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사랑기부제 이야기: [강원도 양구군] 답례품 언박싱 후기
2023년 1월 1부터 고향사랑기부제가 시행됐습니다. 개인이 거주지 외의 희망하는 지자체에 1인당 연간 500만 원 이하 일정 금액을 기부하면 세액공제와 함께 답례품을 받는 제도입니다. 기부액 10만 원까지는 전액 공제, 10만 원 초과분은 16.5%까지 공제를 받을 수 있으며, 기부금액의 30%를 답례품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지자체는 기부금을 지역 주민복리 증진과 지역 활성화에 활용하게 됩니다.
일본 고향세 제도를 알고 있었고, 이를 통한 다양한 지역 활성화 사례를 접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랫동안 논의가 되어온 만큼 시행되면 꼭 참여해보고 싶었다. 올해 1월 1일, 고향사랑기부제가 시행되자마자 기부에 참여했다.
우리나라는 현재 행안부에서 운영하는 고향사랑기부제 종합정보시스템 '고향사랑e음'에서 기부하게 되어 있었다. 시행 초기라서 그런지 시스템에 몇몇 오류가 발생했고, 기부자 입장에서 무언가 확인하려면 클릭할 게 많아서 사용자 경험 측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로그인 과정에서 약간의 버벅거림과 기부가 완료됐는지 바로 확인이 안 되거나 등) 어찌 되었든 강원 양구군에 기부하고 답례품으로 한과세트를 선택했다.
일본에서는 민간에서도 고향세 플랫폼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검색해보니 우리나라도 민간에서 운영하는 고향사랑기부제 플랫폼이 나왔다. '위기브(wegive)'라는 플랫폼인데, '고향사랑e음'과 다르게 사용자 경험이 좋았다. 빠르고 쉽게 기부가 가능했고, 한 페이지에서 내가 원하는 정보(기부내역, 답례품, 배송정보 등)를 파악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해당 플랫폼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지정기부'라는 메뉴였다. 지정기부에서는 내가 원하는 프로젝트에 기부가 가능했다. 기부 당시에는 강원도 양구군 프로젝트만 있었는데, '못난이 농산물 多가치 프로젝트'를 선택했고, 답례품으로 양구 백자 화병을 선택했다.
'고향사랑e음'에서도 같은 답례품이 있었는데, 상세 페이지도 차이가 있었다. '위기브'의 양구백자 화병 상세 페이지에는 작가 이야기, 양구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는지 등 답례품 자체 설명과 함께 답례품과 얽힌 사람과 지역 이야기를 알 수 있었다. 양구백자박물관 레지던시로 시작한 양구살이를 8년째 이어가고 있었다. 양구군 방산면에는 '백토마을'이라는 곳이 있는데, 공방지 분양 및 레지던시 입주 작가를 모집한다고 했다. (지난번에 들렀을 때는 작가 6명이 레지던시에 입주해 있었다. 그중 한 분은 가족과 함께 서울에서 이주하여 3년 정도 양구에서 생활했는데 아주 만족한다고 했다)
안내받았던 시기보다 조금 늦게 배송이 시작되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이 부분도 고향사랑e음과 차별되는 부분이다. 고향사랑e음은 배송 알림을 받지 못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답례품으로 선택한 양구백자 화병이 도착했다. 지금부터 답례품 언박싱 후기를 시작해보겠다. 택배 상자를 열자마자 작가가 직접 손글씨로 작성한 편지가 있었다. 배송이 왜 늦어졌는지, 도자기를 어떻게 제작했는지와 함께 새해 인사가 담겨있었다. 생각지 않았던 손편지는 기분을 좋게 만든다. 같은 답례품을 생산하고, 배송하더라도 이런 작은 부분이 차이를 만든다.
양구백자 화병을 담은 상자를 보호하는 포장은 비닐 완충 포장재(일명 뽁뽁이)가 아닌 종이 완충 포장재였다. 상자는 '이종주의 도자기'라는 아기자기한 스티커로 접착이 되어 있었는데, 작가님은 이런 작은 부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느낌이었다.
실물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고급(?)스러웠다. 나름 식집사로서 집에서 식물을 키우며 여러 화분을 봤는데, 전체적으로 디자인이 심플하면서도 은은한 색깔이 특별함을 주었다. 이번에 선택한 도자기는 화병이라서 크지 않았는데, 식물도 키울 수 있게 여러 크기로 제작되면 좋겠다.
여러 답례품 중에 양구백자 화병은 선택한 건, 양구백자박물관에서 큐레이션을 해줬던 정두섭 관장의 표정이 잊히지 않아서였다. 그는 소위 '덕후'였다. 양구백자 덕후. 양구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우연한 계기로 양구백자를 접한다.
강원도 양구는 조선 백자의 시원지이다. 조선왕조 500년간 왕실백자 생산에 쓰이던 백토를 납품했던 기록이 남아 있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왕위에 오르기 1년 전 양구백토를 이용해 도자기를 빚고, 그 도자기에 왕이 되고자 하는 발원문을 적어 금강산 월출봉에 묻어두었다고 한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2006년 개관 당시, 직원 겸 관장 한 명으로 출발한 박물관은 이후 <도자문화역사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협약해 <양구백자연구소>, 여섯 명의 작가가 입주해 일상생활과 작업을 함께 할 수 있는 <백토마을> 등을 차례로 개관해 지금에 이르렀다.
조선백자의 최고봉은 달항아리라고 힘주어 말하는 정두섭 관장의 오랜 꿈 중 하나는 현재 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이성계 발원 백자>를 양구백자박물관에 영구 전시하는 일이다. 그것은 굉장히 근사한 일인 것으로 여겨진다. 사실 그 백자가 양구백자박물관을 태어나게 만든 거나 마찬가지니까. 어떻게 하면 그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그 꿈은 양구의 오래된 꿈이다.
- 양구피플로드(2022), 양구군
고향사랑기부제 취지가 이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차별화된 답례품보다 차별화된 기부 프로젝트가 보고 싶다. 더불어 답례품에 지역 이야기가 담기길 바란다.
우리보다 먼저 비슷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일본은 총무성에 따르면,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99.7%가 기부금 용도를 선택할 수 있게 했다. 특히 지자체 4곳 중 1곳(24.7%)은 상세 선택도 가능하게 했다. 일본은 2017년부터 지정기부 방식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기부 이유를 조사한 결과, 기부의 가장 큰 동기는 '답례품'에 있지만, '지방응원'과 '공감하는 사업'이 그에 비견될 만큼 높게 나타났다.
고향사랑기부금 제도가 오랜 시간 동안 논의되어 어렵게 시작된 만큼 공공과 민간이 협력하여 활성화에 힘쓰고, 소멸 위기에 놓인 지방에 새로운 대안으로 자리 잡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