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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사랑 Aug 01. 2020

캐나다 초등학교 교실에는 TV가 없다.


 캐나다에 파견근무를 와서 참관했던 첫 수업, 3학년 음악시간. 분명 체육이 아닌 음악시간인데 책상도 의자도 없이 쉴 새 없이 돌아다니던 수업방식도 새로웠지만 내가 더욱 '뜨악'했던 것은 교사가 사용하는 수업매체였다.


OHP 필름에 손으로  수업자료라니!


 필자가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에나 쓰던 OHP 필름 실물화상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TV도 아닌 하얀 칠판에 비추어 잘 보이지도 않는데 자료에 집중하는 학생들이 대견해 보일 지경이었다.

OHP 필름 실물화상기를 사용 중인 캐나다 밴쿠버 초등학교의 3학년 음악수업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한국의 모든 초등학교 교실에는 교사용 컴퓨터와 연결된 대형 텔레비전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계속 업그레이드되어 지금은 교실에 스마트 TV가 들어오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2020 현재에도 캐나다 초등학교 교실에는  흔한 텔레비전  대가 없다.


 캐나다 초등학교에서 매일 아침마다 하는 '모닝 메시지' 시간은 어찌 보면 80년대 한국 초등학교의 모습 같다. 모두가 자리에 앉아 교실 전면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시각적인 자극이 없는데도 조용히 앉아 소리에 집중하는 모습이 한국에서 온 교사에게는 어쩐지 생경하다.


 한국 초등학교의 아침방송은 당연히 '보여주는' 방송이었다. '들려주는' 방송은 학교 방송실 시스템이나 교실 TV에 이상이 생겨 방송사고가 났을 때나 있었던 일이다.


 그렇다면 텔레비전이 없는 캐나다 초등학교의 교실수업은 어떤 모습일까?


 캐나다 초등학교의 수업시간, 교사가 책을 읽어준다. 책 속 작은 삽화가 스무 명이 넘는 학생 모두에게 잘 보일 리 없다.

한국이었다면 삽화를 실물화상기로 비추어 텔레비전에 띄웠을 것이다. 하지만 캐나다 교실에서는 학생들이 교사 앞으로 바짝 모여 앉았다. 교사는 화면 대신 책장을 넘겨가며 책을 읽어주었다.

일명 Carpet time. 의자가 아닌 교실 바닥에 모여 앉아 교사가 책을 읽어주는 시간을 카펫 타임이라고 부른다.


 사회시간도 마찬가지다. 지도를 TV 띄우면 빠르고 정확한데 교사가 칠판에 직접 그린다. 텔레비전 대신 구비되어있는 빔프로젝터와 스크린이 있는데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특히 저학년일수록 더욱 그렇다.


 쉽고 빠르게 사용할  있는 매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아날로그 방식으로 가르치는 걸까. 학령기 아동에게 미디어 노출을 줄이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특별한 교육적 목적이 있다기보다 학교에 미디어기기나 관련 인프라 구축을 위한 기술이나 예산이 부족했던 걸까? 아니면 혹시 교사의 미디어 활용능력이 부족한 걸까?

교사 앞으로 모여앉은 carpet time, 칠판에 지도를 그리고 있는 교사

 한국에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교실  미디어 매체. 정확한 이유는   없지만 캐나다 교실수업에는 미디어 매체의 비중이 아주 낮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매체 대신 그들이 사용하는 수업자료에 관심을 갖고 관찰하게 되었다.


 캐나다 교실에 TV 없지만
교구와 학습 포스터가 상당히 많은 편이다.


 실물자료와 교구가 굉장히 많다. 또 교실의 모든 벽에는 교사가 만들거나 구입하여 붙여둔 학습 관련 포스터로 가득하다. 텔레비전으로 수업자료를 띄우는 대신 자주 필요한 내용은 아예 벽에 붙여두고 가르치기 위함이다.


 모든 과목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실물자료는 단연 책이다. 정해진 교과서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동화책부터 학습내용과 관련 있는 다양한 어린이책이나 잡지 등의 출판물을 수업에 활용한다.


 수학 시간에 사용할 수 있도록 구슬, 블록, 수 모형이 충분하게 구비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과학시간에 연어의 한살이에 대해 공부하는 교실 한 편에서는 연어알을 부화시키고 있었다.


 사회시간에 어떤 나라에 대해 배운 후에 색깔 점토로 조감도를 만들고 그 나라의 기후와 그에 따른 문화 등에 대해 라벨링 하는 활동을 했다.


 이렇게 실물자료를 다양하게 이용하는 캐나다 교실의 수업을 보고 있자니 피아제의 인지발달 이론이 떠올랐다.

  이론에 따르면
 '구체적 조작기' 해당하는 초등학생은 
어떤 개념을 이해하고 형성할  추상적인 방식이 아닌, 구체적인 사물이나 상황을 통해 학습한다.

  사물과의 관계를 통해 개념을 형성하고, 다양한 형태의 조작을 통해 과학적인 사고  문제 해결 능력을 배운다.

 그러므로 초등학생이 무언가를 배울  실물자료를 이용하는 것은 아주 훌륭한 교육방식이다.


그런데 왜 한국 초등학교 교실수업에는 실물자료보다 미디어 매체가 더 자주 사용될까? 미디어 매체 활용 수업에 장점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한국 교실에는 학습에 필요한 실물자료나 교구가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텔레비전 대신 벽에 붙여둔 그림으로 수업을 하는 교사,  수학 시간에 수 모형을 통해 세 자릿수에 대해 공부하는 학생들
연어알을 직접 부화시키고, 색깔 점토로 조감도를 만드는 캐나다 초등학교 교실수업 모습


 그렇다면 왜일까.

캐나다 교실에는 왜 한국 교실보다 실물 교구를 많이 구비하는 것이 가능할까?


 첫째, 캐나다 초등학교에서는  교사가  학년을 오래 맡는다. 교사가 오래 사용할 생각으로 해당 학년에 필요한 자료를 학교 예산으로 혹은 사비로 구입한다. 경력이 쌓일수록 해당 학년 교구가 쌓이고 그것이 교사의 자산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학교에서는 매 년 맡을 학년이 바뀐다. 그렇기 때문에 학기 초에 일 년치 교과과정에 필요한 수업자료를 모두 파악하기가 어렵다. 파악했다 하더라도 일 년치 학습준비물 예산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교사가 사비로 산다 해도 매 년 어떤 학년을 맡을지도 모르는데 1학년부터 6학년까지의 학습준비물을 모두 구비하고 있기도 쉽지 않다.


 둘째, 캐나다 교사들에게 수업 준비만을 위한 시간이 제도적으로 확보되어 있다. Preparation time이라고 불리는 이 시간은 연간 100시간(2014 당시 캐나다 BC Surrey지역). 수 차례의 협상 끝에 정부로부터 보장받게 된 소중한 시간이지만 그들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낀다고 했다. 많은 한국 초등학교 교사들은 방과 후에도 수업과 관련 없는 학교 행사 및 공문서 업무로 바쁘다. 점점 수업 외 업무를 간소화하려는 교육부의 노력이 있어왔지만 방과 후 시간이 수업 준비를 위한 시간으로 보장받기에는 아직 어려움이 있다.

다소 정돈되지않은 것처럼 보이는 교실이지만 책을 비롯한 많은 교구들이 라벨링되어 수납되어있고, 벽에는 작품전시(중앙) 양 옆으로 매일 공부하는 수학 및 사회활동이 게시되어 있다.


 한 때 한국 교육현장에 '클릭 교사'라는 말이 있었다. 디지털기기가 교실 안으로 들어오면서 수업 내내 영혼 없이 클릭만 하는 교사를 꼬집는 말로 쓰였다. 단어의 부정적 의미처럼 수업에 대한 전문성 없이 컴퓨터에만 의존하는 수업을 한다면 큰 문제다. 하지만 윗 문단에서 말했듯이 한국 초등교육 현장은 학습을 위한 모든 실물자료를 확보하거나 준비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교육 현실 속에서 교사가 수업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미디어 매체 및 시청각 자료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한국의 많은 교사들이 다양한 디지털 매체를 수업 속으로 끌어오면서 창의적인 수업을 설계하고 있고, 관련 연수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놓치지 말아야  것은 여전히 초등학생은 구체적 조작활동을 통해 개념을 형성하는 학습자라는 사실이다. 특히 저학년일수록 매체를 통한 간접적인 배움보다 실물을 보고 듣고 만지고 조작할 수 있어야 더 나은 배움이 일어날 것이다. 수업  미디어 매체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야겠다. 학생의 배움이 아닌 교사의 능률만 생각한 방법은 아닌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해당 수업에서 미디어 자료 대신 어떤 실물자료를 사용할 수 있을지, 학생들은 어떤 조작활동을 통해 배울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나아가 어떻게 하면 교사들이 해당 학년에 맞는 다양하고 넉넉한 실물 교구를 확보할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동시에 이루어져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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