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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하의 별 Mar 16. 2021

행복한 내 모습이 되도록

나는 어린 시절부터 내가 사랑하는 친척들을 하늘별로 떠나보냈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어느 날 아침에 엄마는 큰할머니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우리와 함께 아랫동네로 급히 내려갔다. 그때 양옥집이 즐비하게 있었던 동네였고 우리 집은 지대가 높은 곳에 큰할아버지는 지대가 낮은 동네에 살고 있었다. 큰할아버지 집은 정원이 넓었다. 햇살이 가득 들어오면 잘 심어진 나무와 꽃들이 만발했고 큰 할아버지는 나와 동생을 위해서 작은 그네를 정원 한쪽에 두었다. 나의 엄마에게는 마음에 든든한 아빠 같은 분이었다. 나의 외가는 몸이 약해서 다들 오래 살지 못하고 젊은 시절에 단명을 하여서 몇 분 안 남은 어른이 큰할아버지였다. 족보의 관계로 나는 할아버지라고 부르지만 그의 나이는 50대 반이었다.


큰할아버지는 간암이 급격히 진행되어 투병 중이었고 엄마가 전화받은 그날은 하늘별로 떠나기 직전이었다. 나와 동생은 정원에 있었고 어른들은 큰할아버지가 계신 방에 모여 앉아서 임종을 지켜보고 있었다. 큰할아버지는 하늘별로 여행을 떠나셨고 남은 가족들은 한동안 슬픔에 잠겨있었다. 그 후에도 우리 가족은 사랑하는 가족을 몇 번 더 떠나보냈다. 마지막으로 떠나보냈을 때가 엄마의 막냇동생 즉 나의 이모였다. 이모는 강아지 목욕을 시키다가 피에 균이 들어가서 급성 패혈증으로 쓰러졌고 병원으로 옮겨진 지 두 시간 만에 하늘별로 떠났다. 하루아침에 벌어진 일이었고 남겨진 가족들은 깊은 슬픔에서 한동안 나올 수가 없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만났던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면서 성장을 했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성처럼 항상 붙어 있는 것 같았고 어제까지 분명 삶을 살고 있었지만 갑자기 오늘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이 두렵고 무서웠다. 누구나 피해 갈 수 없는 그 죽음은 시간의 길고 짧음만 존재할 뿐 반드시 오게 된다는 것을 나는 어릴 때부터 알아버렸다. 그때 어디선가 읽으면서 기억하고 있었던 문장이 "내가 살고 있는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간절히 바라던 내일이다."라는 글이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성실하게 잘 살려고 노력을 하였다.


하루를 최선을 다하며 살던 나 역시 건강을 크게 한번 잃어 보았다. 나는 회사일을 무리하게 했었고 회사와 아르바이트를 오랜 기간 병행하였었다. 그래서 건강검진에서 이상 소견이 발견되어 의사에게 불려 갔고 의사로부터 "죽으실 수도 있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3년간 치료를 받으면서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고 어린 내 아이를 걱정했던 시간이 분명 내 삶에 존재했었다.


나는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이별의 아픔을 주고 싶지 않았다.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소중한 사람들의 간절함으로 나는 다시 건강해졌다. 그리고 매일 아침 눈이 부시게 소중한 하루를 선물 받는다.


© vargazsphotography, 출처 pixabay



나는 나에게 주어지는 선물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그리고 나의 가족과 친구와 함께 나누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나의 삶에서 나에게 소중한 그들과 함께 그 시간을 사용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위해 시간을 귀하게 사용하고 있다. 나는 나의 심장이 두근거리는 작은 꿈과 큰 꿈들을 꾸며 기대하고 준비하는 시간을 행복하게 즐긴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가장 행복하게 살아내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전화 통화를 하고 끊을 때나 외출을 할 때 가족에게 반드시 하는 말이 있다.

"사랑해요"라는

오늘이 내 삶에서 마지막인 것처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마지막 모습이

사랑한다고 말하는 행복한 내 모습이 되도록.






대표 이미지 출처

© Jillwellingtonphotography,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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