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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May 05. 2023

친구 따라 절에 간 사연(상)



고등학교 때 정말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몇 명 있었다. 그중에 한 명이 L이었는데 이 친구가 아주 매력덩어리에 재간덩어리였다. L과는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는데 친하게 된 계기가 같은 학원을 다니면서였다.


2학년에 올라가 처음 L을 보았을 때, 그 친구는 나랑 같은 종족으로 보이지가 않아 데면데면하게 지냈었다. 키가 180cm가 넘고 호감형에다가 축구, 농구, 배구, 탁구 등 운동도 잘하고 활달한 성격에 유머도 넘쳐나서, 운동도 별로 안 좋아하고 조용히 공부만 하는 범생이인 나랑은 완전히 다른 종족이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2학기에 접어들면서 영어와 수학 과목에 은근히 부담을 느낀 나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저녁에 학원엘 다녔는거기서 L을 게 되었다. 그것도 같은 수학 선생님 강의를 들으면서 말이다.


당시 상업고등학교에서는 수학을 거의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대학입시를 위해서는 반드시 별도로 공부를 하여야 했다. 그리 영어 같은 경우는 대학입시뿐만 아니라 취업을 위해서도 필수과목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해도 지나침이 없는 과목이었다.


홍성대의 '수학의 정석'과 송성문의 '성문영어'는 그 당시에도 학원가의 바이블이었다. 문제는 어느 학원의 어느 선생님 강의를 듣느냐 였는데, 인기가 좋은 선생님 강의는 수강하기도 힘들었고 대강의실에 엄청난 수의 학생들이 몰려 집중도가 떨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인기는 덜하지만 학생수가 적은 강의실에서 집중도를 높이는 쪽으로 선생님을 선택하여 수강신청을 하였다. 반면에 L의 경우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찍었다고 했다. 인연이란 게 참 묘해서 그런 과정을 거쳐 나는 L과 친해지게 되었다.


아~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영어 수업은 그냥 들을만했는데 수학이 문제였다. 강의하는 선생님의 입이 얼마나 거친터져 나오는 문장의 거의 20퍼센트가 아주 저질스러웠다. 지금 같았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겠지만 그때는 그런 게 통하던 시절이었다.


강의실에 남학생이 많았지만 여학생도 상당수 있었는데, 수식 설명을 하면서 더하기 빼기를 '박고' '빼고'라던지, 제곱은 '두 번 올라타고' 뭐 그런 식이었다. 괄호를 벗기고.. 벗길 때는 팬티까지 사정없이.. 그런 말을 하기도 했고, 더욱 심한 말을 할 때면 남학생들은 낄낄거렸고 여학생들은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기도 했다.


그게 그 선생님의 인기 비결이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나 같은 범생이한테는 영 아니었다. 안 그래도 어려워서 힘들었던 수학 수업이 더 듣기 싫어졌다. 나와 L은 빈자리에 책가방을 올려놓고 밖에 나와서 군것질을 하거나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노닥거렸다. 가끔은 탁구장에 가서 탁구도 쳤다.

그렇게 놀다가 강의실에 돌아오면 수업은 벌써 마쳐 아무도 없었고 텅 빈 강의실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책가방을 찾아서 집에 돌아가곤 하였다.




사실 L의 재능은 따로 있었는데 바로 여학생들을 꼬시는 것이었다. 훤칠한 허우대에 호감이 가는 인상에 능수능란한 말재간까지, 지난 글에서 담임선생님과 사부님의 콤비 활약을 이야기했었는데 L은 그 1인 2역이 가능한 능력자였다.


주로 친구들과 두세 명 함께 가는 여학생들을 타깃으로 삼았는데, 슬쩍 접근하여 말 몇 마디 하고는 이내 웃으면서 같이 오곤 하였다. 가끔은 퇴짜를 맞기도 하였지만 승률이 거의 팔 할은 되었으니 놀라운 능력임에는 틀림없었다.


한 번은 L한테 그 비결을 물으니, 자기는 여학생들의 얼굴은 안 본다고 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제일 못생긴 애를 집중공략한다고 했다. 보통 잘되는 듯 하다가도 못생긴 애가 산통을 깨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행 중 제일 외모가 처지는 애를 먼저 내편으로 만들어 놓아야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고 했다. 제일 멋진 남자애가 자기한테 호감을 보이는데 어떤 못난 애가 하지 않으랴! 역시 전문가다운 노련한 솜씨였다. 


심지어 언젠가함께 길을 가는데, L이 씩~ 미소를 지으며 누군가를 향해 오른손 손가락 3개를 펴고 흔드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조금 떨어진 어떤 여학생에게 가서는 뭐라고 뭐라고 떠들어대고 나서 우리 쪽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하는 말이 그 여학생들과 3:3 미팅을 하기로 했단다.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가 했더니, 아까부터 눈이 마주친 여학생이 있었는데 L이 손가락 3개를 펴고 '3:3 됐나?' 하고 사인을 주니, 그 애도 손가락 3개를 펴고 '3:3 됐다!' 하더라는 것이었다. L은 이미 말한마디 하지 않고 눈짓 하나로 손짓 하나로 여학생을 꼬실 경지에 도달했던 것이었다.


L덕분에 여학생들과 미팅도 하면서 학원을 즐겁게 다녔다. 남자들끼리만 노는 것보다는 여학생들과 함께 어울려서 노는 게 열배 백배 재미가 있었다. 물론 학원은 꼬박꼬박 다녔지만 수업을 듣지는 못했다. 학원은 그냥 책가방 보관장소이자 활동 근거지였을 뿐이었다. 가끔은 그 지역을 벗어나 먼 곳으로 원정을 갈 때도 있었는데, 그러면 강의실에서 수거되어 당직실에 보관되어 있는 책가방을 밤늦게 찾아서 집으로 돌아갈 때도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고등학교 2학년을 알차게(?) 보냈다.




3학년이 되어서 일(?)이 터졌다. 맨날 공부는 안 하고 엉뚱한 낚시질에만 빠져버린 L의 성적이 바닥을 쳤고, 엄한 L의 아버지께서 극단의 조치를 취하셨다. '이놈은 속세에서 분리시켜 놔야 공부를 할 놈'이라며 절로 보내버린 것이었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취업확인서만 있으면 학교에 안 나와도 되었는데, L의 아버지가 서류를 학교에 제출하고 L을 주지스님과 친분이 있는 절로 보냈다. 대입시험 때까지 절에서 꼼짝 말고 공부만 하라는 엄명과 함께. L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였지만 엄한 아버지를 거역할 수 없었던 L은 그 길로 보따리를 싸서 입산수도(?)의 길을 걷게 되었다.



<계속>





* 글 내용 중 다소 거칠고 부적절한 표현이 있는데 그 당시의 상황을 리얼하게 표현하고자 함이오니 너그러운 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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