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예전에 써 두었던 글을 다시 뒤집어서 정리하여 종이책으로 출간하는 작업에 몰두해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기적으로 한참 전에 쓴 글들을 다시 들여다보는 데 시간을 많이 들이고 있다. 분명히 번거로운 작업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혀 의미 없는 시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퇴고의 과정을 거치게 되면 어딘가 모르게 약간은 거칠하던 글이 분명히 매끄러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까닭에 귀찮아도 한 번 더 글을 들여다보게 된다.
퇴고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똑 부러진 기준은 없다. 물론 이런 말도 내가 단정 지을 수 없는 이유는, 내가 이른바 정식 제도권의 문예 창작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글을 쓰면서 느낀 나만의 기준을 정리하는 것까지도 나에게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나도 나대로의 방법으로 퇴고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퇴고’를 사전적인 의미로 살펴보면 ‘완성된 글을 다시 읽어 가며 다듬어 고치는 일’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물론 퇴고가 단 한 번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대부분 작가는 이차, 삼차에 걸쳐 퇴고에 시간을 들인다. 그런 것을 보면 퇴고는 제2의 창작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심지어 퇴고 후의 원고는 초고와 전혀 다른 형태로 재탄생하기도 하므로 이런 표현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기도 하다. 작가마다 퇴고하는 단계별 기준도 제각각이고 방법론도 각각 다르다. 나 역시 퇴고라는 과정을 거쳐서 글을 완성하고 있으므로, 여기에서 그 과정에 대해 언급해 보겠다. 글을 읽으면서 유의할 점은 내가 퇴고하는 방법이 절대적인 방법은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좋겠다.
내가 쓰는 글은 다양하다. 소설로 시작해서 시도 건드렸다가, 수필을 포함한 일상 산문도 쓰고, 가끔은 서평이나 소개의 글도 쓴다. 그렇게 여러 가지 글을 쓰다 보니까 퇴고의 과정도 제각각이다. 그러므로 가장 기본적인 과정의 줄거리를 기준으로 기술하려 한다.
가장 처음으로 쓴 원고를 초고라고 한다. 다음으로는 몇 가지 관점에서 초고를 수정해야 하는데, 그 기준은 첫째가 단어나 어휘의 적정성이다. 다음으로는 문장의 자연스러움과 단락이나 연(시의 경우) 전체 문맥의 흐름을 진단하는 일이다. 물론 그 하나하나가 글 전체에서 추구하거나 전달하고 싶은 핵심 주제에 적절해야 한다. 이런 부분을 잊지 않기 위해서 나는 다른 사람이 쓴 글이라고 간주하고 내 글을 읽어본다. 전혀 모르는 작가가 쓴 글을 읽었을 때, 과연 그 작가가 글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을 내가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길이가 짧은 글은 솔직히 컴퓨터 모니터를 보면서 퇴고한다. 기껏 몇 줄 안 되는 글을 일일이 출력해서 점검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글 중에는 모니터의 스크롤을 올리지 않더라도 한 화면으로 볼 수 있는 글(시)도 많다. 그런 글에 적합한 방법이다. 출력된 원고를 보면서 퇴고하는 경우, 종이 위에 펜으로 글을 고치곤 하는데, 컴퓨터로 할 때 취소선을 긋고 다른 표현으로 바꾸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앞으로는 아무리 짧은 글이라도 일단 출력하기로 마음먹었다. 모니터로 확인하려면 컴퓨터를 켜야 하지만 종이에 출력할 경우는 책상 위 아무 데나 늘어놓고 생각날 때마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을 고치는 과정은 비교적 간단하다. 시든 수필이든 소설이든 모든 글을 문장 단위로 끊어서 읽는다. 적절한 단어(시어)가 사용되었는지, 문장을 이루는 각 품사의 배열이 제대로 되었는지, 불필요한 조사가 남발되지 않았는지, 같은 의미의 문장이 반복되지 않았는지, 전후의 문장과의 연결이 부드러운지 등 확인할 사항은 많다. 그래서 출력된 원고에 연필로 문장의 시작과 끝에 ‘/’ 표기를 하면서까지 끊어서 철저하게 살펴본다. 물론 이렇게 해도 잘못된 단어나 어휘 문장이 발견되기도 한다. 심지어는 유명 전업 작가의 글에서조차 출간 후에도 잘못된 부분이 발견될 정도이니, 서투른 나의 글에서는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글의 오류를 찾아내 본다. 그런데 다행스럽게 나에게는 이 과정에서 큰 힘을 보태는 조력자가 있다. 바로 가족이다. 그래서 나는 가족 덕을 단단히 본다. 가족에게 완성되어 가는 나의 원고를 가장 먼저 보여준다는 의미도 있지만, 눈이 둘일 때와 다르게 여섯이면 원고에서의 오류도 훨씬 잡아내기가 쉽다.
간혹 문장 전체를 들어내는 일도 자주 발생한다. 글을 쓸 때는 꼭 필요하다 싶어서 삽입한 부분이지만, 나중에 다시 읽으면 불필요한 부분이라고 확인되는 경우가 가끔 발생한다. 그 이유는 글을 쓰면서 너무 지엽적인 사고로 원고를 바라보면서 쓰다 보면 원고의 마지막에 가서 앞부분이 어색해 보일 때가 가끔 있다. 그럴 때는 앞부분이건 뒷부분이건 어느 한 부분을 고쳐서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아예 관련된 부분 전체를 들어내고 원고 전체의 흐름을 다시 구성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간혹 그렇게 고친 원고가 초고에 비해서 훨씬 참신한 이야기로 변화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초고를 고치는 일이 아예 초고를 폐기하는 것보다 어려울 때가 있다. 이런 경우가 가장 애매한 경우이다. 다른 작가님들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경우 나는 아예 컴퓨터 폴더를 외진 곳에 몰아 두고 일단 잊는다. 거의 폐기 수준에 가까운 원고라 할지라도 없애지 않는 데에는 나만의 이유가 있다. 그 원고를 퇴고할 시점에서는 폐기 수준의 원고라 할지라도 쓸 당시에는 고심하고 쓴 글이기 때문이다. 유치원에 다닐 때 쓴 글을 대학교에 다니면서 읽어보면 당연히 유치하고 조잡해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유치원 시절을 건너뛰고 대학교에 진학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유치원 시절의 감성은 대학교 시절에는 절대 되살릴 수 없는 감성이듯이, 글 쓰기 초기의 감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다시 되살리기 힘든 감성이다. 아무리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학가, 작가, 시인도 가다 보면 초기에 아주 형편없는 평가를 받는 글을 쓴 적이 많다고 한다. 그래도 그런 평가가 남아있는 까닭은 그 작품들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초기의 작품이 보존되어야만 내가 걸어온 글쓰기 인생을 돌아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보통 초고 이후 2번 정도 퇴고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일단 원고에서 손을 놓는다. 퇴고할 시기의 감성으로 초기의 감성을 다스린다면 내 작품에서 각각의 차이점은 사라지고 퇴고할 당시의 감성을 내포한 작품만 살아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상가의 상인이 물건을 진열하는데 선입선출의 방식으로 진열하듯이 그렇게 나의 작품 중에서 시기적으로 오래된 작품을 새로 쓰거나 퇴고를 거쳐서 새롭게 탄생한 작품들에 밀려서 나의 기억으로부터 사라질 것이 두렵다. 기껏 열정을 다해서 쓴 글이 문장의 전개상의 오류가 아닌, 표현상의 차이를 이유로 사라진다는 것은 나 자신부터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서 너무 여러 번의 퇴고는 될 수 있으면 지양하는 편이다.
그리고 솔직히 무슨 거창한 공모전에 응모할 작품이 아닌 바에는 어딘가 모르게 약간은 이빨이 빠진 것처럼 엉성한 것도 그 나름의 멋이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완벽해도 재미가 없지만, 나의 필력으로는 그렇게 완벽하게 퇴고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완벽을 추구하기 위하여 퇴고를 계속하는 행위는 작품의 발표 시기만 무한정 지연시킬 뿐이다. 그렇게 계속 퇴고한다고 해서 작품이 완벽해질 리는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바둑에서 장고 끝에 악수를 둔다는 말처럼 무조건 깊이 생각한다고 해서 좋은 작품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나의 퇴고 실력이 완벽하다고 그 누가 보증할 것인가? 그것도 아니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부득이하게 퇴고를 거치는 동안 심하게 초고가 훼손된 경우, 대부분 초고 상태의 원고를 복수로 보존한다. 물론 이런 경우는 많지 않다. 간혹 내가 개인적으로 애착을 가졌던 작품은 아무리 퇴고를 거쳐서 멋진 글로 환생했다고 하더라도, 초고가 그리울 때가 있는 법이다. 그럴 때는 가끔 최초의 원고를 열어보는 재미도 초심을 되찾는 나만의 좋은 방법이다.
이상과 같이 나는 초고를 퇴고하여 최종적으로 완결된 원고를 보관한다. 그리고 그중에 종이책으로 출간된 글은 별도의 파일로 떼어내어 보관하고 있다. 가능하면 하나의 원고가 여러 폴더에 중복되게 복사되어 보관되지 않도록 신경 쓰고 있다. 나처럼 작가 지망생의 경우, 작품이 되든 안 되든 개수로만 치면 많은 글을 써야 한다. 그래야 필력도 올라가게 되면서 점차 더 원숙한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그런 글들이 두서없이 중구난방으로 컴퓨터 폴더 이곳저곳에 보관되어 있으면 보관한 나조차도 글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글을 잘 보관하는 것도 글을 잘 쓰고, 퇴고를 잘하는 일 못지않게 나에게는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이 글은 단행본으로 출간한 >글쓰기가 두려운 사람은 책을 읽지 마라>에 실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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