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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하의 별 Dec 29. 2020

독일인 선생님

행복을 찾아 떠나는 지구별 여행

어릴 때 아빠가 사업을 해서 집안이 부유했지만 내가 일곱 살이 되던 해에 아빠는 친구에게 사기를 당해서 아빠 회사는 부도가 났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과 2학년 때 힘들게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부모님은 다시 재기를 하려고 열심히 맞벌이를 하였고 나는 동생과 있는 시간이 많았다. 다행히 초등 1학년 때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동생이 학교까지 종종 따라와도 선생님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동생과 함께 교실 안에 머물게 해 주었다. 동생이 학교까지 따라오는 일은 엄마가 그 사실을 알게 된 초등학교 1학년까지였다. 초등 2학년 때 선생님은 나를 이유 없이 미워했다.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교과목에 관해 아이들에게 질문을 하면 아무도 손을 안 들어서 내가 대답하고 싶어 손을 들었지만 선생님은 손을 든 나를 시키지 않고 손을 들지 않은 다른 아이를 지목해서 대답하게 하였다.




어느 날 교실에서 우유가 하나 없어졌는데 선생님이 나를 앞으로 불러내어 우유를 왜 몰래 먹었냐고, 왜 도둑질을 했냐고 혼을 내었다. 미숙아로 태어난 나는 입이 짧아서 대부분의 음식을 거의 잘 먹지 않았다.


나는 우유도 비릿한 맛이 싫어서 안 먹었는데 선생님은 교실에서 우유가 하나 사라진 것을 내가 먹었다고 혼을 내었다. 나는 정말로 안 먹었다고 선생님께 말을 했지만 선생님은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출석부를 들어서 내 머리를 세차게 몇 번 내리쳤다.




나는 머리가 너무 아팠고 정말 억울했다. 한참 혼나고 자리에 가서 앉았는데 눈물이 났다.


 수업을 마친 후 한 아이가 선생님께 자기가 우유를 두 개 먹었다고 고백을 하였다. 그때 선생님과 나는 눈이 마주쳤는데 나에게 선생님은 사과를 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나는 그 이야기를 하였고 화가 난 엄마는 학교로 찾아가서 선생님께 항의를 하였지만 엄마도 사과를 받지 못했다.


그 당시는 학교 선생님께 돈 봉투를 들고 가던 시대라서 아마도 그때는 우리 집이 가난해서 돈 봉투를 한 번도 안 주었던 것이 선생님이 나를 미워한 원인이었을 거라고 속상한 마음에  지금까지 엄마가 말을 하곤 한다.



그 후로 부모님은 재기에 성공을 하였다. 나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갔다. 전학 간 학교에서는 좋은 선생님을 만났지만 나는 그때의 기억이 오래 남았는지 말이 별로 없는 아이가 되었다.


나는 아무도 나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그런 당혹스러움을 초등학교 2학년 때 알게 된 것이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계속 좋은 선생님을 만났지만 나는 말을 하지 않고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않는 조용한 아이로 성장을 하였다. 또한 잦은 전학으로 낯선 곳에 빈번하게 있었던 나는 중학교 다닐 때까지는 친구가 많이 없었다. 나는 빈번한 전학의 탓도 있었고 혼자 사색을 즐겨해서 중학교 다닐 때는 "빨강 머리 앤"이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고등학교 다닐 때도 동일한 별명을 가졌지만 중학교에서와는 달리 고등학교에서는 내가 가끔 엉뚱한 행동을 한다고 해서 그 별명이 따라다녔다. 나는 피부가 하얗고 주근깨도 없었지만 내가 빨강 머리 앤 책을 학교에 늘 들고 가 읽어서 아이들 눈에 책이 쉽게 보여 그 별명으로 불렸는지도 모르겠다. 별명이 길어서 "앤"이라고 부르는 친구들도 많았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는 친구들과 웃으면서 잘 놀고 활발하게 지냈지만 여전히 내성적인 성격이 남아있었다. 마치 다른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친구들과 있을 때는 수다도 떨고 미소를 짓곤 했다.


내가 대학교를 다닐 때는 혼자 여행을 즐겨했지만 대부분 당일로 다녀오는 것이었고 어느 곳에서 잠을 자고 오는 여행을 혼자 해 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나는 독일로 유학을 떠나 잠시 대학에 속해 있는 어학원에서 독일어 수업을 받게 되었고 그곳에서 담임선생님으로 독일인 여자 선생님을 만났다. 그녀는 외국인을 위한 독일어 교습법과 심리학 두 가지 학위를 가지고 있었고 수업 시간에 항상 조용히 있는 나에게 마음을 쓰며 잘 챙겨 주었다.



그녀는 아침에 학생들이 교실로 들어올 때 교실 문 앞에 서서 한 명씩 포옹을 해 주었고 공부를 다 마치고 집에 갈 때도 포옹을 일일이 해 주었다. 나는 그녀가 포옹해 주는 것이 너무 어색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꼭 안아주면서 행복을 빌어주는 말을 하였다. 그녀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그녀의 품에 한 번씩 안겨야 교실로 들어가서 공부를 할 수 있었고 공부를 다 마친 후에는 집에 갈 수 있었다. 유럽 곳곳에서 온 아이들도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그녀의 품에 안겨주었다.



나는 그녀가 포옹해 주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으나 매일 두 번씩 그녀의 품에 안기면서 점차 그녀의 품이 포근했고 따뜻한 그녀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녀는 행복을 빌어주는 말과 함께 늘 긍정적인 말도 함께 해 주어서 마치 내가 그녀의 마법에 주문이 걸려 세뇌가 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말을 반복해 들으면서 어쩌면 내가 행복해질 것만 같고 어떤 일이든 잘 해낼 것 같다는 생각이 나중에는 들게 되었다.



그녀는 항상 나를 칭찬하며 내가 어쩌다 마구 떠드는 유럽 친구들 사이에서 개미 목소리로 조용히 말을 시작하거나 손을 차마 위로 들지도 못하고 책상 위에서 손을 대고 하늘로 향하는 모습만 취해도 그녀는 나를 어떻게 보았는지 떠들고 있는 유럽 아이들을 일일이 조용히 시키고 나를 지목해서 다시 말하게 하였다. 내가 말을 하면 그녀는 무한 칭찬을 하면서 자신감을 북돋아 주었고 내가 수업 시간에 자신감 있게 말하도록 계속 응원을 해 주어서 2주 정도 지난 후부터는 비로소 나도 유럽 여기저기에서 온 아이들처럼 많이 떠들면서 활발하게 수업을 참여하게 되었다.



나는 나에게 적극적이면서 활발한 성격이 있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녀는 자주 나에게 프라하의 별은 본인이 모르는 성격이 있다고 말해 주었다. 마음 깊은 곳에 있어서 모를 뿐이지 잘 들여다보면 알 수 있고 곧 만날 수 있다고 말해 주곤 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반복해 들으면서도 믿지 않았고 그냥 하는 소리겠지라고 넘겼는데 더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그녀의 말이 맞았음을 실감한다. 아주 어릴 적 겪었던 나의 힘든 일이 트라우마로 남아서 나는 움츠러져 있었던 것이고 그녀를 만나서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된 것이었다.



어느 날 금요일 그녀는 나에게 주말의 계획을 물었고 나는 홈스테이 집에 있을 거라고 말을 하였다. 그녀는 독일에서는 주말 표를 구입할 수 있고 목적지를 말하고 구입한 주말 표로 여러 번 기차를 갈아타고 그곳을 다녀올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너무 저렴해서 학생들이 종종 그 기차표를 구입해서 주말에 여행을 떠난다고 나에게 주말여행을 권했다.



혼자 여행을 떠나 자고 온 적이 없던 나는 선생님의 지도하에 모든 정보를 얻었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던 나는 활자에 관심이 많았고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구텐베르크 박물관에 직접 가보고 싶었다. 그 이야기를 선생님과 나누면서 나의 마음은 설렜고 내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많이 커졌었다. 나의 혼자만의 첫 여행지는 구텐베르크 박물관이 있는 마인츠로 결정이 되었다.



나는 혼자만의 주말여행을 무사히 잘 다녀왔다. 그녀는 나에게 아이들 앞에서 여행하고 온 마인츠에 대해 설명을 하게 하였다. 나는 여행지에서 가져온 팸플릿과 박물관에서 무료로 주었던 안내문 그리고 엽서를 들고서 내가 경험한 것들을 신나게 이야기를 하였다.





그 후 나는 주말마다 내가 모르는 독일 도시를 혼자서 여행을 다녀왔다. 그 성공의 경험은 방학 때 50일이 넘는 유럽여행을 계획하게 하였고 그 여행도 무사히 잘 다녀올 수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항상 "나 자신을 믿어 그러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어"라고 자신감을 주는 말을 하였다.



나는 그녀의 마법에 주문이 걸린 아이처럼 나 자신을 믿는 사람이 되었고 다른 사람들이 안될 거야 무모하다고 말하는 일에도 겁 없이 뛰어드는 내가 되었다.


잠시 어학원에서 만난 그녀였지만 내가 삶을 살아갈 때

삶에 대한 나의 태도를 바꾸어준


그녀는 나의 소중한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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