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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하의 별 Nov 29. 2020

한 조각의 신혼 이야기

나의 신혼시절과 지금의 주말 이야기

항상 퇴근이 늦는 신랑이 유일하게 늦잠을 자는 토요일은 온 가족이 함께 늦잠을 잘 때도 있고 나만 일어나서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때도 있다. 가족들이 다 잠든 시간은 나의 자유 시간이므로 혼자 사부작 거리면서 뭔가를 하면 내 마음도 즐거워진다.


신랑과 결혼해서 처음 신혼을  기흥에서 보냈다. 나는 광화문으로 출퇴근을 해야 해서 대중교통으로 왕복 4시간 30분에서 5시간 정도의 시간이 늘 소요가 되었다.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로 바쁜 나를 위해 신랑은 꼭 따뜻한 아침밥을 준비해 줬다.


입이 짧고 예민한 나에게 음식이 잘 맞지 않았지만 신랑의 정성을 생각해서 나는 그가 차려주는 아침을 매일 먹었다 그리고 내가 먼저 출근을 했다. 퇴근 후 버스에서 내려서 우리의 신혼집인 원룸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서면 작은 창문으로 신랑의 옆모습이 보이곤 했다.


부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은 베란다 같은 곳에 싱크대 하나가 놓여 있었고 화구 하나 짜리 가스레인지가 있는 작은 공간에서 신랑이 열심히 아침에 사용했던 그릇을 설거지하고 있었다. 그러면 그의 옆모습이 밖에 나 있는 작은 창문으로 보였다.


신랑의 회사와 우리의 원룸은 자차로 5분 거리라서 멀리 출퇴근하는 나를 위해 살림은 모두 신랑이 도맡아 했다.


맞벌이를 하셨던 친정엄마는 집에 일하는 이모님을 두어서 결혼 전에 나는 살림을 해 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신랑이 결혼 허락을 받으러 우리 집에 왔을 때 엄마는 나의 골골함을 강조하고 살림도 전혀 배운 적이 없다며 결혼하면 그가 손해라는 것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반품은 안된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그는 나의 부모님 앞에서 라면 끓여먹고살면 된다고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나는 정말 라면만 먹어야 하나 걱정했는데 결혼 후 신랑이 몇 가지 요리를 할 줄 알아서 그걸로 번갈아 가면서 우리의 신혼 3년을 무사히 잘 보냈다.



신혼 때부터 살림을 도맡아 하던 신랑은 몸에 습관이 들었는지 쉬는 주말에 집에서 바쁘게 움직인다.

오랜 맞벌이로 전업주부가 된 지 몇 년 안된 나는 아직 살림에 서툴러서 할 줄 아는 것이 많지 않다.


 단, 집 정리와 청소는 매일 열심히 하지만 욕실 청소는 해본 적이 없다. 화장실 두 곳을 신랑이 주말에 한다. 재활용 쓰레기도 내가 분류해서 담아놓으면 신랑이 들고나가서 버린다. 음식물 쓰레기를 내가 버려본 적이 없다. 신랑이 주 중에 버리기도 하고 주말에 버리기도 한다. 내가 해보려고 하면 신랑이 하는 말이 있다.


"우리 자기는 더럽고 힘든 일은 하지 마세요! 그런 건 내가 하면 돼요"라는 말을 그가 한다.


그래도 내가 좀 도와주려고 따라나서면 화를 낼 줄 모르는 신랑의 얼굴이 굳어진다. 정말 싫어하는 것 같아서 멈칫하게 된다. 난 도와주려고 한 건데 괜히 서운하다.

신혼 때 신랑은 나에게 많이 미안해했다. 결혼 후 신혼집을 서울에 마련하지 못해서 미안해했고, 서울에 직장이 있는 내가 멀리 출퇴근해야 하는 것을 마음 아파했다.
내가 버스에서 내릴 때 가끔 퇴근이 빨라서 집안일을 빨리 마친 신랑이 마중 나올 때도 있었다.


나를 기다리는 그가 멀리서 보이면 왠지 마음이 설레고 기뻤다.


버스가 멈추고 내가 내리면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반기던 신랑의 얼굴이 아직도 내 기억엔 선명하다.


살짝 노을이 지는 그 골목길을 신랑과 이야기하면서 걸어오던 그때의 시간들이 나에겐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신랑의 집안일은 나를 향한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있는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지금은 전업주부라서 내가 주말에 열심히 식사를 차리면 맛있게 먹은 신랑이 자기 있는 시간만이라도 나보고 쉬라고 설거지를 한다.
그는 집안일은 힘을 쓰는 일이 많기에 힘이 더 센 남자가 해야 한다고 늘 말을 한다.


그를 위해 토요일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난 나는 빵을 굽고 간소한 우리들만의 브런치를 차렸다.


아이와 브런치를 하면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를 위해 나의 애정과 소박한 메뉴로 식탁을 가득 채웠다.



호두와 건포도를 듬뿍 넣어서 구운 빵


우리들만의 간소한 브런치


그가 쉬는 날 유일하게 좋아하는 운동인 골프를 치러 3시간 정도 밖에 다녀온다.
골프연습장 이용료가 회사 복지몰을 이용해서 결제하면 매우 저렴해서 가정경제에 부담이 되지 않는다.


나는 간소하게 사는 것을 추구하지만 가족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신랑이 너무 좋아하는 골프를 치도록 2년간 한 대학에서 스포츠학과 교수님의 주말 골프 강좌 수업을 듣게 해 주었고 중급과정까지 마치고 지금은 혼자서 연습만 한다. 골프채도 내가 일한 돈으로 선물해 주었다. 신랑은 그 골프채를 아끼고 또 아낀다.


브런치를 먹고 난 후 신랑은 3시간 정도 외출을 하고 오면 그가 오는 시간에 맞추어서 나는 저녁을 준비한다.
동생이 김장김치를 보내줘서 토요일 저녁 메뉴는 돼지고기를 삶아서 수육을 준비했다.


돼지고기 수육과 동생이 보내준 김장김치


간소하게 김치와 수육 두 가지 메뉴였지만 우리 가족은 정말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은 후 신랑은 아이 수학 공부를 두 시간 정도 봐준다.
아이는 아빠와 수학 공부를 하는 시간이 너무 즐겁다고 말한다. 밖에서 들으면 무엇 때문에 웃는지 궁금해서 내가 들어가 볼 때도 있다.


하지만 3주째 온라인 수업을 받고 있는 아이와 오랜만의 분리가 된 나는 다시 거실로 나와서 나만의 시간을 즐긴다.


우리의 평범하지만 너무나 소중하고도 행복한 주말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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