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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리원 Apr 23. 2024

상하이에서 스친 인연

헤어진 여자친구를 닮았어요

'똑똑'

누군가 방문을 두들겼다. 짧고 묵직한 소리였다.


 이제 막 반주를 곁들인 식사를 하고 호텔방으로 올라온 참인데 누굴까? 방문을 여니 아까 1층 레스토랑에서 헤어진 젊은 가이드가 서 있었다.

한 손에 술병을 들고  한 잔 더 하고 싶다고 했다.  

나와 같은 방을 쓰는 y는 당연히 오케이를 외쳤다.


 곧 옆방 친구들까지 불러내 우리 방에서 술파티를 벌였다.

수다스러운 여자 넷에 남자 가이드 한 명.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말수가 별로 없고 수줍음을 타는 듯 보였다.  슈트를 갖춰 입고 있어서 나보다 살이나 어린 줄은 몰랐다.


 이야기와 술기운이 함께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한 잔 더 하자는 그의 말이 무색하리만치 그는 말이 없었다.  

이곳 상해에 도착한 후, 항저우와 주변 소도시들을 데리고 다닐 때의 그 유창한 말솜씨와 수려하게 읊어대는 한시는 다 외운 것이었나?  


 술이 취해가자 짓궂은 질문이 오고 간다.  

여자친구는 있나부터 시작해  앞으로의 계획 같은 것들.

그는 여자친구와는 최근에 헤어졌고, 자신은 가이드생활 하며 번 돈으로 한국이든 일본이든 유학을 고 싶다 했다. (그는 중국국적 조선족이었다)   


 그러면서 헤어진 여자친구가 나를 닮았다고 했다.  

"그래서였구나.  술 한잔 더 먹고 싶다고 한 게. "

라며 친구들이 야유를 보냈다.



 왜 하필 전 여친이 나를 닮은 거지?  

사진 좀 있으면 보여달라 하니, 그는 낡은 반지갑에서 사진을 꺼냈다.  그리고 친구들의 와하하 하는 웃음이 터졌다.  사진 속 그녀는 결코 예쁜 얼굴은 아니었다. 진짜 너랑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친구들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렇게 상해에서의 마지막 밤이 저물었다.

가이드와는 공항에서 헤어질 때 서로 싸이월드 주소를 교환했다. 그때만 해도 카톡이 없던 2007년이었다.


 그리고 2011년 내가 한창 독박 육아에 치여 살던 그 해 여름. 서울에는 유난히 비가 자주 쏟아졌다. 그 녀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한국에 왔는데 만나고 싶다고.






 내가 사는 동네 전철역 쇼핑몰에서 만났다.  물론 나는 유모차에 두 돌도 안된 아기를 태우고 나갔다.  4년 만에 만난 그는 여전히 말이 없었고 수줍게 인사했다.  


-한국은 원래 이렇게 비가 많이 오

-올 해가 유독 그렇

-아이가 예쁘


 그리고 한참 말이 없던 그는 서울에서 k대에 재학 중이라고 했다. 중국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고. 잘 되었구나~ 열심히 공부해. 그런 얘기들을 늘어놓고 나니 별 할 말도 없어 그렇게 헤어졌다. 지금 와 생각해 보니 그는 아마 내가 아기를 데리고 나올 거라 예상하지 못한 듯하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라는 흔한 말이 있다.

지나가 잊히면 그만인데 왜 인연이라는 묵직한 말을 붙였을까. 스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붙든 말일까.


 어떤 찰나는 의외로 힘이 세다.

스친 시간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새로운 경험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인생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 그러 작은  만남이라도 감사히 여기고  의미를 생각해 보라고, '인연'이라는 거창한 '미련'을 붙여놓 건 아닌지...



 우리 상해 4인방 모임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린 여전히 1년에 한두 번씩 만나 상해 여행 이야기를 꽃피운다. 다들 젊을 때라 술도 많이 마셨고,  술병난 몸으로 악착같이 여행일정을 소화했다. 그땐 몰랐다. 그 여행을 16년째 우려먹으며 추억팔이할 줄은.


 지난 주말도 그녀들을 만나자 자연스레 가이드 이야기가 나왔다. 친구들은 나와 유일하게 카톡 친구로 맺어져 있는 가이드안부를 묻는다.


 "다음 모임에 그 녀석도 부를까?"


그러나 모두들 알고 있다. 부르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미 어딘가로 지나갔다.




 상해의 유명한 야경이라던가, 마시청 서커스라던가, 동방명주 타워 같은 건 흐릿해졌다. 레이 슈트를 입고 넥타이 맨 젊은 남자가 프로처럼 인사하던 모습, 항저우에서 한시를 읊던 모습, 수줍게 말을 아끼던 모습, 내게 중국어 몇 마디를 가르쳐주던 모습이 기억에 선명하다.


 열심히 살던 스무 살 남짓의 중국인 청년이 내게 어떤 영향을 끼친 모양이는지, 난 그 후로 직장 내 토요 강좌 중국어 초급반에 다녔다. 세 달 만에 포기했지만.




 그는 한국 여성과 결혼해 예쁜 딸아이의 아빠로 잘 살고 있다.  한국인 귀화 시험에 두 번 떨어졌다고 소식을 전하는 그의 카톡에 웃었다. 카톡 프사의  단란한 가족사진이 그의 행복을 말해주는 것 같아 왠지 마음이 좋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며 다시 분명해졌다.

어떤 하찮은 인연도 글로 옮기면 특별해진다.

바람의 방향은 바뀌고 온도는 한결 따스해진다.


그저 스칠 뿐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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