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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원 Jul 03. 2023

공모에 당선되는 극본 쓰기 03

당신의 작품은 어떤 작품과 닮아야 한다.  

03. 당신의 작품은 어떤 작품과 닮아야 한다. 


나는 이전 강의를 통해 로그라인이 이야기의 뼈대라면, 주제는 영혼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살? 뼈? 신경? 피? 


아니. 그런 것은 장면, 대사, 지문 등일 테고, 이번에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작품에 입힐 옷에 관한 것이다. 


똑같은 사람일지라도 어떤 옷을 입었느냐에 따라서 멋있어 보이기도, 후줄근하게 보이기도 한다. 또한 미리 멋진 옷을 맞춰 놓으면, 그 옷에 맞게 몸을 관리하며 근육을 키우기도 다이어트를 하기도 한다. 극본도 마찬가지이다. 미리 완성된 모습을 설정해 놓으면, 집필하면서 뺄 것 빼고 넣을 것 넣고, 강조할 것 강조하면서 갈 수 있는 것이다. 


즉, 당신은 당신 정신의 자식인 작품에 어떤 옷을 입힐 것인가 정해 놓음으로써 완성된 뒤 극본을 더 잘 팔릴 수 있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에 입히는 옷이라는 것은 바로 '하이콘셉트'이다. 


하이콘셉트는 보통 우리가 콘셉트라고 말하는 것의 상위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콘셉트라는 개념을 세일즈에 특화시킨 것이 바로 하이콘셉트인 것이다.  


스토리 마켓에서 당신이 스토리 바이어에게 피칭을 할 때 제일 많이 묻고 대답하는 것이 바로 하이콘셉트이다. 왜냐하면, 피처가 캐처에게 공을 던져 도달하는 짧은 시간 안에 바이어에게 당신의 작품을 가장 임팩트 있게 소개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당신이 당신의 작품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이콘셉트의 효용성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정말 중요한 사실은 작품을 소비하는 사청자(관객)들이 작품을 선택할 때 바로 하이콘셉트를 본다는 것이다. 때문에 하이콘셉트는 작품을 홍보하는 문구에서 녹아 있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요즘처럼 온갖 영상물이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시대에서는 더욱더 하이콘셉트가 중요한 것이다.


내가 이렇게 군불을 때 놓으니까 당신은 이제 하이콘셉트가 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 됐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하이콘셉트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하이콘셉트를 다룬 거의 유일한 책 <하이컨셉트-할리우드의 영화 마케팅>라는 책에 의하면, 하이콘셉트는 미국의 상업 영화가 시장에서 수익성을 보장받기 위해서 고안해 낸 개념적 장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이콘셉트가 확실하면 부귀영화가 따라온다는 뜻인 건 알겠다. 근데 대체 하이콘셉트가 뭐냐고.  


그 책이 말하는 하이콘셉트는 이렇다..  


높은 시장성을 보장하면서도, 강한 인상을 줄 수 있고, 그러면서도 쉽게 요약할 수 있는 내러티브.


아, 짜증 난다. 그래서 그게 뭐냐고? 


나도 그 책을 읽을 때 지금 당신과 똑같은 심정이었다. 


그러자 그 책에서는 하이콘셉트를 이런 매칭 게임 형태로 정의해 주었다. 내가 만든 주제 공식과 같은 형태라 사실 적잖게 놀랬다.  


하이콘셉트는 '작품 A가 작품 B를 만나다'이다.  


그 책에서는 이런 식으로 예를 들었다. 


 <터미네이터>가 <더티 해리>를 만났을 때라는 하이콘셉트로 <로보 캅>이 만들어졌고, <에일리언>과 <에어포스 원>이 만났을 때로 <인디펜던스 데이>가 만들어졌다는 식이다.


이렇게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이...


'작품 A가 작품 B를 만나다'라는 공식으로 남이 만든 작품을 규정할 수 있는 거구나. 내 작품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데도 도움이 되겠다. 그리고 피칭할 때 이런 식으로 말해주면 바이어가 지갑을 열어 캐시를 꺼내는데 도움이 되겠다.   


이런 생각들이 마구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알고 있는 작품들에서 하이콘셉트를 뽑아보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워킹 데드>가 <조선왕조 오백년>를 만났을 때, <킹덤>.

<도신 정전자>가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만났을 때, <올인>. - 보통 탈옥해서 복수하는 내용은 거의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롤 모델로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제너럴 호스피텔>이 <셜록 홈즈>를 만났을 때, <닥터 하우스>.

<법정물>이 <굿 닥터>를 만났을 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생각나는 대로 몇 개 적어 봤는데, 여러분도 이런 식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하이콘셉트로 정리해 보기 바란다. 작품을 어떻게 기획해야 하는가에 대한 감을 잡는 데는 최고의 방법이다.  


실제로 할리우드에서 제작되는 블록버스터는 이런 하이콘셉트를 바탕으로 기획된다. 


최근에는 하이콘셉트 기획을 탈피하는 움직임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이콘셉트 기획은 안정된 흥행을 보장하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작품들이 하이콘셉트를 바탕으로 기획된다. 


이렇게 하이콘셉트가 어떤 것인지 알았으니, 이제는 개념을 확실하게 잡아보자. 


사실 작품 A가 작품 B를 만났을 때는 방법론이지 공식이라 볼 수가 없다. 그래서 내가 하이콘셉트 공식을 찾아냈다(나의 취미는 스토리텔링 공식을 찾아내는 것이다). 하이콘셉트 놀이(?)를 즐기고, 하이콘셉트로 드라마를 기획하다 보니까, A가 B를 만나는 매칭 게임에서 규칙을 발견했던 것이다. 


A와 B, 두 개의 작품 중에서 하나는 소재를 담당하고, 다른 하나는 주제를 담당한다는 것. 마치 아이돌 그룹에서 누구는 보컬을 담당하고, 누구는 랩을 담당하는 것처럼 말이다. 


<로보캅>의 하이콘셉트에서 소재적 측면은 경찰이 <터미네이터>처럼 로봇이라는 것이고, 주제적 측면은 <더티 해리>처럼 '무자비한 법집행을 과연 옳은가?'인 것이다. 그리고 <인디펜던스 데이>는 소재적 측면이 '테러리스트가 외계인(에일리언)'이라는 것이고, 주제적 측면이 '대통령이 테러리스트와 직접 싸워 권성징악을 한다'인 것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소재적 측면에서 법정물을, 주제적 측면에서 <굿 닥터>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하나는 소재여야 하고, 하나는 주제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하이콘셉트가 제대로 구현이 된다. 둘 다 소재적으로 접근하거나, 마찬가지로 둘 다 주제적으로 접근하면, 폭망의 지름길임을 명심하게 바란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다. 


자, 이제 내가 만든 하이콘셉트 공식을 영접할 차례. 


하이콘셉트 = 신선한 소재 + 영원한 주제


사실 이야기의 주제는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그 주제들은 오래전부터 스토리를 만드는 데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영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제는 주로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인 생존, 성욕, 식욕, 성공, 사랑, 배신, 승리, 복수 등을 담고 있다. 그리고 주제를 잘 구현하려면, 그 주제에 맞는 플롯으로 전개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플롯이라는 것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주제를 잘 살릴 수 있게 다듬어진 서사 구조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주제를 담당한 작품은, 주제와 더불어 서사구조를 책임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소재에는 그 소재가 갖는 독특한 이야깃거리가 있다. 그것이 주제가 담긴 서사구조를 만나 '특별한 재미'라는 시너지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적절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제임스 카메론은 영화 <타이타닉>을 피칭하는 자리에서 하이콘셉트로 '침몰하는 타이타닉 호에서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했다고 한다. 


느낌이 팍 오지 않는가? 이런 하이콘셉트를 만들어내는 제임스 카메론이야 말로 진정한 선수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신선한 소재는 바로 '타이타닉 호'인 것이고, 영원한 주제는 바로 <로미오와 줄리엣>의 '진정한 사랑은 죽음을 초월한다'인 것이다.


하이콘셉트에서 신선한 소재는 그 자체로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주제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 신선도가 정해지는 것이다.


넷플릭스에서 방영되어 전 세계 1위를 기록한 <오징어 게임>의 하이콘셉트는 무엇일까?


<오징어 게임>에서 신선한 소재는 다름 아닌 어린 시절 추억의 놀이들이다. 그리고 주제는 '서바이벌 게임'의 그것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이 죽거나 남을 죽여야 하는 것은 과연 옳은가'. 즉, '내가 사는 것이 남이 사는 것보다 낫다'이다. 


이것을 풀어서 광고 문구로 만든다면, '어린 시절 추억의 놀이를 가지고 벌이는 피도 눈몰도 없는 생존 게임' 정도가 될 것이다.


영화 <모가디슈>의 하이콘셉트는 무엇일까?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펼쳐지는 남북 동포애 이야기다. 신선한 소재는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인 것이고, 영원한 주제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인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가 한반도에서 진행되었다면 사람들의 흥미를 그렇게 끌지 못했을 거라 생각한다.


이렇게 하이콘셉트에서 사직되어 제작되었거나, 하이콘셉트로 쉽게 파악되는 작품들은 성공할 확률이 높다. 하이콘셉트에서 재미의 절반이 직관적으로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쉽게 하이콘셉트가 파악되지 않은 영화나 드라마는 성공하기 쉽지 않다. 


지난 강의에서 언급했었던 <외계+인>에서 다시 한번 얘기해 보겠다. 


(참고로 나는 최동훈 감독의 열혈 팬이다. 때문에 이런 글을 쓰는 것이 꼭 그를 디스하는 것 같아 마음이 이만저만 아픈 게 아니다). 


이 영화는 하이콘셉트로 기획된 영화가 아니거나, 하이콘셉트를 잘 못 잡은 영화인 것 같다. 하지만 엄청난 돈을 쏟아부은 블록버스터였기 때문에 나는 분명한 하이콘셉트 영화로 만들어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영화를 소개하는 홍보 문구에서도, 감독이나 배우의 인터뷰에서도, 영화를 본 관객들의 얘기에서도, 하이콘셉트를 발견하지 못했다. 


나의 편협하기 짝이 없는 단견이지만, 나는 <외계+인>의 하이콘셉트는 <에일리언>이 <전우치>를 만났을 때여야 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면서 내게 새롭고 재밌었던 것은 외계인과 도술가의 싸움뿐이었다. 


질문으로 만든 로그라인. 도술가의 도술이 외계인의 최첨단 무기와 싸워 이길 수 있을까?


주제. 권선징악. 외계인의 침입에 맞서기 위해서는 현재와 과거 사람들이 몽땅 동원되어야 한다.  


그냥 내 생각일 뿐이다(최감독님은 기분 상해하지 마시길). 


나는 이렇게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내 방식대로 하이콘셉트, 로그라인, 주제를 찾아내는 일을 즐긴다. 


로그라인, 주제, 그리고 하이콘셉트, 이 세 가지 개념은 서로 연결돼 있다. 로그라인에서 주제가 나오고, 그 주제에 어떤 소재를 붙이느냐가 바로 하이콘셉트이며, 하이콘셉트에서 로그라인이 나온다.   


"어떻게 하면 극본을 잘 쓸 수 있나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한 번은 즐기며 보고, 한 번은 분석하며 보라고 조언을 한다. 그러면서 로그라인을 찾고, 주제를 찾고, 하이콘셉트를 찾아보라고 한다. 이게 숙달되면, 한 번 즐기며 보면서도 그런 것들이 저절로 찾아지게 된다. 


이게 숙달되면 극본을 당연히 잘 쓰게 된다. 왜냐하면, 내가 무슨 작품을 쓰는지 잘 알고 쓰기 시작하게 되니까. 당신이 써야 할 작품에서 로그라인과 주제, 그리고 하이콘셉트를 확실하게 알고 있다면, 그깟 몇 장 짜리 시놉시스를 갖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재미있는 스토리를 구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기본 중의 기본이 끝났다.  


이제 극본에 들어갈 차례이다. 


하지만 그전에 하나의 챕터를 추가하고 싶다. 


본격적인 집필에 앞서 여러 당부사항과 집필에 필요한 중요한 팁을 전하는 챕터이다.  


투 비 컨티뉴드.



(구독, 좋아요, 알림 설정, 그리고 응원댓글 부탁 드립니다). 



** 질문 있으시면 기탄없이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른 시간 내에 답글을 달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작업에 도움이 되는 질문은 따로 모아서 나중에 하나의 챕터로도 소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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