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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하의 별 Jan 05. 2021

혼자인 줄 알았던 여행이 혼자가 아니었어_볼로냐

그녀들을 처음 만난 볼로냐

독일에서 한여름에 혼자만의 배낭여행을 계획했었다.
그동안 주말마다 독일 여러 도시를 혼자 다녀왔기에 유럽 배낭여행도 혼자 떠나고 싶어 졌다. 인터넷도 핸드폰도 없던 시절에 나는 여행책자와 이미 몇 번의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의 정보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은 내 작은 수첩에 그들이 투숙했던 호텔이나 유스호스텔 주소와 전화번호들을 적어주었다.



나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여행한다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해서 평소 학교 다닐 때 사용한 작은 백팩에 내가 사용할 물건들을 최대한 엄선해서 골랐다. 한여름이었기에 다행히 옷의 부피와 무게는 적게 나갔다.
미니스커트 1벌, 반팔 티 2벌, 원피스 1벌, 긴 바지와 반바지 그리고 긴팔 점퍼 각각 1벌, 잠옷 1벌, 속옷, 샌들을 가로 15cm  세로 20cm 되는 배낭에 챙겨 넣었다. 50일 조금 넘는 일정을 계획했지만 내가 혼자 들고 다닐 수 있는 무게의 짐을 가져가야 했었다. 날씨가 좋은 여름이라 숙소에서 잠자기 전에 빨아서 널어놓으면 그 다음 아침에는 바짝 옷들이 말라 있어서 내가 챙겨간 의류들이 부족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주말마다 독일 곳곳의 도시로 여행을 다녔지만 유럽을 나 혼자서 떠나려니 이것저것 고민이 되는 일들이 많았다. 나는 여행의 경로를 정하지 않고 떠나는 여행을 좋아하지만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볼로냐, 로마를 우선 나의 목적지로 정하고 중간에 마음에 드는 도시가 있으면 더 추가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이탈리아에서 여행을 마치면 스위스로 가서 자연을 마음껏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스위스도 나의 여행 경로에 포함을 시켰다. 하지만 스위스의 어떤 특정한 도시를 정하지 않았고 내가 여행하는 동안에 가고 싶은 곳으로 결정하려고 마음먹었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함께 지내는 기숙사의 유럽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그들은 나의 안전을 걱정하며 본인들이 여행하면서 다녔던 숙소와 또 그 지역에 있는 자신들과 친구들의 집 전화번호를 나에게 가르쳐 주며 혹시 여행하다가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곳으로 전화하라고 말을 해주었다. 본인들의 가족과 친구에게 부탁을 미리 해놓겠다는 말도 포함해서 말했다.



나는 독일에서 공부하기 전 한국에 있을 때 유럽 사람들은 지극히 개인주의라는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들이었고 기숙사의 공용 부엌에서 각자 요리를 하지만 원탁의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고 생활을 하다 보니 한국식으로 "정"이라는 것이 서로 생겼다. 사람 사는 곳은 장소만 다를 뿐 또 다르게 보이는 정서일 뿐 그 근본적인 "마음"은 동일하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됐다.



나는 친구들의 걱정과 격려를 받으면서 독일에서 이탈리아로 나의 유럽여행을 시작하였다.
처음 도착은 베네치아였고 그곳에서 며칠을 보낸 후 다시 볼로냐로 출발했다.


볼로냐의 중앙역에 내린 나는 주위를 둘러보고 버스 탈 곳을 찾았다. 볼로냐에서는 베네치아에서처럼 호텔 예약을 안 하고 유스호스텔로 가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그곳으로 가는 버스를 찾고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딱 한 권의 여행책자에서 그곳을 추천하기도 했고 비용이 호텔보다 많이 저렴해서 마음이 혹하였다.


버스정류장을 발견하고 운전 가사에게 행선지를 확인 후 나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볼로냐 도시를 달리다가 어느덧 도시를 벗어나 나무와 풀이 보이는 외곽을 달리고 있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들판은 무릎 정도 되어 보이는 풀들이 촘촘히 올라와 있었고 가끔 불어오는 바람이 그 풀들을 움직이게 하고 있었다.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그런 들판을 달리던 버스는 어느 정류장에서 멈추었다.

운전기사는 나에게 여기서 내린 후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가면 볼로냐 유스호스텔이 보일 거라고 말을 해 주었지만 도저히 나는 풀과 길을 구분할 수 없어서 다시 그에게 길이 어디 있냐고 물었고 그는 버스가 다니는 길을 따라서 걸어가다 보면 사람 한두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이 옆으로 나올 거라고 말해 주었다. 내가 그에게 얼마쯤 걸어가면 되냐고 물었더니 10~20분 정도는 걸어야 할 거라고 말해 주었다. 그곳에 나를 내려주는 것이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고민을 하던 그가 알겠다면서 다시 버스를 움직였다. 조금 더 달려서 버스는 그 사잇길이 보이는 곳에 멈추었고 나는 그곳에 내렸다.

내가 내린 후 버스는 출발했고 나는 혼자 남았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나의 시선에 띄엄띄엄 있는 나무들과 종아리까지 오는 풀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는 풍경이 들어왔다. 나의 시선으로 주변을 돌아보니 매우 적막했고 그 적막함을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풀들의 소리가 채워주고 있었다. 바람은 나뭇잎들을 흔들었고 공기 중에 그 나뭇잎이 떨리는 소리도 나에게는 들렸다.



나는 풀들 사이로 좁은 폭의 길을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 주변에 사람은 나 혼자였고 아무도 없었다. 나의 시선은 간절하게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보이지가 않았다. 처음 가는 길이라서 왠지 운전기사의 말이 의심이 되었고 과연 이 길의 끝이 있을까라는 궁금증도 생겼다.


런던 여행때 내셔널갤러리에서 찍은 고흐의 싸이프러스가 있는 밀밭




새소리도 다른 소리도 없이 오로지 바람에 흔들리는 풀과 나뭇잎 소리들만 들리는 그 적막감은 마치 [고흐의 싸이프러스가 있는 밀밭]으로 하염없이 내가 걸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과 공간이 멈춘듯한 기분이 들었고 나는 그 그림 속 안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시간의 흐름조차 가늠이 되지 않을 때 조금 멀리서 사람의 형상을 한 두 명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여자였고 키는 둘 다 170cm 정도 되어 보였다. 조금 더 가까이 그녀들이 왔을 때 나는 빠른 걸음으로 그녀들을 향해 걸었고 그녀들과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그녀들에게 영어로 인사를 했다. 그녀들은 나의 인사에 대답을 건네주었고 나는 유스호스텔의 위치를 그녀들에게 확인을 하고 싶어서 다시 물었다.


그녀들은 서로 독일어를 사용하면서 유스호스텔의 위치에 관한 정보를 나누고 있었다. 아마도 나에게 설명을 해주려고 둘이서 의견을 나누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 독일어가 마치 한국어처럼 너무 반갑게 들려서 흥분된 목소리로 나 역시 독일어로 그녀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녀들은 동양인이 갑자기 독일어로 그녀들의 대화에 끼어드니까 화들짝 놀라며 나에게 독일어로 말할 줄 아냐고 물었고 나는 독일에서 공부 중인데 방학이어서 배낭여행을 왔다고 말을 했다.


그녀들과 나는 마치 외국에서 같은 나라 민족끼리 만난 것처럼 끌어안고 좋아했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랬을까?"라는 의문이 들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게 아주 많이 반가웠다.



그녀들과 나는 서로 말을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는 독일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들은 독일인이었고 그녀들 역시 나처럼 유럽을 배낭여행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내가 찾는 그 유스호스텔에 짐을 풀어놓고 버스를 타러 나오고 있는 중 이라고 나에게 말을 했다.


그녀들은 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나와 함께 그 유스호스텔로 다시 방향을 돌려서 가 주었다. 우리가 만난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유스호스텔이 있다고 나에게 말해 주었고 우리는 그 좁은 폭의 길을 따라 걸으면서 그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함께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짧은 사이에 나는 그녀들과 조금 친해진 느낌이 들었다. 함께 유스호스텔에 도착을 하였고 나는 체크인을 하고 방을 배정 받아서 나의 짐을 풀어놓고 그녀들을 따라 다시 볼로냐 구시가지로 나가기로 했다. 우리는 다시 그 좁을 길을 따라 걸어 나와 버스를 타고 볼로냐 구시가지로 향했다.



©  RitaMichelonphotography, 출처 pixabay



우리는 볼로냐 구시가지에 도착해서 함께 밥을 사 먹고 필요한 물품들을 마트에서 구입을 했다. 볼로냐 밤거리는 여러 음악가들의 연주 소리로 아름답게 들렸다.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여러 악기들의 소리가 조화롭게 어울렸다. 살짝 어둑해지는 느낌과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공기가 나는 좋았다. 우리는 밤거리를 걸으며 다시 버스를 타고 유스호스텔로 돌아왔다.



유스호스텔의 주변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어떻게 이런 곳에 건물 하나 달랑 있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 유스호스텔 안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있었다. 독일에서 주말마다 여행할 때 머물렀던 유스호스텔에 비하면 볼로냐의 유스호스텔은 정말 허름해서 나는 속으로 실망을 하였다. 하지만 숙박비용이 저렴하니 어쩔 수 없지 하면서 마음속으로 나를 위로하였다.



주변이 어둡고 하늘에 달과 별들만 떠 있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아이들이 건물 마당 쪽에 몰려 앉아서 이야기 하는 곳에 함께 있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주변에 건물이 하나도 없어서 인지 별들이 매우 잘 보였고 마치 내가 앉아 있는 곳으로 떨어질 것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마당 가운데 쯤 장작을 몇 개 쌓아놓고 불을 때고 있었다. 내가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 여행을 가서 캠프파이어를 하는 것처럼 그런 모양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편하게 그 주변에 아무렇게나 앉아서 서로의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와 앞으로 어디로 갈지 그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여러 나라의 언어가 자연스럽게 그곳에 있었고 모닥불 소리가 그 언어들 사이에 섞여 있는 듯한 느낌이 좋았다. 왠지 시공간을 초월해서 어떤 다른 공간에 있는 그 느낌이 나에게는 꿈처럼 느껴졌고 마치 "한여름 밤의 꿈" 처럼 나의 기억에 남았다. 그 한여름 밤의 꿈 안에 나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었다.



볼로냐에서 머무르는 동안에 나는 그 유스호스텔을 이용하였고 처음에는 허름해서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곳이 시골집에 가서 놀다가 정든 모양으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는 볼로냐 시내를 마음껏 돌아다니다가 버스 시간에 맞춰서 볼로냐 시내에서 다시 유스호스텔로 돌아오는 일상을 반복했다. 그 독일인 친구 두 명과는 여행경로가 맞으면 함께 움직이고 맞지 않으면 볼로냐 중앙역에서 헤어졌다가 유스호스텔로 돌아오는 시간을 서로 맞춰서 같은 버스를 타고 돌아오곤 했다. 그녀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점차 많아지면서 우리는 서서히 친해지게 되었다.



나는 다음 여행지를 그녀들과 함께 볼로냐에서 기차로 한 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피렌체로 결정하였다. 피렌체에 대해 잘 몰랐지만 그녀들에게 그 도시에 대해 설명을 듣고 문득 나는 피렌체가 너무 궁금해졌다. 그래서 나는 그녀들과 함께 피렌체로 향했다.











epilogue


이 이야기는 핸드폰도 인터넷도 없던 1990년대 나의 여행 이야기입니다.  피렌체, 로마, 베네치아, 스위스 여행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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