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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Sep 08. 2021

환장하겠는독일의 안경점 서비스


이번 여름휴가 기간에 남편은 안과 수술을 받았다.

그를 위해 연초부터 모든 것을 계획해 놓았고 다행히 계획한 데로 모든 일정이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한 가지 생각지도 못한 복병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지난겨울 한쪽 눈을 수술했고 이번에 다른 쪽도 수술이 잘 되어 안경의 도수가 많이 달라졌다.  

당연히 이제는 기존의 안경을 더 이상 사용할 수가 없게 되었다.

반갑고 감사한 일이지만 당장 병원 일할 때 써야 할 안경이 급했다.


그래서 평소 이용하는 안경점에 빠르게 예약을 했다.(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예약이 필수다) 예약된 날의 시간에 안경점을 찾은 우리는 전문 안경사의 안내로 병원에서 받은 데이터와 시력 테스트 후에 나온 데이터를 들고 안경테를 고르고 맞는 렌즈를 골랐다.

안경사가 그 안경테에 남편의 콧대와 귀에 안경이 잘 맞는지 확인하고 시력에 맞는 렌즈의 모양을 안경테에 맞춰 깎기 위해 눈과 눈 사이 등을 재고 몇 가지 렌즈를 맞혀 보고는 안경을 맞춰 주었다.

한 시간 이상 걸려 모든 순서가 끝나고 우리는 안경사에게 안경이 급하다는 이야기를 다시 한번 강조하며 언제 찾을 수 있을지를 물었다.


친절한 안경사는 주문서에 급하다는 것을 한번 더 써놓겠노라 하면서도 약 열흘에서 2주 사이가 걸리지 싶다고 했다.

그렇다 독일에서는 안경 하나 맞추고 받는 데도 이렇게나 오래 걸린다.

대부분의 안경점 안에 렌즈 작업실을 따로 두고 있지 않고 주문 넣은 렌즈를 다른 곳에서 깎아 오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다섯 중에 셋이 안경을 쓴다. 평소에도 안경점을 자주 다녀서 이느려터진 서비스에 대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곧 휴가가 끝나는 시점에서 병원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당장 남편이 안경이 없으니 몹시 곤란했다.


그전에 다른 쪽 눈 수술 후에는 기존의 안경을 쓸 수가 있었다. 한쪽이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두쪽 모두 수술이 끝나고 나서는 이제 더 이상 그 안경은 사용할 수가 없다.

수술 후에 안경을 다시 맞추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만 실밥을 풀고 나면 또 시력이 달라진다고 해서 그때 안경을 맞추면 되겠거니 했지 지금 당장 새안경이 또 필요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렇다고 수술 후에 눈 상태가 얼마나 어떻게 달라질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미리 안경을 맞춰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러나저러나 갑갑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우리는 다른 안경점을 한 군데 더 가보기로 했다.  


이틀 후에 예약이 잡힌 처음 가본 안경점은 내부도 넓었고 안경도 많았으며 전문 안경사들도 여럿이었다.

혹시나 여긴 조금 더 빨리 해주지 않을까? 했다.

즘 젊은 사람들이 많이 간다는 그 안경점은 크고 깔끔했으며 빠리빠리 하고 친절했다.

그러나 앞의 안경점에서 했던 과정을 그대로 다시 하고도 여긴 안경을 받는데 까지 2주에서 3주 걸린다고 했다. 오히려 더 오래 걸릴 예정인 것이다.


그렇게 남편은 두 군데의 안경점에서 각기 안경을 새로 맞추었고 빠르면 열흘 만에 늦으면 3주 만에 새 안경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남편은 지금 당장 당분간 사용할 안경이 급하게 필요했던 거지 3주 후가 아니라는 거다.

만약 3주 후에 안경을 받게 된다면 실밥 풀고 난 후라 시력이 다시 달라져서 또 도수가 바뀌어야 되니 안경을 다시 맞추어야 한다. 결국 그 안경들은 장식용으로 써야 될 판이다.  

다음 주면 휴가가 끝나는데 남편이 안경 없이 환자들 얼굴이야 대략 보인다 쳐도 컴퓨터에 진료 기록을 남겨야 하는데 난감 하기 그지 없었다.


나는 급한 마음에 인터넷으로 폭풍 검색에 들어갔다. 요즘은 독일에서도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것이 많아졌고 안경도 정확한 수치만 있으면 익스프레스로 빨리 받을 수 있는 곳도 있다고 해서 두루 찾아보았다. 그러나 인터넷으로 빠르게 주문해서 받을 수 있는 안경들은 대부분 팬시 안경 또는 선글라스였고 렌즈의 도수가 남편 것처럼 높은 것들은 없었다. 남편은 난시와 근시가 나란히 함께 심하기 때문이다.

아 이일을 어찌한다... 고민하던 나는 그날 새로 갔던 안경점 바로 건너편에 팬시 안경점처럼 생긴 곳에 안경 즉석 서비스 라는 푯말을 보았던 것이 번뜩 떠올랐다.


나는 남편의 안경에 필요한 데이터 들을 다 챙겨서 거기를 가 보자고 했다.

그 안경점의 이름은 KRASS 였다. 사전적으로 직역하자면 엄청난 이라는 뜻이지만 우리식으로 의역해 보자면 대박! 정도 되겠다.

독일 사람들이 자주 쓰는 감탄사 이기도 하고 사람 이름의 성이기도 하다.

그 대박 안경점은 예약도 필요 없었고 선착순대로 기다리면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보았던 대로 안경 즉석 서비스가 있었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안경점 안을 훑어보며 나는 이곳이라면 잘하면 최소한 컴퓨터용 안경은 맞출 수도 있겠 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칸칸이 들어가 있는 서랍 안에 렌즈들이 보였고 뒤쪽에 렌즈를 직접 자르작업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작업장이 보였다.

나는 남편에게 이따 안경사가 이 서류 보고 물으면 도수가 아주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지 않아도 되니 비슷한 것이라도 괜찮다고 이야기하라고 했다.

분명 이정도의 도수는 여기도 없을 확률이 높지 싶어서였다.


시간이 지나 남편의 차례가 되었고 차분하고 꼼꼼해 보이는 안경사는 남편의 도수가 적혀 있는 종이를 보고 난감한 기색을 보이며 이렇게나 높은 도수의 렌즈는 가지고 있는 것이 없다고 했다.

이곳의 즉석 서비스는 기존에 가지고 있는 렌즈가 맞아 떨어져야만 가능하다고 말이다.

예상했던 대로다.


남편은 짠 듯이 그전에 내가 이야기하라는 대로 그리고 보다 더 충실히 설명을 했다.

눈 수술을 하고 도수가 달라져서 급하게 안경이 필요하다. 안경 도수가 딱 맞지 않아도 된다 비슷 하기만 해도 괜찮다.어차피 이삼주만 사용할 안경이다. 다른 안경점 두 군에 에서 도수 맞춰 이미 안경을 주문했는데 이삼주 걸린다 해서 지금 당장 쓸 안경이 없다. 어차피 실밥 뽑고 나면 다시 안경을 맞추어야 한다.

라고..굿!

내돈 주고 내가 사겠다는 데도 작전이 필요 하다는게 황당하기도 하지만 융통성 없고 정해진 대로 그주머니에서 뺀거 그주머니에 다시 넣는것에 익숙한 독일 사람들의 반응으로 보면 당연한 거다.

어쨌거나 처음 에는 머뭇거리던 안경사는 남편의 설명을 잘 듣고는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그렇다면 최대한 비슷한 렌즈를 찾아보자고 했다.

조금 지나니 안경사가 몇 개의 렌즈를 가져왔고 안경테 비슷 하게 생긴 측정기에 렌즈를 넣었다 뺐다 하며 맞춰 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남편이 가장 잘 보인 다고 하는 렌즈를 끼워 눈과 눈 사이 콧대와 귀 사이 등을 이렇게 저렇게 재어 보더니 그것으로 안경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

나이 슈~! 30분 정도 걸리니 그동안 다른 곳에 쇼핑이라도 다녀오라고 했다.

그야말로 이름 그대로 대박!


우리는 그렇게 그날 남편이 당분간 사용할 안경을 그자리에서 맞출 수 있었다.

환장하게 느린 독일 안경점에서 상상할 수도 없이 빠른 서비스였다.

물론 눈에 딱 맞는 것도 오래 사용할 수도 없는 당분간용 안경이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휴가를 끝으로 바로 병원일에 복귀할 수 있었다.

아직도 그 두 군데의 안경점에서는 안경이 나오지 않고 있다.거기다 한군데에서는 더 걸릴것 같다고 양해 바란다는 문자가 왔다.이삼주 보다 더 걸리겠다면 내년 이맘때 줄 셈인가?

이러다 진짜 실밥 뽑고 도수 또 달라져서 그 안경들은 데코로 벽에 걸어 두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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