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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Sep 06. 2015

#012. 인사이드 아웃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의 출발선 상에 놓여있는 작품.

Title : Inside Out
Director : Pete Docter
Main Cast : Amy Poehler, Phyllis Smith
Running Time : 94 min
Release Date : 2015.07.09. (국내)




01.

"디즈니"가 "픽사"를 인수했던 것이 지난 2006년의 일이었으니 이도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디즈니"와 함께 한 그 10년 동안 "픽사"의 작품들은 전에 없던 많은 어려움들을 겪기도 했다. <몬스터 주식회사>와 <카>의 속편은 나오는 족족 외면받기 일쑤였고, 지난 2013년 겨울에는 총 직원의 5%에 달하는 인원을 해고해 내보내기도 하고 말이다. 이 원인에 대해 많은 평론가들은 전혀 다른 색깔을 가진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인수를 진행하고자 했던 "디즈니"의 과욕으로 돌리곤 했지만 사실 진짜 문제는 "픽사" 그 자체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02.

애니메이션이라는 동일한 장르 작품들로 대중에게 어필했던 "디즈니"와 "픽사"이지만, 이 둘은 애초에 다른 매력으로 승부를 보았던 회사였다고 생각된다. "디즈니"가 다양한 캐릭터들과 함께 동화같은 스토리를 기반으로 어린 아이들의 마음을 빼앗아 어른들의 지갑을 열어 왔다면, "픽사"는 반대로 어른들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를 핵심 역량으로 삼아 어른들의 지갑을 직접 여는 방법으로 수익을 창출해 온 기업이었다. 물론 이 이야기가 "디즈니"의 작품들에는 스토리가 없고, "픽사"의 작품들에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영향력이 없었다는 이야기로 와전되는 것은 곤란하다. 두 기업이 상대적으로 비교우위를 보이는 부분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03.

그런데 "디즈니"가 "픽사"를 인수하던 순간부터 "픽사"가 내놓은 작품들을 보면 어딘가 한결같이 어정쩡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앞서 예로 든 <몬스터 대학교>와 <카 2> 모두 기존에 그들이 갖고 있던 강점인 스토리 자체가 빈약해지다보니, 원래부터 알고 있었던 캐릭터들은 귀엽기는 하지만 뭔가 색다를 것이 없고 그렇다고 기대했던 내러티브는 약해지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이 작품들의 퀄리티가 극장에서 보기가 곤란할 정도로 엉망이었던 건 아니었다. 그런데 <벅스라이프>, <토이스토리> 때부터 "픽사"의 오랜 팬이었던 관객들이 과연 만족할 수 있었을까? 그렇지는 못했을 것이다.


04.

"픽사"에 대해서 이렇게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은 이 작품이야말로 과거 전성기 때의 "픽사"가 자랑하던 그 강점들이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 잘 표현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진짜 "픽사"를 오랜만에 만난 느낌이 들었달? 평소에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서 '단언'한다는 표현을 잘 사용하지 않지만 오늘만큼은 한 번 사용해 보려고 한다.


"단언컨데 이 작품 <인사이드 아웃>은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사업이 온전히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의 시대로 넘어가는 하나의 중요한 지표가 될 작품이 될 것이다."


05.

그 전에 먼저 "픽사"가 이 작품을 만들면서 작품에 녹여낸 탁월한 선택들을 이야기 해 보려고 한다. <인사이드 아웃>을 만들기 위해 작품의 형식으로 다른 장르가 아니라 애니메이션을 차용했다는 것과 다섯 가지 감정들의 활동 대상이 되는 인물을 "라일리"라는 소녀로 설정했다는 것, 이 두가지에서 나는 "픽사"의 대단함을 느꼈다. 이 두 가지 선택으로 인해서 <인사이드 아웃>은 전 연령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되었음과 동시에 비시각적인 감정(Emotion)이라는 주제를 다룸으로서 굉장히 복잡하고 너저분해질 수 있었던 스토리 라인을 5개의 감정 캐릭터로 압축시켜 간략화 시킬 수 있는 이점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는 인간에게 다섯 가지 감정만이 아닌 더욱 다양한 감정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성장하면서 더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적절하게 표현해 냈으니 이보다 더 영리한 방법을 찾을 수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06.

이 작품을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의 시대로 넘어가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언급한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이 영화가 애니메이션의 모습을 하고 있고 어린 아이인 "라일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는 하지만 유아 혹은 어린이들이 내용을 이해하는데는 분명히 한계점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는 사회적 문제와 연관하여 애니메이션 산업 역시 이제는 더욱 직접적으로 어른들을 타켓으로 그 성격 자체가 바뀔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완구 시장에서 "키덜트(Kidult) 산업"이 성장하는 동향과도 전혀 무관하지 않다. 어린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도 그 시장 파이 자체가 점점 작아지고 있기 때문에 이는 필연적일 수 밖에 없는 변화다. 이런 변화 속에서 <인사이드 아웃>은 두 계층을 모두 놓치지 않기 위하여 어린이들을 위한 캐릭터와 동화적 분위기, 어른들을 위한 스토리를 매우 적절하게 가미된 작품처럼 보이는 것이다.


07.

참고로 덧붙이자면, 실제로 "디즈니"에는 이와 같은 산업을 장기적인 플랜 속에서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모습이 존재한다. <말레피센트>(2014)를 시작으로 <신데렐라>(2015), 곧 예정인 <팬(Pan)>에 이르기까지 기존에 존재했던 애니메이션들을 실사화하여 스크린으로 옮기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그 외에도 <아기꼬끼리 덤보>, <피노키오> 등의 작품들이 그 일련의 연장선 상에서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플로리다와 캘리포니아에 있는 디즈니랜드에는 <스타워즈> 시리즈와 관련된 테마파크인 "Starwars Land"가 2017년까지 조성된다고 하니 "디즈니"가 생각하는 기존의 애니메이션&테마파크 산업 플랜이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애니메이션 사업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그들의 부모로부터 수익을 창출하는 모델이었지만 이제는 부모 세대의 심리를 직접 자극해 그들의 지갑을 여는 방식으로의 변화가 예측된다고 할까? 이것은 분명히 흥미로운 변화이고 그 가운데 <인사이드 아웃>이 존재하는 것이다.


08.

이 작품이 아주 괜찮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과 별개로 사실 개인적으로는 참 이성적인 심리로 보게 된 영화 중 한 편이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감정적 동요를 느끼고 눈물까지 흘렸다고 했는데, 글쎄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도 <토이 스토리 2>에서 "제시"가 When she loved me"를 들을 때 훨씬 더 감동을 받았던 것 같다. 나 역시 어릴 적에 이사로 인해서 환경이 바뀌는 것을 두 번 경험했던 적이 있었지만 크게 공감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는 글쎄 정말 이유를 잘 모르겠다. 어쩌면 영화가 할애하고 있는 부분이 "라일리"의 직접적인 이야기들보다 감정들의 모험(?) 쪽에 더욱 치우쳐져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09.

이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면서 가장 큰 놀라움을 표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은 인간이 감정을 느끼고 기억들을 저장하는 추상적인 모습들을 시각적으로 너무나 잘 구현해 놓았다는 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코 실제와 같은 메카니즘은 아니겠지만, 누가 봐도 왠지 그럴 것만 같은 모습으로 전에 없었던 일종의 시스템을 구축해 놓은 것처럼 완벽한 모습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본 부모님들이 한 동안 이 영화를 예로 들며 자식들을 구슬리지 않을까 싶기도. "너 엄마 말 안들으면 부모님섬 사라진다~" 뭐 이런식으로 말이다. 어쩌면 이런 점들 역시 "픽사"라는 집단이 갖고 있는 그들만의 잠재력, 혹은 힘일지도 모르겠다.


10.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나는 이 영화를 감정적인 상태로 보지는 않았기 때문에 러닝 타임 내내 생각했던 게 있었다. 이 영화가 정말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이라면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이렇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첫째, '아이들에게 슬픔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둘째, '세상에 어떤 감정도 불필요한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셋째, '어느 한 감정에만 매몰되어 버리는 것은 아무것도 모를 때나 하는 일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11.

현실 속에서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이 울기 시작하면 반사적으로 달래기 위한 준비를 한다. 물론 그것이 아이들을 달래기 위한 것 행동이기도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의 귀찮음을 줄이기 위한 반사적인 행동일 때가 더 많다. 울지 말라며 지속적으로 강요받은 아이들은 자라면서 어떻게 될까. 아마도 울음의 둘레에 금을 그어 버릴 것이다. 왜 우리는 울면 안 되는 걸까? 이 영화를 본 부모님들이라면 꼭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 또한 그들의 자연스러운 감정임을 알려준 적이 있었나? 하고 말이다.


12.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조이"와 "새드니스"가 함께 다니는 것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 두 감정이 "라일리"를 떠나 있을 때 어떻게든 "라일리"의 감정을 컨트롤 해 보려고 노력한 이들은 남겨진 감정들, "피어", "디스거스트", "앵거"였다. 사실 이런 모든 감정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중요하다. 화가 나면 화가 난다고 이야기를 할 줄 아는 것. 겁이 나면 겁이 난다고 이야기 할 줄 아는 것. 우리는 그렇게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비겁한 방법들로 이 감정들을 표현하려고 든다. 많은 사회 문제들, 학교 폭력들이 그런 연장선 상에 있는 게 아닌가. 이 모든 감정들 역시 우리들의 것이라는 걸 배울 필요가 있다.


13.

이 영화의 엔딩에는 감정 구슬에 슬픔과 기쁨이 함께 섞여 나오는 장면이 있다. 나는 이 부분이 굉장히 슬프다고 느꼈다. 이 장면을 통해 이제 "라일리"가 어른이 되었다는 건 알겠는데, 왠지 어른이 되면 어떤 한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진다는 걸 알려주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감정적 여유도, 물리적 시간도 없는 어른들의 삶. 그 장면이 왠지 그렇게 느껴졌다. 물론 그런 의도로 삽입된 장면은 아니라는 걸 너무 잘 알지만 그래서 더욱 슬프다.




**이 글은 2013년부터 작성된 인스타그램 계정의 동일 연재 글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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