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A를 탔는데 에어컨 기능이 최강 기능만 있나 보다. 너무 세게 틀어 놓은 에어컨 때문에 코가 꽉 막히고 어지러워 나중엔 구토증세까지 보였다. 이런 나를 인도인들은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담요를 덮어주고 자신들의 돈으로 밥을 시켜줬다. 그때는 내가 받는 호의가 당연하다 여길 만큼 어딜 가든 친절하고 배려 넘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행 내내 겪었던 어려운 상황들마다 사람들이 있었다. 이 분들 없이 여행을 잘 마쳤을까. 어림없다.
뚜껑을 열어보니 카레에 바퀴벌레가 빠져있다. 건져내고 먹으란다.
‘아이고 머리야.............’
내가 탔던 기차 안의 모습
델리 기차역에서 오토릭샤를 잡아탄다.
“빠하르간즈로 가주세요.”
“응, 10만 원이야.”
( 기차역에서 빠하르간즈까지는 걸어서 가라면 갈 수 있는 거리. 릭샤 아저씨들의 바가지에 걸려드는 관광객들이 생각보다 많다 )
순간 웃음이 터졌다. 그렇지 여긴 인도야.
“아저씨, 나 여기 오래 살았거든요! 왜 이래 진짜?”
아저씨도 염치가 없는지 웃는다.
무거운 몸을 끌고 늘 가던 게스트하우스에 겨우 도착해 샤워를 하려는데 바퀴벌레가 쓱 엄청난 속도로 지나간다. 인도의 바퀴벌레를 보면 한국의 바퀴벌레는 귀엽다. 예전에 나라면 게스트 하우스가 떠날라 가게 소리를 질렀을 테지만, 이제는 인도살이 경력직으로서 바퀴벌레쯤이야. 캐리어 안으로 들어가려 애쓰는 바퀴벌레를 슬리퍼로 툭 쳐서 미끄러뜨린 다음 있는 힘껏 때렸다. 뒤처리는 차마 하지 못하고 사용한 슬리퍼는 그대로 바퀴벌레 시체 위에 두기로 한다.
‘별것 아니네...’
델리에 조금 오래 있어볼 요량으로 집을 구했다. 결단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매번 거절을 반복하다가 부동산 아저씨께 죄송할 때 즈음 드디어 조용한 동네의 한 집이 마음에 든다. 3층 공원뷰, 무엇보다 조용해서 좋았다. 게스트 하우스 생활에 지칠 대로 지친 나는 바로 계약을 하고 얼마 안 되는 짐을 풀었다. 주방으로 가서 엄마가 이사 때마다 하던 절차대로 바퀴벌레 약과 개미 약을 뿌려준다.
그러자,
스스스스스슷스슷스윽스
등골이 오싹하다.
‘이게 무슨 소리지?..’
싱크대 밑으로 손바닥만 한 바퀴벌레 무더기들이 살겠다고 기어 나왔다. 기어 나왔는데 날아다닌다.
'이게 무슨...'
너무 놀래서 어안이 벙벙한데 몸은 첩보원이 임무수행 중인것처럼 신속하다. 이게 바로 생존본능인가.
황급히 주방문을 닫고 나오는데 이번엔 문 밑의 틈으로 살겠다고 기어 나온다.
'그래, 니들도 생존본능이 있겠지, 그러나 어림없다.'
필사적으로 남아있는 바퀴벌레약을 발사했다. 문 안에서는 지금 전쟁통이 따로 없다. 푸드덕푸드덕 날아다니고 어디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고 난리도 아니다. 조금 조용해진 듯하더니 한 마리가 부들부들 나머지 다리를 질질 끌고 문밑 틈으로 나오고 있다. 바퀴벌레 입장에서 보면 이름 모를 갑작스러운 테러에서 역사에 길이남을 위대한 생존자 일 테지만 나에게는 씨를 말려야 할 적일 뿐이다.
크기가 지금까지의 것들 보다도 훨씬 커서 감히 때려잡을 수도 없다. (매미만 했다)
나는 아랫집으로 가서 도움을 청했다. 아주머니가 패기 넘치게 올라가자고 하시더니 상황을 보신 후 내려가자 하신다. 요구르트에 빨대를 꽂아주시며 올라가 있으면 당신 집에서 일하는 친구를 보내주신다고 했다.
요구르트를 다 먹어갈 무렵, '위대한 그녀'가 왔다. 주방문을 쓱 연다. 주방 바닥이 안 보일 지경으로 깔려서 아직 죽지 않은 것들의 다리가 찌릿찌릿 움직인다. 나는 얼굴을 찌푸리고 헛구역질을 하며 난리도 아닌데 그녀는 얼굴색 하나 변화 없이 침착하다. 쓱 보더니 맨발로 들어가 아무렇지 않게 두 손으로 바퀴벌레를 퍼서(이 표현이 맞다) 준비해 온 포대자루에 쓸어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