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은 불사신
“새댁은 침 좋겠다. 신랑이 참 선하게 생겼어. 마누라 말도 잘 듣고 잘하게 보이네.”
신혼 때부터 사람들이 남편과 나를 보면 꼭 하는 말이다. 30년 넘게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 부부를 함께 보는 사람들은 아직도 그런 말을 한다. 여자들만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동성인 남자들도 남편에겐 호의적이라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는다.
부동산 계약을 하러 가면 세입자나 공인중개사나 모두 남편과 이야기를 하길 원한다.
동네 미용실 원장님도 남편의 안부를 묻고 우연히 만남이 이루어진 사람들도 부처상이니 귀인상이니 하며 남편의 선한 인상을 이야기한다. 그게 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보기에도 남편은 인상이 좋으며 실제 성격 또한 그렇다.
반대로 나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옆의 아기가 울면 내가 때린 꼴이 되는 것처럼 남편과 함께 있으면 졸지에 나는 못 뗀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많다.
2011년 12월 2일 새벽, 남편이 갑자기 쓰러졌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신음소리가 들려 화장실에 가보니 쓰러져 있었다. 구급차에 실려 가면서 심정지가 오고 위험한 상황이 되었다. 중환자용 응급실에 실려 들어가고 30분 뒤에 나온 의사는 내게 사망선고나 다름없는 말을 아주 덤덤히 했다..
“30분을 심폐소생술을 해도 환자의 심장이 뛰지 않습니다. 한 번 더 해보겠습니다만 마음의 준비를 하십시오.”
눈물도 나지 않았고 의사의 덤덤한 말투가 나 또한 덤덤하게 만들었다. 그냥 멍하니 캄캄한 새벽하늘만 보았던 것 같다. 그냥 나의 간절함이 남편을 일으키는 데 힘이 되기만을 바랬다.
정확히 28분 후 되돌아온 의사는 또 덤덤히 말했다.
“다행히 심장이 뛰지만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들 수 있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그 위험한 고비를 넘겼으니 오늘 밤 아니 이후의 모든 밤은 분명히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렇게 남편은 7일 만에 깨어났다.
그런데 7일 동안 코마 상태로 있다 깨어난 남편의 첫말은
“고생하시는 간호사님들께 음료수라도 사 와서 나눠드려”
남편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때도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남들에게 덕을 베풀고 착하게 살아서 죽지 않고 살아난 거야”
남편은 살아난 것뿐만 아니라 그 어떤 후유증도 없이 멀쩡히 정말 멀쩡히 살아났다. 병원의 의사 선생님들도 기적이라고 기뻐했다.
다만 아쉬운 것은 2주일 넘게 입원하여 여러 검사를 해도 심정지의 원인을 찾지 못했다.
몸에 이상이 없는 게 좋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 원인을 찾아 치료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맘에 걸리는 채로 그렇게 퇴원을 하고 남편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2020년 2월 28일, 그날은 나의 명예퇴직일이었다.
미리 선생님들과 명퇴식을 하였지만 이제 진짜로 나의 34년 교직생활이 끝나는 날이라 마음도 싱숭생숭하고 하여 쉽사리 잠을 들지 못하였다. 평소 같으면 수면제라도 한 말 먹을까 했지만 그날은 수면제도 다 떨어지고 없어서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신음소리가 얕게 들려오는 것 같아 벌떡 일어나 보니 남편이 옆에 없었다.
거실에 남편이 또 쓰러져 있었다. 또다시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가는데 이번엔 혈압이 마구 떨어지고 산소포화도가 낮아져 겁이 났다. 다행히 의식은 있었지만 이번엔 코로나가 문제였다. 그렇게 위급한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코로나 검사가 우선이란다. 그러다 무슨 일이라도 나면 어쩌나 걱정은 되지만 일단 병원에 왔으니 믿고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놀란 나머지 내가 체온이 높아 보호자로 들어갈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남편은 보호자도 없이 혼자 응급실로 들어갔다.
이번에도 검사를 하니 조금 위험하긴 하지만 별다른 시술이나 처치 없이 약만 복용하면 된다고 하여 남편은 또 그렇게 다시 살아왔다. 원인은 찾았으나 적극적인 치료책이 없이 퇴원을 하면서도 조마조마했다.
2020년 6월 26일,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남편은 늘 점심시간에 밥 먹었냐고 전화를 하는 사람인데 그날따라 전화가 없어 내가 하려던 참이었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라 망설이다 받았더니 남편이 사무실에서 쓰러져서 응급실로 가는 중이란다.
넉 달만에 다시 쓰러졌다니 너무나 놀랐다. 다행히 의식이 있다는 말만 듣고 정신없이 병원으로 달려가니 남편은 또 응급실 침상에서 힘들어하면서도 가까스로 의식을 붙잡고 있었다.
다시 검사를 해보니 조금 위험하다던 혈관이 문제가 되어 시술을 했다. 발견이 늦었다면 정말 위험한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남편은 세 번째 위기를 넘겼다. 이제 시술을 하고 치료를 시작했으니 다시는 이런 일은 없을 것이라 믿고 감사의 마음으로 다시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또 말한다.
“남들에게 덕을 베풀고 착하게 살아서 죽지 않고 살아난 거야. 그것도 세 번씩이나”
기적 같은 일이다, 아니 기적이다.
농담처럼 예수 부활은 명함도 못 내민다고 말했지만 세 번씩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온 불사신 내 남편은 착하게 살아온 복을 받았음엔 틀림없고 너무나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그 착하게 살아온 복은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일까?
남편이 쓰러졌을 때 젤 먼저 발견한 사람은 두 번은 나였고 마지막은 회사의 직원이었다. 만약 늦게 발견이 됐다면 상상하기조차 힘든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위중한 상황에서 남편을 치료해준 많은 의료진들의 도움 등 다른 사람을 통해 그에게 생명의 복이 전해진 셈이다.
하나님 부처님 세상의 모든 신들께 조심스럽게 부탁드립니다.
“이제는 다른 사람을 통해 제 남편에게 복을 주지 마시고 그냥 이대로 편안히 살게만 해주십시오”
이렇게 나는 남편 옆에 있다는 이유 하나로 못 뗀 사람도 되고 또 신들께 협박 아닌 협박을 하는 이상한 마누라까지 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 이름을 풀어보면 나는 복을 주는 여자이다.
그래서 그에게 복을 주는 그녀가 되는 것이 나의 운명임과 동시에 그의 복이 아닐까 싶다. 또한 앞으로도 나는 그에게 마구마구 복을 주며 살아갈 것이고 남편은 착하니 또 그것을 내게도 다시 주고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며 살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복스럽게 살아가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