페미니즘이 뒤섞인 걸작들을 써 내리자 자연스럽게 기후위기란 녀석을 상상하게 된 것이죠. (영화만으로 충분히 체감하신 분도 있겠지만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기후위기는 조금 피상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후위기를 다루는 SF소설의 여러 모티브 중 저를 가장 두렵게 만든 것은 단연코 ‘페르미의 역설(Fermi's paradox)’입니다. 원자폭탄 설계 팀의 일원이자 이탈리아 출신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Enrico Fremi)는 점심시간 동료와 시시콜콜한 잡담에 빠져듭니다. 대화의 소재는 당시 미국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던 UFO. 대화에 깊게 빠져들다 잠시 우두커니 있던 페르미는 한참 뒤 정신을 차리고는 이런 의문을 내뱉었습니다. ‘다들 어디에 있는 거지?’, ‘우주가 그렇게 광활하다면 우리는 왜 아직도 다른 지적 생명체나 우주 문명과 조우하지 못한 걸까?’ 페르미의 이러한 상상력에 여러 설정으로 답을 준 SF소설은 많지만, 의외로 답은 굉장히 뻔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탄소기반 문명을 구축한 지 수백 년이 되지 않아 기후위기라는 문제에 도달한 것처럼, 수백억 년의 역사를 지닌 우주에서, 이미 출현한 다른 문명은 서로를 발견하기 전에 스스로를 태워 죽인 것일지도 모르는 셈이죠. 차라리 아서 c.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처럼 이미 지적이든 도덕이든 성숙에 가까워진 외계인이 우리가 충분히 성숙해질 때까지 모습을 숨기고 있다는 클리셰를 믿고 싶을 정도입니다.


기후위기를 주제로 인권과 정치적 갈등과 연관된 인상 깊은 상상력을 제공한 다른 작품 중 떠오르는 또 다른 작품 중 하나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입니다. 만인에게 평등하게 주어질 것 같은 폭우라는 기후재난이 부유층에게는 그저 캠핑을 망치고, 그 마저도 잔디가 깔린 넓은 집 앞마당에서 비 오는 날의 캠핑을 즐기게 해주는 하나의 해프닝에 그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소득층에겐 기후위기란 침수로 인해 역류하는 똥물 속에서 앞으로의 생존을 위해 돈이 될 만한 물건을 건저 내야 했던 사투의 현장일 뿐입니다. 1인당 배출하는 탄소의 양은 저소득층에 비해 고소득층이 압도적으로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과 피해는 저소득층의 삶에 직격탄으로 돌아온다는 아이러니는 <기생충>에서 고소득층의 '인디언 캠핑'이란 메타포로 상상력을 보태 상징되기도 합니다. 자연과 조화된 삶을 살아가던 인디언을 정복하고 세계 제일의 탄소기반 문명을 세워 낸 미국. 그리고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로 상징되는 미국은 부유층 자신들이 정복한 인디언의 찌꺼기만 남고 본질은 상실한 시뮬라크르의 홍수 속에서 기후재난을 추억으로 미화시키는 장면은, 기후위기의 원인 제공자와 피해자,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이 전환된 아이러니를 강렬하게 각인시키는 상상력이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기후위기의 책임을 묻는 것은 실타래 풀듯이 간단한 일이 아닐 겁니다. 기후 문제는 결국 우리들이 고민하고 행동해야 될 문제로 남게 되겠죠. 저는 기후전문가가 아니고, 심지어 이 분야를 전공한 사람도 아니지만 굳이 기후 파트를 따로 떼어내 쓰기로 결정한 것은 스스로도 기후위기를 알아가기 위함이기도 하고, 기후위기에 대한 상상력을 공유하기 위함입니다. 한 편의 영화 같지는 않지만, 그렇기에 더욱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는 기후위기에 대한 상상력을요.



좋아요 똑똑한 사람들이 준 시나리오를 읽어봅시다.


앞서 이야기했던 재난 영화는 기후위기가 불러올 미래사회에 대한 상상력을 품고 있습니다. 병충해에 의한 식량난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찾아 은하를 건너 테라 포밍을 시도하는 영화부터 해수면의 상승으로 인해 물에 잠긴 자유의 여신상이 급격히 찾아온 빙하기로 바다에 반쯤 잠긴 채 얼어붙는 상상, 지구의 열을 식히려는 시도가 과학자들의 시도가 뭔가 잘못된 계산 미스로 인해 , 반대로 얼음 행성이 되어버린 지구 위를 끝없이 달리는 설국열차의 상상, 인간에게 치명적인 분진으로 뒤덮인 지구와 인간끼리의 약탈, 그리고 사막화된 지구의 전경 속에 물과 석유를 자원으로 정치적 갈등을 겪는 8기 통 테크노 바바리안들에 대한 상상. 어느 한쪽도 겪고 싶지 않은 암울한 미래지만 똑똑한 사람들이 제시한 시나리오에선, 지금 상태에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모두 동시에 겪어야 될 미래의 모습 중 하나일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시나리오의 개막식 같은 증상 중 하나가 근 2년간 우리의 일상을 갉아먹어 온 팬데믹이라는 녀석입니다.

물 자원 두고 부족단위로 회귀해 정치적 싸움이 벌여지는 8기 통 테크노 바바리안들에 대한 상상력

코로나 팬데믹의 원인으로 지목된 가설 중 하나는 산림벌채, 도로의 건설, 인류 문명의 외연적인 확장으로 인해 삶의 터전의 잃은 야생동물이 도시로 몰려들고, 도시의 높은 인구 밀도로 인해 인수 감염의 형태로 출발했다는 주장입니다. 인수 감염이 전 세계를 물들인 또 다른 사례로 스페인 독감도(1918년에 처음 발생해 2년 동안 전 세계에서 2500만~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 간 독감. 1차에서 세계대전 귀환하던 병사들로 인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있습니다. 당시엔 바이러스를 분리 · 보존하는 기술이 없어 정확한 원인과 과정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한 농장에서 인수 감염을 통해 전파가 시작되었다는 추측이 존재합니다.(익스플레인 : 코로나바이러스를 해설하다, 2020, 넷플릭스 다큐) 비정상적으로 밀집된 인구와 가축의 밀도, 그 비자연적인 환경이 본래 각 종끼리만 전파되는 바이러스를 종을 뛰어넘어 전염시키는 새로운 바이러스 '스페인 독감'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야생동물의 터전을 잃게 한 인간의 외연적인 확장 중 하나인 이주와 운송은 바이러스의 발이 되어 전 세계로 퍼지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양말은 방송에서 자주 '인간이란 생물은 원래 대륙과 대륙을 건널 운명이 아니었는데 감당할 수 없는 발을 얻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합니다. 앞서 이야기 한 매클루언식 미디어 비유를 들어 이야기하면, 인간은 발의 외연적 확장이 극에 달한 나머지 바쁘게 살아야 되는 운명과 스트레스, 그리고 팬데믹으로 인해 오히려 이동이 제한되는 자가 절단을 얻어버렸습니다.     



론 팬데믹은 기후위기가 불러올 여러 시나리오 중 겨우 한 가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2050 거주불능 지구>의 저자 데이비드 월러스 웰스는 칼럼니스트로 활동해온 방대한 레퍼런스를 통해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줄이지 못할 경우 발생할 12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합니다. 가을이 점점 짧아지며 체감이 되고 있는 기온 상승과 해수면의 상승부터 사막화와 기후 변화 복합적인 요인이 불러올 빈곤과 난민 문제, 더욱 자주, 높은 빈도로 발생할 예기치 못할 산불과 재난들, 바다 생태계의 붕괴, 팬데믹 같은 인류가 만나 본 적도, 알지도 못하는 바이러스의 전파, 기후 분쟁의 문제까지. 좀 더 시나리오를 단순화시켜 '1도씩 기온이 상승하면 무슨 일이 벌여질까?'를 제시한 분석도 존재합니다.(6도의 멸종 : 기온이 1도씩 오를 때마다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마크 라이너스, 역자 이한중, 세종서적, 2014.09.25) 기온이 2도 상승하면 가뭄이 지중해 연안과 인도 상당 지역을 강타하고 전 세계 옥수수와 수수 농장이 문을 닫아 세계 식량 공급은 패닉에 빠집니다. (옥수수를 사료로 제공하는 축산 농장을 포함해서요!) 

불량과자 같아지는 식물들의 영양소. 탄소가 계속해서 증가한다면 Helena Bottemiller Evich, "The Great Nutrient Collapse" Politico

심지어 공기 중 이산화탄소량이 늘어날수록 작물의 영양소가 떨어질 것이라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Helena Bottemiller Evich, "The Great Nutrient Collapse" Politico(2017) 당 자체는 늘어나지만 그만큼 건강에 유익한 다른 영양소, 이를테면 칼슘과 단백질, 철분과 비타민 c같은 영양소는 줄어들면서 작품은 불량식품처럼 변하고 말 거라는 주장입니다.


3도가 오르면 4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물 부족을 겪고, 4도가 오르면 적도 지방의 주요 도시는 너무 더운 나머지 사람이 살 수 없는 공간으로 변모합니다. 북위도 지방조차 여름마다 폭염으로 수천 명의 목숨이 위협받고 인도는 32배의 폭염 발생으로 인해 93배 많은 사람들이 위험에 노출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사하라 사막과 근접한 남부 유럽은 가뭄에 시달리게 되고, 카리브해 근방은 21개월 더 오래 지속되는 건기를 겪게 되죠. 북부 아프리카는 더욱 심각해 건기가 60개월, 그러니까 5년간 비를 제대로 못 볼지도 모릅니다. 이런 물 부족으로 고통받는 사람은 기온 상승이 멈추지 않는다면 2050년 즈음엔 아시아에서만 약 10억 명이 될 것입니다.(Charles Fant ,et al ,"Projetions of Water Stress Based on an Ensemble of Socioeconomic Growth and Climate Change Scenarios : A Case Study in Asia", Plos one 11 no.3, 2016) 안 그래도 산불이 잦은 지중해 지역은 2배, 미국은 6배 이상 화재가 늘어납니다. 2017년에 가을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토마스(Thomas)화재는 10만 명에 달하는 피난민을 발생시켰는데, 이런 최악의 화재가 2017년만 해도 캘리포니아 주에선 9천여 건 발생했는데(CalFire "incident infomation 2017) 지구가 뜨거워질수록 최악의 화재가 덮쳐올 확률 역시 동반 상승합니다.


단순한 기온도의 상승이 불러일으킬 시나리오 외에도 생태계 그 자체가 변화하면서 닥쳐올 문제들도 만연합니다. 뜨거워지고 말고를 떠나, 공기 자체도 건강에 나빠질 겁니다. 기온 상승이 불러일으킬 가뭄은 공기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분진 노출(Dust Exposure), 혹은 분진 폐렴(Dust pneumonia)라고 불리는 현상을 일으킵니다. SF소설처럼 온 지구를 유해한 분진이 뒤덮어 분진을 피하기 위해 돔을 덮는 도시 국가가 등장하고, 도시 국가에 속하지 못한 난민들은 방독면을 쓴 테크노 바바리안으로 돌변하여 서로 생필품을 양탈하는 치명적인 상상 속의 결과까지는 아니지만 건조한 공기가 실어 나르는 분진으로 인해 사망률이 2배, 입원이 3배 이상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은 치명적인 재난 중 하나입니다.(Ploy Achakulwisut, et al, "Drought Sensitivity in Fine Dust in the U.S Southwest", Environmental Research Letters 13, 2018) 미디어에도 자주 노출되었던 기후재난으로 인한 피해 중 하나인 산호 백화현상(Coral Bleaching)은 바닷속 생태계의 근원이자 식량 공급원인 황록 공생 조류를 사멸시킴으로 바다 생태계의 순환 시스템에 치명적인 피해를 낳을 것입니다. (Robinson Meyer, "Since 2016, Half of All Coral in the Great Barrier Reef has Died", The Atlantic, 2018)


Shasta Darlington and Donald G. Mcneil Jr. "Yellow Fever Circles Brazil's Huge Cities", New York tim

팬데믹과 같은 바이오 하자드는 바이러스 인수 감염뿐만 아니라 생물을 매개로 한 전염으로도 더 자주 발생할 것입니다. 특히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가 지났는데도 모기의 입은 저의 피를 빼가기 바쁘니 더욱 채감이 되는 영역입니다. 하이마고구스 및 사베테스 속 모기가 일으키는 황열병은 원래 해당 모기가 번성하는 아마존 분지 지역, 혹은 밀림에서만 일어나는 일로 해당 지역을 방문하는 여행객만이 걱정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기후 상승으로 인해 2016년부터 모기의 활동범위가 밀림을 벗어나 산개하기 시작하면서 황열병 역시 아마존 분지를 벗어나 상파울루와 리우네자이루 같은 대도시에도 세력을 확장했습니다. 특히 바이러스에 취약한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판자촌을 중심으로 3천만 명 이상의 사람이 치사율 3~8%에 이르는 전염병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Shasta Darlington and Donald G. Mcneil Jr. "Yellow Fever Circles Brazil's Huge Cities", New York times, 2018) 기후위기가 불러오는 생태계의 파괴와 변화는 모기의 북상과 같이 생각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바이러스를 더욱 빠른 속도로, 더 많이 인류에게 전염시킬 수도 있습니다. 아직까지 존재조차 확인하지 못한 바이러스는 야생 동물에게, 그리고 인수 감염을 통해 극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이런 기후재난 시나리오와 마주할수록 늘어나는 비용도 큰 문제입니다. 다들 겪었던 것처럼 펜데믹이라는 재앙은 단순히 병의 치사율을 떠나서, 사회적 기반과 시스템을 뒤흔들 정도로 거대한 상흔과 비용의 문제를 남겼습니다. 선진국들이 비교적 빠른 속도로 정상화되긴 하였지만 몇 세기 전, 일부 국가가 다른 지역을 식민지 삼아 한껏 누렸던 자산을 바탕으로 되찾은 안정일뿐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늘어나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국가에선 기후난민이 발생하여 정처 없이 세계를 방황하고 있습니다. 2018년에 발표된 세계은행 보고에 따르면 2050년까지 배출량이 줄어들지 않는다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남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이렇게 세 지역만 고려하더라도 기후 난민이 약 1억 4000만 명 이상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Carl-Fried Schleussner, et al,"Armed-Conflict Risks Enhanced by Climate-Related Disasters in Ethnically Fractionalized Countrie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 no. 113)


이렇게 재미없는 수치와 암울한 미래를 늘어놓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끔찍한 시나리오는 똑똑하고 많이 아는 사람들이 이미 어느 정도 내놓았고, 남은 것은 우리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 그리고 '왜 반응하지 못했는지'라는 열린 질문만이 우리의 발치에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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