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번째 가시밭길
매 순간의 긴장감 때문에 짧은 여행조차도 쉽지 않다는 불안증 환자들도 많다. 내가 밤 비행기임에도 낮에 공항에 도착해야 하고, 그랩을 부르면 도착할 때 맞춰서가 아니라 부름과 동시에 밖에 나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던 것도 결국 이 불안증 때문이었던 거다. 그런데 장박 여행이라고 할 수 있는 장기 거주라니 나의 증세가 극강에 달할 수밖에.
거주를 위해서는 우선 집이 있어야 한다. TM30라는 거주증이 있어야 비자 연장 기한에 맞출 수 있기 때문에 되도록 빨리 1년 동안 머물 집을 구해야 했다. 한국에서 새벽까지 눈이 벌겋도록 했던 집 찾기는 치앙마이에 도착하고도 매일 이어졌다. 물론 속 편한 남편은 그저 옆에 존재만.(분노)
치앙마이처럼 열대지방인 곳은 한국과 반대로 북향이어야 쪄 죽지 않는다. 그리고 집 구할 때의 기본 요소_물은 잘 나오는지, 에어컨은 방마다 있는지, 방충망은 있는지, 그랩이나 볼트의 접근성은 좋은지, 애들 학교와 가까운지 등_이 모두 충족되면서 사람이 살만한 공간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 조건에 맞지 않는 집은 의외로 많았다. 3층 집에 벽걸이 에어컨만 덜렁 한대 있거나, 방충망 없이 뻥 뚫린 창문이거나 너무 외져서 호랑이가 나온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집.
지금 계약한 집은 리스트엔 없었지만 부동산 에이전트가 곁 달아 보여준 집이었다. 우리 예산을 조금 웃돌고 있었지만 앞서 워낙 해괴한 집들을 봤던 데다 위의 조건을 대충 갖추고 있는 이 집이 그저 좋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던 남편이 내 눈칫밥에 너무 배가 불렀는지 이제 집 좀 그만 보자고 강력 주장을 하고 나선 것이다. 수영을 좋아하는 아이들 때문에 꼭 수영장이 있는 단지에 살고 싶었던 터라 계약을 망설이던 찰나, 집주인이 걸어 5분 거리의 옆콘도에도 집이 있다며 키카드를 줄 테니 거기 수영장을 쓰면 된다는 쿨한 조건까지 내거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간단한 '돈지랄'로 장장 한 달 동안 내 속을 새까맣게 태웠던 집 찾기는 끝이 났다.
막상 들어와 살아 보니 집주인이 유럽풍이라며 자랑하던 벽을 가득 덮은 아이비는 집을 더욱 우중충하게 만드는 주역이었고 동네에서 가장 키 큰 나무가 가장 많다는 것은 매일매일 쓸어도 낙엽이 한 포대라는 의미였으며, 침 튀기며 칭찬하던 6미터가 훌쩍 넘는 캘리포니아산 팜트리는 결국 전문가 없이는 죽은 이파리 하나 떼어내지 못한다는 얘기였지만.
집 정리 후 여유가 생겨 동네를 돌아보니 싱그럽고 윤기 나는 잔디가 잘 가꾸어진 집들이 대부분이고 아이비로 뒤덮여 잔디 한평 제대로 나지 않은 곳은 덜렁 우리 집뿐이었다. 알고 보니 집주인은 캐나다 국적으로 홍콩에 살고 있어 이 집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있었던 거다!
아무래도 이사 후 앞집 사람과 처음 인사를 나눴을 때 '집 괜찮냐?'는 질문이 그냥 빈말이 아니라 '집 꼬라지가 저런데 진짜 살 거냐?'라고 돌려 물어본 말이었던 것 같다.(눈물) 빨리 안착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나의 불안증 때문에 결국 우리는 유럽풍(?) 집에서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
번외>> 차 렌트만큼은 관여하지 않고 전부 남편에게 맡겼는데 불안증도 없는 남편이 결국 데려 온 차는 주행거리 29만 마일에 실내등도 켜지지 않는 진정한 '똥차'였다. 이 사실도 시승 땐 모르다가 집에 와 두어 번 탄 후 계기판을 보고 알게 되었으니, 결코 렌터카 업체의 사기라고만은 볼 수 없을 것이다.
나 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