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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만년필 Aug 27. 2020

아버지의 음악 선물

아버지에 대한 뚜렷하게 좋은 기억

나이가 들수록 오래전 일이 많아진다.


기억의 조각들이란 현재와의 거리만큼씩 다르게 느껴지지만, 하루하루 현실에 부대끼다 보면, 아무리 되새긴들 어제 일처럼 생생할 수는 없고, 아예 없던 일인 듯 묻히고, 우리가 애써 들추어내지 않는 한, 그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일을 겪지만 기억의 영역에서는 대부분 지워지고 만다.


상처가 되는 것들은 더 오래 남고, 좋았던 것들은 쉬이 잊히는 것도 같다.


아버지와의 벽

청소년기를 지나고 언젠가부터 아버지와의 사이에는 벽이 느껴졌다. 대화라고 할 만한 걸 나눈 일이 거의 없었다. 어릴 땐 아빠라고 불렀지만, 좀 컸다고 아빠라고 하긴 부끄럽고, 아버지라고 부르는 건 어색했다. 호칭 없이 바로 용건을 말하게 되고, 실제로 아버지라고 불러본 기억은 뚜렷하지가 않다. 그러고 보면 한 집에 살면서도 굳이 호칭을 쓰지 않아도 크게 불편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 같다.


내가 20대가 되고는 몇 가지 이유로 아버지를 싫어했고, 그 기간이 제법 길었다.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두 아이 아빠가 되었다.


 2010년 1월, 아버지는 큰 수술을 받으신 후 다시 깨어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병원 침대에 앉아 계셨던 것을 뵈었던 것이 마지막이 되었다. 싫든 좋든 내가 태어나 살아온 세상에서는 항상 계셨던 아버지가 이제 없다는 사실도, 돌아가신 과정도, 너무나 충격적이고 급작스러워, 나뿐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는 그 시간을 지나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이상하게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 살아계실 때는 그다지 좋은 기억이 없다고 느꼈던, 그다지 애정을 느낀 적 없었던, 아버지에 대해서 싫다거나 원망하는 마음은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대신 평소에는 한 번도 떠올려 보지 않았던 좋았던 기억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그런 것들을 살아계실 때도 가끔 생각하고 곱씹어보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걸 하는 후회가 몰려왔다.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 와 CD

1992년,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의 ‘November Rain’이란 곡이 대단히 인기가 있었다. 즐겨 듣던 라디오에서도 자주 나왔다. 그런데 8분 57초나 되는 긴 곡이어서 라디오에서는 앞부분을 대략 1분, 뒷부분을 대략 2분 잘라내고는 약 6분 정도로 편집되어 방송에 나왔다. 잘리지 않은 원곡을 듣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당시에는 심의에 걸려 해당 곡이 실린 앨범 ‘Use Your Illusion I’은 우리나라에서 발매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일본에 가신다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께 일본에서 CD를 사달라고 어렵게 말씀드렸다. 어차피 아버지 돈으로 사실 거니까 싶어 부탁을 하는 김에 ‘Use Your Illusion’ 앨범 I, II를 모두 메모지에 적어서 드렸다.

Guns N' Roses 앨범 'Use Your Illusion I & II (1991년 발매)

아버지께서 일본에서 돌아오시던 날 들뜬 마음으로 집으로 갔다. 아버지는 내가 드린 임무를 잘 완수하셨다. 사 오신  CD 2장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첨 갖게 된 CD였다—그전까지 나는 테이프랑 LP만 샀었다—투명한 플라스틱 케이스에서 꺼낸 거울처럼 반짝이는 CD는 아름다웠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사 오신 건 그게 다가 아니었다. SONY 시디플레이어를 같이 사 오셨다.  “얼마나 듣고 싶었으면 시디플레이어도 없는데 시디를 사 오라 하나 싶어서 시디플레이어도 사 왔다.” 하셨다. 나는 언젠가 시디플레이어가 생기면 듣기 위해 아버지께 시디를 부탁했던 것이었다. 그날 내가 얼마나 기쁘고 감동을 받았는지는 설명할 길이 없다.


 밖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가족들에게는 별로 말이 없으시고 엄하신 가부장의 표상이셨다. 유치원부터 계속 반복했던 나의 입학과 졸업 사진에 아버지는 한 번도 없다. 아버지 본인은 스스로 가족들에게 무심하다 생각 않으실까 궁금했다.


아버지는 당신의 아버지를 뵌 적 조차 없어서 아버지 역할이 서툰 것인가 생각도 해보았다. 아버지는 당신이 2살 되던 해 아버지를 여의셨다. 나의 할아버지는, 해방을 한해 앞둔 1944년 일제강점기 때, 2살, 5살, 8살 이렇게 3살 터울의 아들 삼 형제와 아내를 두고 강제징용을 가셨고 얼마 후 유골로 돌아오셨다. 막내였던 나의 아버지는 한 번도 당신의 아버지를 본적도 아버지라는 존재를 겪어본 적도 없으셨다.


 그리움만

  나의 아버지께서는 전혀 갖지 못하셨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나에겐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버지께 감사하다. 아버지는 나와 38년을 함께 해 주셨고, 당신의 아버지에게서는 전혀 받지 못했던 많은 것을 나에게 주셨다. 살아계실 때는 왜 그런 것들을 모르고, 기억이 잘 나지 않고, 기억하려고도 않고, 은혜라고는 모르는 아들로 살았는지 후회스럽다. 살아계실 때 그분을 꼭 한번 안아보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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