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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하의 별 Aug 12. 2021

엄마의 서재

나와 내 가족의 깜짝쇼는 성공적이었다. 부모님과 동생네 가족은 우리를 보고 잠시 얼음이 되었다. 우리의 갑작스러운 방문은 "평범한 어느 날에 아주 의미 있는 특별한 선물"이 되었다. 복날에 가족이 모여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맛있는 음식을 배달시켜서 먹었다. 아주 오랜만에 뵌 부모님은 동생 부부의 살뜰한 보살핌으로 잘 지내시는 것 같았다.


아빠의 정원은 꽃과 나무 열매들로 가득 차 있었고 나비들은 꽃들 사이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나무에 새들은 한참 지저귀고 매미소리가 정겹게 들렸다.


© Monoar_CGIphotography, 출처 pixabay

거실 한쪽 벽면은 붙박이 책장으로 되어있었다. 벽 전체가 책꽂이였고 책들이 즐비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아빠 책들도 있었지만 엄마 책이 더 많았다. 내 부모님은 평소에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 짐을 정리하면서 아빠와 엄마 책들을 많이 버렸다고 말을 하는데도 여전히 많이 남아있었다. 이번 집에는 엄마의 서재를 거실에 꾸며 놓았다.


그런데 거실이 답답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통창이 앞뒤로 크게 있어서 인가보다. 앞의 전면 창은 멀리 산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을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부모님 집은 멀리 산이 보이고 가까이는 논의 벼들이 예쁘게 내려다보였다. 더 가까이에는 아빠의 정원이 한눈에 들어와서 마치 어느 산장에 놀러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하루 종일 풀벌레와 새소리 그리고 바람소리를 들으면서 거실 흔들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말씀하시는 엄마의 이야기를 나도 재현해 보고 싶었다. 살랑살랑 스쳐가는 바람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그렇게 엄마의 서재는 햇볕이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자연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있었다.


© beefuntripphotography, 출처 pixabay

몸을 움직여서 정원을 가꾸는 것을 좋아하는 아빠는 하루 종일 바쁘다고 한다.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엄마는 그런 아빠 덕분에 집안과 밖을 깔끔하게 유지하면서도 차를 마시면서 엄마의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다. 엄마는 노안으로 인해서 예전만큼 책을 오래 읽을 수 없는 것이 아쉽다고 말을 했다. 세상이 참 좋아져서 책도 읽어주는 것이 있다고 나에게 자랑하는 엄마의 얼굴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보였다. 엄마의 삶에서는 책이 평생의 친구인데 노안으로 많이 만날 수 없었던 것이 정말 아쉬웠었나 보다.



책을 좋아하는 엄마 덕분에 나는 어린 시절부터 책이 많은 집에서 성장을 했다. 나의 최초 기억은 4살 무렵인데 그때 서재에 아주 큰 책들이 빼곡했고 나는 그 책들을 꺼내어 놀곤 했던 기억이 난다. 5살 때 한글을 익힌 나는 그 서재에서 큰 책을 꺼내서 아는 글자만 건너뛰기 하듯이 읽으면서 놀았다. 엄마 말씀으로는 법전이었는데 조사 빼놓고는 다 한문이어서 나는 은, 는, 이, 가 이런 글자만 아무 의미 없이 읽었다고 한다. 그 후 엄마는 어린이용 세계문학전집을 사서 그 서재의 한쪽 책장에 정리해 주었고 나는 그곳에서 재미있게 책을 읽으면서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곤 하였다. 서재에 있던 큰 책상과 뱅글뱅글 돌아가는 의자는 나에게 친숙한 장난감이었고 나도 엄마, 아빠처럼 그곳에 앉아서 의기양양하게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항상 일이 많았던 바쁜 엄마, 아빠는 퇴근이 늦었고 아가였던 동생은 나와 놀기 힘들었던 그 시절 내 책은 나에게 친구가 되어주었다.


© HeungSoonphotography, 출처 pixabay

엄마와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를 들으면서 거실에 앉아서 도란도란 책에 관해서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나에게 책에 관해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다가 손녀 두 명이 떠들면서 왔다 갔다 하면 우리의 이야기는 아이들로 인해서 잠시 끊겼지만 그런 아이들을 보는 엄마의 눈길에는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엄마는 가족이 함께 모여있는 것만으로도 많이 행복해 보였다.



아빠의 책들은 작은방에 정리가 되어있었다. 거실은 주로 엄마가 사용하는 책으로 정리를 하고 작은방에는 미처 정리해서 버리기 아까운 아빠 책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자연으로 둘러싸여 있는 정원을 보면서 테라스에 앉아서 책을 읽으면 정말 기분이 좋을 것 같았다. 내 부모님의 평상시의 삶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아빠의 정원에 핀 백합

아빠는 정원을 가꾸느라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그 점이 아쉬우면서도 정원을 가꾸면서 새로운 재미를 알아가는 아빠의 얼굴이 행복하게 보였다. 공기도 좋고 바다와 산이 있는 곳에서 마치 여행자처럼 하루하루를 편안하게 즐기면서 살고 있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도 함께 행복해졌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은 거실에 모여 앉아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식들의 떠드는 소리가 어떤 연주보다도 아름답게 느껴지는지 엄마와 아빠의 얼굴은 즐거워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아빠는 "오늘은 최고의 복날이다!"라고 말씀을 하였다.

나는 그런 아빠를 보면서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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