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게 그러나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던 중 생각지도 못했던 위기의 순간을 맞았다. 사장님으로부터 규모가 본사의 1/5도 안 되는 자회사로 가라는 권유를 받은 것이다. 사장님은 회사를 한 단계 크게 도약시킬 꿈을 갖고 계셨는데, 그 역할을 수행하기에 내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셨다. 그래서 내 자리에 외부에서 영입해 온 인사를 앉히고, 나를 한직으로 보내고자 하였다. '회사를 그만두던지 아니면 구석에 찌그러져 있던지.' 나는 사장님의 말씀이 그렇게 느껴졌다. 내가 회사에 입사한 지 딱 이십 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때 선택한 베트남. 나는 오기라도 부리듯 새로 신설되는 베트남공장에 지원하였다. 그냥 회사를 물러나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고, 할 일도 별로 없는 자회사에 가서 빈둥대느니 차라리 맨땅에서 발버둥이라도 쳐보자 싶었던 것이다. 언어도 문화도 사고방식도 피부색도 다른 사람들과의 새로운 시작. 그러나 시작부터 위기를 맞았다. 준공식 직전 현지인 작업자들이 전면파업을 일으켰다. 아예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다. 사장님이 오시는 날 아침까지 텅텅 빈 공장. 사장님이 곧 오셔서 현장 순시를 하실 것인데 작업자가 아무도 없다? 그것은 전쟁을 치르기도 전에 뒤에서 날아온 아군의 총알에 비명횡사하는 것을 뜻했다. 베트남에서 뭔가를 보여주기는커녕 그대로 주저앉게 생겼다. 이대로 끝나고 마는 걸까?
삼십여 년의 직장생활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베트남에서의 삼 년 반 동안의 생활. 회사생활 내내 관리직으로 근무하면서, 생산도 설비도 기술도 모르는 사람이 제조공장의 책임자가 되었다. 그것도 낯선 외국땅에서. '신짜오'는 '안녕하세요?' 하는 인사말이다. 처음에 나는 이 평범한 인사가 얼마나 소중한지 몰랐다. 그냥 평온한 상태에서 '신짜오' 하며 인사를 건넬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만큼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고통과 번민의 나날을 보내던 중, 한국의 한 사찰 주지스님이 주신 책에서 만난 글귀, '해보기도 전에 인생을 끝내지 마라.' 그 글귀를 보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리고 앞이 환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래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어. 최선을 다한다면 뭔가 되겠지. 아니더라도 최소한 후회는 남지 않겠지.'그리고내가 할 수 있는 건 인간존중의 정신과 행동으로 보여주기가 다였다. 베트남도 똑같이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닌가? 내가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최선을 다한다면 그들도 언젠가는 알아주겠지.
전에 브런치에 올렸던 글들을 모아 전자책으로 엮었다. 일이란 무엇일까 고민하는 직장인, 조직에서 리더의 역할이 궁금한 직장인, 할까 말까 어떤 일을 할 때 주저하고 망설임이 많은 분들에게 이 이야기를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