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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Apr 30. 2024

결혼기념일에...

며느리 돈 축내는 시부모

어느 겨울날 연휴이던 1월 2일
서울의 한 허름한 동네 다방에서 맞선을 보았다. 향긋한 비누냄새를 폴폴 날리며 그가 들어섰다.  할머니와 둘이서  맞선자리에 나갔다. 할머니와 사는 여자가 착해 보여서 결혼했단다(참나 헐~이다). 4계절은 겪어봤어야 했는데 뭐가 그리 급하다고  결혼식날 링거까지 맞으며, 노오란 유채꽃이 온 세상을 물들이던 4월의 어느 날  칠 남매 맏며느리가 되었다. 언제나 지조 있게 남의 편만 들던 그가 내편이 되기까지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다. 청소도 잘하고 빨래도 잘 널어준다. 제발 내편 좀 들어달라고 내편이라 쓴다. 어떤 날은 곁님이라 칭하기도 한다. 오늘은 특별한 날, 님이라 부르리.


님 : 여보!

아내 : 네~

 : 며느리가 톡으로 봉투를 보냈네.

아내 : 그래요. 이상하네. 왜 당신 톡으로 보냈지? 그럼 받기 완료하고 며느리에게 고맙다고 톡 하세요.


다들 아시겠지만 참 편리한 세상이다. 굳이 계좌번호 그런 거 몰라도 톡으로 현금을 주고받을 수 있으니. 단 상대방도 나도 연결계좌가 있어야 하고 현금을 사용하려면 그 연결계좌로 다시 송금을 해야 한다.


고맙다는 톡은 했으니 송금 좀 해달라며 외출준비를 위해 폰을 놓고 가버렸다. 폰을 보니 뭔  받기 완료? 뭔 송금? 착각이었다. 본인이  며느리가 코로나에 걸려 힘들어 하자, 맛있는 거라도 사 먹고 힘내라며 얼마 전에 송금을 해주고는 받았다고... 이럴 수가 아침부터 이 양반 엄청난 실수를 했다. 이 일을 어찌 수습할 것인가. 시아버지 면이 말이 아니다. 며느리가 보내지도 않은 돈을...


"보내줘서 고맙다.

그러지 않아도 레스토랑 예약을 해놓았는데 맛있게 먹으마 등등......."


길게도 보냈다.


곧바로 삭제를 했지만 이미 시간이 경과하여 며느리폰에는 그대로 있을 것이다.


아내 : 님아! 님아! 이 일을 어쩔 거래요.

 : 몰라 몰라~~~~

아내 : ㅋㅋㅋ


별수 없이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나 또한 자식이라도 설명하기 참말로 거시기하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며 아들이나 나나 이 황당한 사건 앞에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며느리가 아직 폰을 확인하진 못했다지만 보낸 톡내용은 당연 삭제되지 않았다. 아침부터 시부모의 이런 시추에이션에 대해 우리 며느리는 어떤 마음일까. 괜스레 일요일 아침부터 날벼락을 맞은 기분일까. 며칠 전에도 어머니 한약 지어드시라며 보내주었는데, 그때도 내입이 화근이었다. 아들이 내 건강 때문에 자주 전화를 하기에 걱정하지 말라며 한의원에도 잘 다니고 이번주에는 한약도 먹을 것이니 안심하라 했다. 생각 없는 시모의 발언이었다.


굳이 한약을 먹네 마네 할 필요 없이 조용히 먹으면 될 것을 아들네 부부에게 나 한약 먹을 거니 돈 달라한 격이 되고 말았다. 물론 의도된 것은 절대 아니었지만 우리 며느리 곧바로 현금을 날렸고, 그제야 요 입이 문제구나 싶었다.


"아이고 내가 잘못했다."

"괜스레 말을 해서 너희들 신경 쓰게 하고."

"나 돈 많아,

안 줘도 되는데."


우리 며느리.

"어머니 저도 돈 많아요."

"걱정 마시고 드세요."


어쩔 수 없이 고마운 마음으로 한약을 지어먹고 있는데 그것이 얼마나 지났다고 또 돈 내놓으라고 한 이다. 물론 며느리는 시부모들의 이런 상황이 아니었더라도 선물을 보낼 생각이었다며 미안해하는 우리에게 또 송금을 해주었다. "아가야! 니 시아버지 부끄러워 받기 안 하겠다며 가버리셨다" 하니 받으셔야 한다며 옥신각신 한바탕 소동으로 마무리되었다.


우리 가족은 기념일이나 생일 또는 아프거나, 주고 싶을 때면 톡을 이용해 선물이나 케이크. 글과 봉투 등을 주고받기도 한다. 물론 작년처럼 직접 와서 같이 파티하고 축하해 주며 봉투도 주고 밥도 사주기도 한다. 퇴직 후 생활비 통장관리를 하고 있으나 주로 송금담당이기에 받는 에 대해선 익숙지 못하다. 받는 것은 주로 내 담당이었으니. 어쨌든 우리 며느리는 아니라고 하지만 의도치 않게 줄줄이 며느리 돈을 뜯어내는 시부모가 되어버렸다. 이런 시부모를 며느리들이 모이면 어떤 식으로 성토를 할까. 그러지 않아도 시부모와의 관계에 대해 말들이 많은데 최소한 자식들에게 주면 주었지 부담이 되는 부모는 되지 말자 했는데 상황들이 그리되고 니 좀 더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결혼기념일이었다.




전날 저녁 몇 년 만에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너무 오랜만이라 식당에 가서 나이 먹은 티 내며 버벅거리지 않기 위해 후기를 자세히 살피며 미리 레스토랑앱을 다운로드하여 부메랑 할인권도 챙기고 예약까지 했다. 시아버지의 해프닝(?)으로 인해 점심값까지 확보했으니 토마호크라도 먹어볼까 했으나 다 먹지도 못하겠지만 굳이 이 비싼 걸 먹어야 할까 싶어 우리에게 적당한 킹프라운커플세트를 주문했다. 세트구성은 퀸즈랜드 립아이(꽃등심스테이크)와 투움바파스타, 오렌지에이드와 자몽에이드, 양송이수프 하나와 하나는 가격을 추가하여 샐러드로 변경하고 문제의 사이드 메뉴로는 아침에도 빵을 먹었으니 볶음밥을 선택했다. 그 와중에 옆에서 이미 주문한 사이드 메뉴의 종류인 감자, 고구마 등에 대해 물었고 담당매니저는 알았다며 가버렸다.


여기서 또 착오가 발생했다. 난데없이 볶음밥이 아닌 통고구마가 나왔다. 분명 난 볶음밥을 요청했지만 매니저는 재차 확인과정을 거치지 않고 의 말만 설핏 듣고 통고구마가 되어버렸다. 어쩔 수 없이 볶음밥(7,900원 반공기나 되려나 겁나 비싸다)을 추가했고 매니저는 죄송하다며 부쉬맨 브래드를 넉넉하게 챙겨줬다. 아 오늘 왜 이러지, 나라도 정신 차려야 하는데.


그래도 결재는 똑바로 해야지 싶어 다운로드한 부메랑 할인권으로 만원을 할인받고. 통신사 할인으로 15%를 할인받아 결재하고 주차등록까지 하고는 신이 나서 나왔다. 그런데 뒷골이 싸하다. 역시 직원이 달려 나오며 카드를 가져다준다. 아~ 오늘 부부가 쌍으로 뭐 하는 짓인지. 결혼기념일 두 번 했다가는 또 뭔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꽃다발이 배달되어 오고 우리 나름 잘 살아왔다며 서로를 축하해 주었는데 참 요상스럽게 꼬이는 하루였다. 그래도 생각지 못한 목걸이펜던트까지 선물 받고 기분까지 좋아졌으니 오늘 남은 하루를 그냥 보낼 수는 없다. 작년에도 갔던 수목원에 갔다. 꽃들은 만발하고 푸르름이 짙어져 가는 4월의 신록은 모든 걸 잊게 한다. 매년 는 결혼기념일이지만 그때마다 다짐 또 다짐하게 된다. 더도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다정스럽게 살아가자고.


장성한 자식들의 축하와 고물고물 예쁜 손주들의 커가는 모습들을 보며 함께 가는 길이  괜찮다. 비록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것은 그것대로 인정하며 마음을 내려놓으니 살아진다. 억지로 잘해보려 발버둥 치기보다는 한걸음 뒤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들도 필요했다. 수많은 번뇌와 고행의 시간들이 버무려진 39년의 세월을 건너왔다. 완벽한 인생은 없다. 다만 순간순간 그 시간을 잘 살아내기 위해 마음을 다하려 한다. 서로가 부족한 것은 넌지시 채워주고 아프고 슬플 땐 슬며시 손 잡아주며 그렇게 살아가리라. 가끔은 자식들의 주머니도 축내고 더 많이 채워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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