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순우 Sep 14. 2022

지금 바라보는 달팽이는 사실…

내가 사는 섬에는 달팽이가  많다. 집이 없는 민달팽이부터 납작한 집에 사는 녀석, 봉긋한 집에 사는 녀석, 뾰족한 집에 사는 녀석까지. 아이들은 비만 오면 밖으로 나가 달팽이 사냥을 한다.  근처에는 달팽이나무가 있다. 원래 무화과나무인데 신기하게 비만 내리면  나무에는 가지마다 달팽이가 열매처럼 대롱대롱 매달린다.


바닥을 기어다니는 녀석, 벽을 기어오르는 녀석, 나무에 열매처럼 매달린 녀석까지. 비만 오면 아이들은 눈에 띄는 모든 달팽이를 잡아온다. 한번에 서른 마리도 넘는 달팽이를 잡아 오기도 한다. 마당에 있는 대야에 달팽이를 잔뜩 담아놓고 먹이로 각종 이파리를 넣어두는 아이들. 이렇게 잡으면 뚜껑을 덮어 탈출하지 못하게 한 뒤 한동안 놔두고 관찰을 한다.


서너 시간쯤 지나 뚜껑을 열어보면 말문이 막힌다. 달팽이는 그야말로 똥쟁이다. 그 짧은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똥을 싸는지. 여기저기 검푸른 길쭉한 똥이 붙어있다. 그 똥을 치우는 건 고스란히 내 몫이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 손이 야무지지 못하다 보니 나는 아이들을 대신해 그 똥을 모두 치워야 한다. 치우면서 아이들에게 연신 궁시렁댄다. 왜 이렇게 많이 잡아온 거야. 똥 치우기 너무 힘들어. 이제 그만 놔주면 안 될까? 너네가 똥 좀 치워볼래?


아이들은 마지못해 이제 놓아주겠다고 말한다. 자신들은 똥을 치울 수 없다며. 아쉬워하며 뚜껑을 열어놓으면 달팽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둘 탈출을 시도한다. 달팽이라고 얕보면 안 된다. 생각보다 훨씬 빨리 눈 앞에서 사라진다. 잠깐 한눈이라도 팔면 이미 절반은 사라지고 없다. 나머지 절반이 사라지는 것도 순식간이다. 대체 누가 달팽이가 느리다고 한 거지. 대야라는 작은 세상에서는 이렇게나 빠른데 말이다.


결국 기준은 사람이겠지. 달팽이가 느리다고 결론 지은 것도 결국 사람이니까. 달팽이보다 훨씬 몸집이 큰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달팽이는 한없이 작고 느린 생명체에 불과하다. 사람 간에도 달리는 속도차가 존재하는데 하물며 사람과 달팽이라는 전혀 다른 생명체간에 속도차가 있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


제비들은 가을이 되면 전깃줄에 수십 마리가 앉아 마치 회의를 하듯 쫑알거린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면 감쪽 같이 사라진다. 남쪽나라로 떠나버린 것. 고양이는 독립적인 존재라고 하지만, 마당냥이인 반반이는 우연히 만난 새끼냥이를 며칠동안 지극 정성으로 돌봐주었다. 자신의 젖까지 먹이면서. 둘째가 어린이집에서 두번이나 달팽이를 분양받아온 적이 있다. 첫번째 달팽이에 비해 두번째 달팽이는 어딘가 허술해 보였다. 집에 쏙 들어가지 않은 채 입을 헤벌리고 자는 날이 많고(아이 주먹만한 크기라 실제 입이 아주 잘 보인다!) 야채도 선호하는 것만 주로 먹었다. 달팽이에게도 성격과 취향이 있을 줄이야.


사람이 같은 사람을 이해하는 것도 어려운데, 다른 종을 완전히 이해하는 건 때로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진다. 그런 새로운 동물들의 모습을 마주할 때면 지구에서 내가 이해하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작은가싶어 새삼 고개를 숙이게 된다. 인간의 잣대로 이 동물은 이래, 저 동물은 저래라고 단정 짓기에 동물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아무리 작은 동물도 각자만의 법칙이 있고 일상이 있다. 유전자에 각인된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 건지도 모르지만, 동물들은 정확히 자신의 삶을 알고 그대로 행하며 일생을 보낸다.


손바닥만한 땅을 한참 들여다보면 그 작은 세상 안에서도 수많은 생명체들이 꼬물거린다. 공벌레, 개미, 메뚜기, 노린재 등. 각자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부지런히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는 생명체들을 볼 때면 참 경이롭다. <매혹하는 식물의 뇌>라는 책에서 작가는 식물도 움직인다고 말한다. 움직이기에 해가 있는 쪽으로 가지를 뻗고 영양분이 많은 땅으로 뿌리를 내린다는 것. 다만 속도가 인간이 감지하기에 너무 느릴뿐. 느리다고 해서 움직이지 않는 건 아니다. 생명을 가진 존재는 그렇게 끊임없이 삶을 위해 움직인다. 살아있으려면 움직여야 하는 걸까, 움직이기에 살아있는 걸까.


각자의 속도와 방향대로 나아가는 것뿐인데 우리는 너무 인간의 잣대로 다른 생명체를 재단하고 있는  아닐까. 그러고 보니 같은 인간끼리도 서로의 속도와 방향을 못마땅해할 때가  많다. 마치 지구의 주인이 인간이라는 , 인간의 중심이 나라는 . 그러니 느림의 대명사가  달팽이는 억울할  같다. 자신은 정말 최고의 속도를 내어 움직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테니까. 지금 당신이 바라보는  마리의 달팽이가 실은 달팽이계의 우사인볼트일지도 모를테니까.




글쓰기 모임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글감은 ‘달팽이’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의지와 의무의 글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