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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싼타페 Jun 19. 2020

누군가에게는 천사

노숙자의 천사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밤.  길거리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그녀는 비를 피할 곳을 찾아 헤맨다.  어디 갈만한 곳도 없어 차양막이 반쯤 드리워진 문 닫힌 가게 앞 철문에 바짝 붙어 잠을 청해 보지만 이미 반쯤 젖은 몸은 가볍게 부는 바람에도 한기를 느낀다.  코로나로 인해 곳곳의 가게들이 문을 닫아 먹을 것을 구하기도 더욱 힘들어져 오늘은 한 끼도 먹지 못했다.  그녀는 배고픔의 고통에 익숙해질 만큼 길에서 생활한 지 오래지만 여전히 배고픔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배고픔보다 더욱 견디기 힘든 것은 자신이 여자라는 이유로 비슷한 처지에 놓인 거리의 남자들이 욕정의 해소를 위한 휴지 따위로 취급하는 것이다.  일말의 감정도 없이 그저 육체의 힘으로 그녀를 외진 곳으로 끌고 가 마음껏 유린하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훌훌 털고 일어나 먼저 가버리는 남자들에게 때론 잔인한 살심마저 들지만 힘이 약한 자신을 원망할 뿐이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품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딸의 사진을 보며 언젠가는 함께 먹고 마시며 나란히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행복한 나날을 꿈꾸어보고는 했다.  어린 딸이 끼니를 거르지나 않는지,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사람들과 잘 지내는지 궁금한 것들이 많지만 연락을 할 수가 없다.  연락처도 없거니와 맡겨진 위탁가정이 어딘지도 모르고, 안다하더라도 혹여 딸에게 불쑥 찾아갔다가 위탁가정에서 더 이상 멀쩡한 엄마가 있는 딸을 돌볼 수 없다며 데려가라고 하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사진으로 오늘도 달래 본다.  


    그래도 오늘은 비가 오는 덕분에 남자들이 비를 피하느라 돌아다니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며 잠을 청해 보지만 배가 고파 잠이 쉬 오지 않는다.
- 하나님, 너무 배가 고파요.  제발 천사라도 보내주셔서 먹을 것 좀 주세요.  제발...

    그녀는 거리로 나온 후 한 번도 교회에 가지 않았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하나님을 향해 원망만 가지고 있었지만 오늘은 참을 수 없을 만큼 배가 고팠다.  잠시 후 골목 끝에서 자신이 있는 곳으로 몸을 틀어 걸어오는 한 사람이 보였다.  동양인으로 보이는 그는 어깨에 쇼핑백 같은 가방 하나를 메고 있었다.  이 늦은 시간에 외국인이 인적도 드문 이곳에 나타나는 게 쉽지 않은데 무슨 일일까 한편 궁금하기도 했다.  그는 그녀 가까이 오자 인자한 미소로 따뜻한 빵과 커피를 내민다.  순간 그녀의 눈에 비친 그는 천사였다.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라 생각했다.  빵은 너무도 따뜻했고 커피는 쥐고 있기도 뜨거웠다.  빵과 커피의 열기는 그녀의 손에서 이내 온몸으로 퍼져 나간다.  온 세상이 따뜻해지는 느낌이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천사예요.
- 아니에요.  별말씀을요.  저는 천사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빵이 더 필요한가요?
- 아니에요.  당신은 하나님의 천사입니다.  조금 전 제가 천사를 보내달라고 기도했거든요.
- 하하하.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멋들어지게 웃더니 빵을 하나 더 쥐어주고는 몸을 틀어 자리를 뜨려 한다.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감사의 인사를 더 하고 싶었다.  천사의 손을 잡으면 축복이 넘쳐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그녀가 내민 손을 보면서도 잡아주지 않고 그저 소리 없는 웃음과 함께 떠났다.  그녀는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분명 천사였어하며 작게 소리 내어 혼잣말을 했다.




    벌써 95일째다.  노숙자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기 시작한 지가.  불우한 이웃에 대한 숭고한 사랑이라던가 외면당하는 이들에 대한 고결한 자비심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코로나로 인해 노숙자들이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종종 강도로 돌변한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집 주위에 있는 몇몇 노숙자들에게라도 빵 한 조각 나눠주자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빵 한 조각이지만 배고픔으로 인해 강도로 돌변해야만 하는 절박함이 조금이라도 수그러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작한 것이다.  배부를 때 빵 한 조각이야 휴지통에 집어넣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작은 것이겠지만 배가 고파도 너무 고플 때 빵 한 조각은 충분히 그들을 절박함에서 끌어낼 수 있는 위력을 발휘하리라 생각했다.  코로나로 온 도시가 봉쇄된 상태지만 며칠이면 풀릴 것이라 생각한 것도 크게 작용했다.  그런데 벌써 95일째 봉쇄 상태다.   처음엔 빵만 나눠주었는데 날씨가 점점 추워지면서 따뜻한 커피가 더해지면 좋겠다 싶어 매일 커피를 내려 보온병에 담아 나갔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경찰의 제재를 받게 된다는 뉴스를 들은 후로는 집에서 천 마스크를 만들어 함께 나눠주었다.  그러다 보니 처음 시작할 때보다 비용이 많이 늘어나 감당하기가 만만치 않았지만 매일 밤 기다리고 있을 이들을 생각하면 멈출 수가 없었다.  


    오늘은 비까지 내리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비가 오는데 어떻게들 하고 있을까 걱정이 되어 평소보다 조금 더 음식을 챙겨 길을 나섰는데 다들 비를 피하러 갔는지 늘 보던 얼굴들이 안 보인다.  한참을 돌아도 준비한 음식을 소진하지 못했지만 들어가기도 난감해 평소 잘 가지 않던 우범지역 가까이 가보았다.  안으로 들어가기에는 용기가 나지 않아 주변을 돌아보다 집으로 방향을 잡고는 몸을 틀었더니 멀리 커다란 비닐봉지로 몸을 감싸고 있는 이가 보인다.  가까이 가서 보니 처음 보는 얼굴인 데다 여자가 아닌가.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포어로 빵과 커피를 권하니 두 손을 마주 잡고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빵을 건네주고 커피를 따르며 힐끗 보니 머리맡에 딸인 듯 보이는 사진 한 장이 있다.  순간 마음이 아렸다.  얼마나 보고 싶을까.  커피를 받아 든 그녀는 아직도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그런데 잘 들어보니 나보고 천사라 하는 게 아닌가.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하지만 그녀는 너무 배가 고파 조금 전까지 하나님께 천사를 통해 먹을 것을 보내달라고 기도하고 있었는데 내가 나타났다고 한다.  부족한 언어 실력으로 인해 원활한 의사소통이 안되니 한 번 웃어주고는 빵을 하나 더 주었다.  그녀는 두 손에 받아 든 빵과 커피를 언제 먹으려는지 계속 인사만 거듭한다.  자리를 떠 나머지 빵을 나눠줄 또 다른 노숙자를 찾아 나섰다.


    30여분을 더 돌아다니며 준비해 나간 음식을 다 나눠주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내내, 집에 도착해서도 내내 그녀의 얼굴과 사진 속 앳된 소녀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내 손을 잡고 싶어 하는데 코로나가 무섭기도 하고 너무 더럽기도 하여 선뜻 손을 내밀어주지 못했던 것이 못내 미안했다.  아무쪼록 여자의 몸으로 험한 일들 당하지 않고 비록 거리에서 생활하지만 마음 편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나도 빵과 커피 이상으로 어찌해 줄 도리가 없으니 안타깝기만 할 뿐이다.  


    그나저나 천사라니.  어찌 그런 말을.  천사를 못 본 탓이겠지하며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우쭐해지는 느낌이다.  빵 하나 커피 한 잔에 천사라는 과분하다 못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찬사이겠지만 그녀의 인지능력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분명 천사를 만난 것이 맞을 것이다.  단지 내가 천사가 아닐 뿐이다.       


  우리는 누구나 천사가 될 수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천사가 될 수는 없지만 누군가에겐 천사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가까이는 어린 아기들을 천사라고 부르듯이.  그들은 분명 천사는 아니지만 우리는 천사라 부르기를 서슴지 않는다.  어린 아기를 볼 때 그 맑고 깨끗한 순수에 동화되기에 그저 보고만 있어도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따스함으로 인해 그리 부르게 된다.  어릴 적 잘못이나 부끄러움을 가려주는 친구의 모습.  살면서 한 번쯤은 맞닥뜨리게 되는 인생의 고비에서 다가와 살며시 내밀어주는 손.  위험에 빠진 누군가를 위해 도와주려다 대신 희생당한 이들.  우리는 그들을 향해 천사라 부르고 있었다.  그렇기에 오늘 그녀가 만난 나는 천사였다.  또한 오늘 아침 눈을 떠 제일 먼저 만난 것도 늘 함께 하는 천사들이고, 자신도 어려운 상황일 텐데 브라질 소식을 들었다며 걱정되어 연락해준 지인들이 천사들이고, 멀리 타국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도 만만치 않을 텐데 코로나 확진자가 갈수록 많아진다는 뉴스에 어쩔 줄 몰라하며 기도하는 늙으신 부모님들이 천사들이다.     


    오늘 천사가 되어버린 나는 그녀를 위해 짧은 기도를 해본다.  그녀의 어려움이 자신의 잘못인지, 가족의 잘못인지, 사회의 잘못인지 그도 아니면 신의 원대한 뜻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녀에게 육체적인 고통이 다가가지 못하도록, 배고픔의 서러움도 없기를, 하루빨리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살게 되기를...       


    근데 날개는 언제 보내 주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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