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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Sep 11. 2020

내 인생 처음으로 법정에 갔다.

살면서 별일을 다 겪어본다.


이 말도 안 되는 일의 시작은
이러했다....


법원에서 재판이 이루어지는 법정이라 하면 드라마 또는 뉴스 속에 등장하는 장면 들로 기억할 뿐 살아오면서 한 번도 실제로 가본 적은 없었다. 그것이 한국에서 던, 독일 에서던 그 어디에서 던...


그런데 지난 수요일 우리는 독일 법정에 서 있었다.

아무리 인생은 요지경이요 살다 보면 별일을 다 겪는다지만 내가, 우리가 법정에 서게 되리라고는 한 번도 상상 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이렇게 얼토당토않은 일로 말이다.

이 말도 안 되는 일의 시작은 이러했다.....


재작년,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던 남편이 건강상의 문제로 개인 병원을 개원하기로 결정했다.

오래된 가정의 병원을 인수하게 되었고 그 병원에서 일하셨던 벤젤 선생님과 남편은 환자들의 상황과 상태를 제대로 인수인계하기 위해 그해 가을 내내 함께 진료했다. 그리고 나 또한 병원을 왔다 갔다 하며 안과 밖을 체크했다. 물론 그때의 나는 병원에서 직원으로 일 할 계획이 아니었고 병원의 인테리어 등을 고민하기 위해서였다.(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어쩌다 독일 병원 매니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병원 이 워낙 오래되었다 보니 손볼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나중에 그 내용도 글로 만나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삼 박사일 풀어도 못다 할 이야기입니다)

마음은 공사 끝내 놓고 깨끗한 상태에서 병원 개원을 하고 싶었지만 시간적인 상황이 맞지 않았다.

정식으로 남편 이름의 병원을 개원하는 시기가 연초 다 보니 우선 환자들의 진료가 급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간에 휴가를 내어 공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세상사 어디 계획 대로만 되던가...

주문해 놓았던 병원 사무실용 책장, 컴퓨터 책상, 등의 가구가 새로 들어오기로 한 날짜가 계획된 날 보다 늦어지면서 모든 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갑자기 변경된 시간에 맞추어 기존의 삼십오 년 세월이 묻어 나는 가구들을 떼어내고 그 공간을 청소하고 페인트 칠 까지 하는 데는 시간이 너무 빠듯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래는 우리가 원하는 색의 페인트를 사다가 직접 하려던 페인트 칠을 업체에 맡기기로 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사진 왼쪽이 우리가 다녀온 독일의 법원 그 반대편에 우주선 같은 건물이 평소 우리가 자주 가던 영화관,  
사기꾼들은 법의 틈새를 안다.


시간이 없다 보니 남편은 인터넷으로 몇 군데 업체를 알아보았고 그중에 우리 병원이 속해 있는 동네 페인트 업체에 공간의 크기를 이야기하고 견적을 받았다.

원래 견적서를 서류로 받아 야 하는데 동네 업체고 가정집도 아니고 병원 일인데 설마 속일까 싶어 전화 통화한 것으로 일 을 진행시켰는데 그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새로운 가구가 들어오기 이틀 전 낡은 가구들을 다 떼어내고 청소가 끝난 빈 공간을 페인트 업체에서 직원이 나와 페인트 칠을 했다. 그날 원래 이야기되었던 공간 외에 현관문 앞이 예전 덩치 큰 가구들이 오가며 지저분 해져서 칠 하는 김에 거기까지 같이 해 버리면 어떻겠나 해서 그쪽도 마저 해달라고 했다. 그것이 그 업체 대표 에게 사기 칠 빌미를 제공해 주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날 페인트 칠을 한 공간은, 병원 접수처 앞 현관 복도와 접수처 사무실 이것이 전부였다.

컴퓨터 책상 하나와 책장 두 개로 끝나는 아주 조그만 공간과 그 면적의 삼분의 일도 안 되는 곳을 더 칠 했을 뿐이다. 특별한 페인트가 아닌 보통의 하얀색 페인트로 작업했고 칠을 했던 직원의 오가는 시간과 쉬는 시간까지 합쳐 세 시간 안에 모든 것이 끝난 작업이었다. 그날 일한 직원이 자기가 생각할 때 처음에 책정된 200유로 견적 조차 비싸게 나온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떡하니 날아온 청구서 에는 지불할 요금 950유로 가 적혀 날아왔다. 어이가 없었다.

원래 칠하기로 했던 공간에 삼분의 일도 되지 않은 곳을 더했을 뿐인데... 그럼 이 딱지만 한 곳을 칠하는데 750 유로라는 말인가? 

이게 말인가? 방귀인가?


950유로, 한화로 하면 백이십만 원이 넘는 돈이다. 사용한 페인트에 금가루가 섞인 것도 아니었고 칠을 한 직원이 와이어에 매달려 공중에서 칠을 한 것도 아니니 위험수당이 들어간 것도 아닌데 말도 안 되는 요금이었다.


독일 중부 도시 카셀의 법원

남편은 원래의 견적과 너무나 다르게 나온 이 요금에 대한 이유를 알고 싶다는 편지를 업체 메일로, 그리고 등기로 몇 번을 보냈으나 답이 없었고 전화도 수없이 했으나 받지 않았다.

그리고는 언제 까지 돈을 내라는 이자 붙은 지불 독촉장 만을 계속해서 보내왔다.


인터넷으로 아무리 검색을 해 보아도 업체를 통해 그만한 면적의 공간을 페인트 칠 했을 때 그 가격에 했다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환자들 중에 이웃들 중에 그리고 친구들 중에서 페인트 칠을 업체에 맡겼던 경우를 물어보아도 공간과 가격을 이야기하면 누구나 당했네 라는 소리를 했다.

그들은 이미 우리를 상대로 사기 치기로 작정하고 일을 벌인 것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남편은 경찰서로 찾아가 그 업체를 신고 했다.

그러나 그 신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웃기게도 독일 현행법으로는 그 업체가 페인트 칠을 하지 않고 돈을 요구했다면 사기죄가 성립되지만 어찌 되었던 칠을 했기 때문에 견적과는 완전 다른 청구서가 왔음에도 사기죄로 신고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역시나 사기꾼들은 법의 헐거운 틈새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에 그 사기꾼 집단 같은 업체에서 변호사를 통해 언제까지 지불하지 않으면 고소하겠다는 편지라 쓰고 협박이라 읽는 것을 보내왔다.

일 진행하는 속도나 상황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것 같았다.

일은 해 주되 무슨 핑계를 대서던 가격을 올려 받아 소위 등쳐 먹고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수법 말이다. 그들은 말하자면 치고 빠지는 숙련된 꾼이었다.

민사 재판이 진행 되었던 법정 복도

그렇게 남편의 외롭고 긴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작년 봄 우리는 그 업체에서 보내온 변호사 편지를 들고 로펌을 찾았다.

살며, 그렇게 큰 로펌도 그때 처음 가 보았다. 예전에 남편의 직업 비자 문제로 찾았던 작고 퀴퀴한 냄새마저 풍기던 개인 변호사 사무실 과는 달랐다.

반짝이다 못해 미끄럽던 바닥에 붙었다 떨어지며 삐적삐적 거리던 운동화의 소리가 못내 민망할 만큼 조용하고 화려한 건물에서 우리는 줄지어 있던 변호사 사무실 중 맨 끝방 으로 안내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일 보다는 지금 당장 비행기 타고 휴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 보이는 변호사는 풍겨 오던 느낌 만큼이나 우리 일에 관심이 없었다.

남편이 꼼꼼히 챙겨간 서류들과 증거 사진들도 대충 본 척 만 척 밀어 두더니 어떻게 진행하기를 원하냐고 물었다. 남편은 그쪽에서 고소를 해 온다면 우리도 맞고소를 하겠다고 이야기했고 심드렁 한 표정만큼이나 인생 뭐 있어?하는 제스처로 변호사는 쿨하게 말했다.

이런 경우 재판을 해도 페인트 업체 쪽에서 이런저런 기술적 이유로 가격을 올려 받을 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댄다면 승소하기 어렵다고 했다.


*사진 출처:Computerworld.ch '그날 재판 법의 저울은 기울어져 있었다'

처음부터 ' 이렇게 작고 별것 아닌 민사 소송에 관심 없어요' 하는 얼굴로 앉아 있던 변호사는 그러나 한 가지 방법은 공정성 있는 기술협회에 의뢰해서 페인트 칠을 한 그 공간과 면적의 객관적인 적정 견적을 뽑아 공증받고 그것을 재판에 증거 자료로 제출하면 판사가 지불할 적정 요금을 판결하게 된다고 했다. 그럼에도 페인트 업체에 대한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기 때문에 재판에서 승소하지 못하게 되면 소송 비용과 공증비 모두 우리가 뒤집어써야 해서 지불 요금이 적정요금으로 조정된다 해도 결국 우리가 손해라는 거다.

그리고 지루한 싸움이 될 것이라는 것도 함께... 결론은 그 변호사는 수임료도 별 볼 일 없을 이런 자질구레한 민사 소송 따위는 맡고 싶지 않았던 거다.


나는 사실 그 950유로에 이자까지 얹어져 천유로 넘는 돈을 사기꾼들에게 그냥 던져줘 버리고

그 일은 그 당시 유난히 재수가 없었던 걸로 하고 털어 버리고 싶었다. 변호사도 관심 없어하는 재판 따위 해 봤댔자 우리 잘못도 아닌데 패소하면 내야 할 돈이 더 불어 나는 것도 싫었고 남편이 이런 일에 신경 쓰며 휘말리는 것은 더 싫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재판에 질 것을 감수하고 시간적 금전적 손해를 감내하더라도 그 업체 대표 에게 아닌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어야겠다고 했다.

세상의 정의가 다 말라비틀어져 죽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호락호락 당해 주지 않는 사람도 어딘가 있다는 것을 그들도 한 번쯤 경험해 보아야 다음번에 또 쉽게 사기 칠 타깃을 고르지 못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남편은 홀로 긴 싸움을 차분히 준비 해 나갔다.


*사진출처 :ZDF.de '그날의 재판 에서 눈을 가린 법의 여신은 없었다'
법정에서...


올봄, 소송이 접수된 후 일 년이 지나 서야 재판 날짜가 잡혔다.

그런데 문제는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는 것이다.그렇게 재판 일정이 두 번이나 밀려 이제야 재판이 진행되었다.

9월 9일 9시 209호실 우리가 소송을 진행한 날짜와 시간과 법정 번호까지 모두 구구 구구 했다. 잊기 어려운 일인데 평생 잊지 말라고 이렇게 암호스럽기 까지 했다.

어쨌든 우리는 공항 검색대 보다 더 철저한 법원의 검색대를 지나 법정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언뜻 보기에는 시청 건물 안의 사무실 같아 보이는 법정들의 문에는 번호가 적혀 있었고 공개 또는 비공개 재판이라는 표시와 그날 시간별로 이루어질 재판 리스트들이 붙어 있었다.


일층은 형사 재판이 이루어지는 법정 들인 지 그 앞에 체격 든든한 경찰들이 대기 해 있어 살벌한 분위기를 뿜어 내고 있었고 우리가 가야 하는 2층 복도 에는 이른 시간 탓인지 텅텅 비어 있은 체 조용하다 못해 썰렁 했다.

남편은 그간 모아둔 증거 자료 들과 다른 업체에서 견적 뽑은 견적서 (똑같은 공간에 950이 아닌 350 유로가 나왔다) 등을 따로 챙기고 재판 중에 본인이 하고 싶은 말들을 정리했다.

나는 변호사도 선임하지 않아,홀로 싸워야 하는 남편을 말없이 곁에 있어 주는 것으로 응원해 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재판 시간인 9시가 되어 가자 복도 끝으로 마스크를 쓴 중년은 되지 싶은 희끗한 머리에 날렵하게 생긴 남자와 양복을 입은 젊은 남자가 나란히 걸어 들어왔다.

우리 쪽을 힐끔 거리는 것으로 보아 그들이 업체의 사장과 변호사 이리라 쉽게 예상 할 수 있었다.

9시가 되자 209호 법정 앞에 커다란 봉투를 든 여자 한 명이 나타나서 마치 가게문 열듯 열쇠로 문을 열었다.

그녀가 그 재판의 판사였고 그 커다란 봉투 안에는 우리가 익히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보던 시커먼 법복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법정은 이글의 대문글에 실린 사진(사진 출처 )처럼 작고 아담 하게 생겼다.

이 재판은 민사 소송이어서 드라마나 영화에 주로 등장하는 형사 소송 재판처럼 검사가 있지도 않았고 판사들이 줄줄이 앉아 있지도 않았다. 커다란 봉투에서 허겁지겁 법복을 꺼내 주워?입은 판사가 위쪽 중앙으로 올라가 앉았고 왼쪽으로 변호사 없이 남편은 혼자 앉았고 그 맞은편 쪽으로 젊은 변호사와 업체 사장이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유일한 방청객 이었던 나는 정중앙에서 판사와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았다.


그날 재판에서 그동안 남편이 모아둔 증거 자료들은 쳐다보지도 않은 체 자기는 왜 이 재판을 해야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던 판사는 업체 통해서 병원 페인트 칠 했고 거기에 대한 비용 지불하면 되지 왜 소송을 했냐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법복을 입고 가운데 앉았으나 겁나 무식해 보이던 판사에게

남편은 멋지게 답을 날렸다.


" 비용 충분히 부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공간에 합당하지 않은 터무니없이 올려놓은 비용을 누군가는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소송을 재기 함으로 인해 이런 일이 앞으로 른 사람에게 생겨 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재판에 섰다." 라고 말이다.


그날 재판에서 양쪽 저울을 흔들림 없이 균형 잡기 위해 눈을 가린 법의 여신은 없었다.

단지 듣지 않으려 눈 대신 귀를 가린 판새만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이 재판은 내용 상으로 엄연히 우리가 이겼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날 재판에서 남편이 쏟아낸 반박 할 수 없는 팩트와 어떤 사람인지 만나 보고 싶었다는 말에 업체의 사장은 몸 둘 바를 몰라했다. 움찔 거리며 바닥으로 눈을 깔고 얼굴이 붉어지던 사장을 바라보며 비록 우리에게 손해가 막심한 재판이었지만 남편이 바라던 메시지는 상대에게 충분히 전달된 셈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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