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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행 Aug 22. 2020

포지타노, 첫 혼자여행에서 만난 첫사랑

여행지에서 처음 눈물을 흘리다

2017년, 처음으로 혼행을 떠났다.

엄밀히 말하면 반은 현지에 사는 유학생 친구와 지냈으니까 세미 혼행인가?

혼자 밥 먹기도 싫어하는 나에겐 큰 도전이었다.


처음부터 혼자 여행하려던 건 아니었다.

친구들과 일정을 맞추는데 비성수기에 가려는 나와 일정이 맞는 친구가 없었다.

나는 비성수기에다가 덥지 않은 4월에 가고 싶었고

너무도 무료했기에 빠른 시일 내에 가고 싶었다.

1월부터 여행 계획을 세웠고 2월에 남자친구(현 남편)가 생겨 바빠졌지만 취소하기엔 수수료가 많이 들고 유학생 친구를 보고 싶기도 해서 그대로 추진했다.

마침 여행기간에 생일인 남친에게 미안했다.

첫 생일은 챙겨주지 못했지만 그 후로 쭉 챙겨줄 수 있으니 다행이다.

정말 인생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어 재밌는 것 같다.


포지타노를 갈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8박 10일의 여행이고 렌트도 안 해서 로마에서 남부를 가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선정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50곳 중 1위로 선정되었다고 해서 무리를 해서라도 가야겠다고 다짐했다(이런 거에 약한 타입).

동행을 구해서 남부 투어를 신청했고 여행 초반에는 유학생 친구와 프랑스에서 시간을 보낼 거라 일정 막바지로 잡았다.

유럽여행 편을 쓰면서 포지타노를 맨 먼저 쓰는 이유는 내셔널 지오그래픽뿐만 아니라 나도 내 여행지 중 1위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로마와 폼페이, 나폴리는 이미 2011년에 갔지만 두 번째 여행에도 포함시킨 건 순전히 이 포지타노를 가기 위해서였다. 그냥 끌렸다.

사람이든 여행이든 운명적으로 끌리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투어 전에 동행과 한인민박에서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버스 오른쪽에 앉아야 포지타노 가는 길에 있는 아말피 해안도로를 잘 볼 수 있다는 꿀팁을 들었다. 그래서 아침 일찍 나와 투어버스 장소로 갔다. 초행길이라 그런지 많이 헤맸다.

아슬아슬하게 도착하니 모두가 알았는지 오른쪽 자리는 꽉 차있었 왼쪽 자리만 남아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거기에 앉았다.

여행 계획을 미리 세세히 짜는 편이고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지라 무척 아쉬웠다.


폼페이와 나폴리를 지나 대망의 포지타노 가는 길!

일기예보와 다르게 날씨가 무척 좋았다.

아말피 해안도로에 가기 전, 가이드님이 오른쪽 자리가 더 잘 보이지만 돌아올 때는 왼쪽 자리가 더 잘 보이니까 실망하지 말라고 하셔서 올 때 잘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좁고 꼬불꼬불한 해안도로


살짝 해탈 상태에서 아말피 해안도로에 다다랐다.

바다가 끝없이 펼쳐진 가운데 아기자기한 집들이 절벽에 붙어있는 풍경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오른쪽 자리에 있는 분들은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고 나는 몇 번 시도하다가 잘 안 찍혀서 포기하고 눈으로 먼저 담기로 했다.

한참을 멍하니 쳐다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눈물을 흘리는 도중에 '내가 왜 이러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설명이 안 되는 눈물이었다. 누가 볼까 봐 얼른 닦아냈지만 감정이 쉬이 가시지 않았다.


우선 첫 번째로 든 생각은 풍경이 예뻤다. 내가 이걸 보려고 혼자 계획 짜고 동행을 구하고 일기예보를 보며 마음 졸이고 했던 게 다 보상받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두 번째로는 부모님 생각이 났다. 나보다 여행을 자주 가시고 엄마는 이미 여기를 다녀오셨지만 이런 경치를 나 혼자 보고 있자니, 부모님과 함께 올 생각은 왜 안 했을까 죄송스러웠다.

날씨가 다했던 그 날의 풍경
이 에메랄드빛 바다가 날 울린 것 같다


나는 유독 가 좋다. 바다 보고 있으면 울컥하는 게 있다. 거기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에메랄드빛 바다라니..!

나에겐 갱년기가 아니어도 울 수 있는 풍경이었던 것이다(그래서 트레비 분수도 세 번을 보러 갔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날 내가 늦게 도착해 오른쪽 자리에 앉지 못한 게 신의 한 수였다. 오른쪽에 앉았다면 사진 욕심에 눈에 제대로 담지 않았을 것이다. 또 실망감에 기대를 살짝 접었던 것도 컸다.

이런 전화위복의 상황을 자주 겪곤 한다. 이건 내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합리화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왠지 조상님이 나를 돕고 계신 것 같다(?).

날씨라는 변수는 정말로 내가 관여할 수 없는데, 이날 날씨가 흐리다 밝아진 것에도 큰 감사를 느낀다.


- 포지타노 편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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