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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하의 별 Jan 08. 2021

보는 관점에 따라서 아이는 달라진다

아이와 함께 떠나는 행복한 지구별 여행

새벽에 잠이 깬 나는 다시 잠이 안 와서 글을 쓰다가 아침 7시쯤 다시 잠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아침에 늦잠을 자다가 아이의 담임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놀라서 잠을 깼다. 선생님은 학교 교무실에 있는데 나는 잠을 자다가 전화를 받아서 어찌나 민망한지 숨을 곳이 있으면 정말 숨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었다.


아이의 중학교 2학년 2학기 성적표가 나와서 선생님은 카톡으로 성적표를 촬영해서 보내주고 상담 전화를 하였다. 나는 아이가 2학기 기말고사를 보고 결과를 알고 있어서 어느 정도의 성적이 나올지는 가늠하고 있었지만 지금 나온 성적표는 2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합쳐지고 필 고사를 보는 이외의 과목들이 포함되었다. 그동안 아이가 학교 갈 때마다 열심히 보았던 수행평가도 포함되어 있는 2학기 총 성적표인 것이다.


나는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서 아이가 중학교 2학년의 1년 동안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잘했고 과목별로 수업 시간에 집중을 잘해서 다른 과목 선생님들이 칭찬을 한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아이의 담임 선생님께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아이는 아직 방학을 안 했고 온라인 수업을 받고 있다. 다음 주에 학교에 한번 출석해서 방학식을 한다고 아이가 말했다.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도 학교에서 중간 기말고사가 있었다. 그때도 아이는 나와 함께 열심히 공부해서 필 고사 시험을 다 맞거나 아니면 한 개 정도 틀리는 성적을 가져왔다. 하지만 그때 담임 선생님은 내 아이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였다. 공부를 잘한다고 아이가 선생님께 항상 예뻐 보인다는 것은 아니다. 학기 초에 나는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자주 갔었다. 이유는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늘 40분 정도는 늦게 나와서 혼자 하교해야 하는 것이 마음이 쓰인 나는 아이를 데리러 가곤 했다. 아무래도 친구들과 함께 오지 못하고 혼자 하교할 때는 안 좋은 일도 생길 수 있어서 나는 아이를 마중하러 학교에 갔는데 그날따라 1시간이 넘게 아이가 안 나와서 아이의 교실 앞으로 가서 기다렸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나를 교실 안으로 들어오게 하고 아이를 잠시 복도로 내보냈다. 아이가 하교를 못한 이유는 책상 서랍과 사물함 정리를 잘 못해서 그것을 다 마친 후 보내려 한 것이라고 선생님은 나에게 말을 하였다.


선생님은 아이가 수업 시간에 책상 위에 손을 올려놓고 지우개나 연필을 만진다고 보통 다른 아이들은 손가락을 서로 깍지를 끼고 서랍 안에 손을 넣어 놓게 하면 얌전히 그렇게 있는데 왜 프라하의 별님의 아이는 말을 안 듣는지 도통 이해가 안 된다고 말을 하였다. 선생님은 규칙을 지키는 것을 잘 못하는 아이는 사회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한참 말을 하였다.



아이가 초등 3학년을 다닐 때 아이의 학급은 선생님이 정해놓은 규칙이 많았다. 손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면 안 되고 책상 서랍과 사물함은 항상 정리가 되어 있어야 하고 책상은 앞과 뒤의 줄에서 벗어나면 안 되고 등 아이가 나에게 말해주는 것을 들으면서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줄 맞춤과 서랍 정리하라는 말을 들었지만 책상 위에 손을 못 올려놓게 하는 것은 없었는데' 라고 생각이 들었고 과연 활달한 내 아이가 잘 지켜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나의 염려가 지나친 것이 아니었다. 내 아이는 활발했고 궁금한 것은 바로 물어서 해결해야 하는 성격에 본인이 납득이 안되면 또 아니라고 말하는 아이라서 담임선생님에게 버거운 아이였다. 결국 선생님은 내 아이가 힘들었고 상담 신청을 해야 하는 사람은 안 하고 상담을 안 해도 되는 사람은 학교에 와서 상담을 받았다고 나에게 왜 상담을 신청 안 했냐고 말을 하면서 마침 복도에 내가 보여서 누구의 학부모님인지 확인 후 상담을 하러 들어오게 한 거라는 말을 들었다.



호기심이 많은 내 아이는 선생님에게 산만한 아이로 비추어졌고 나는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산만한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가 되었다. 그런 말을 선생님에게 걱정 섞인 염려와 함께 들은 나는 너무 놀라서 울음을 터트렸고 내가 우는 것을 본 선생님은 매우 당황하면서 나를 위로하고 달래주었다.



아마도 선생님이 그동안 어떤 정해진 규칙을 잘 따르지 않는 내 아이가 많이 힘들어서 나를 보고 그날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나 역시 그런 상황이 갑작스럽고 당황이 되어서 울음을 터트리게 된 것이다. 나의 울음으로 불시에 시작한 상담은 종료가 되었고 나는 선생님에게 인사를 한 후 아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오면서 마음속으로 많이 울었다.



그 후 학교에서 아이의 성격과 5가지 지능검사를 할 때 아이가 지능지수도 높게 나오고 어떤 멘트가 달렸는데 빨간색 볼펜으로 밑줄이 쳐 있었다. 아이에게 줄을 직접 친 거냐고 물었더니 아니라는 아이의 대답을 듣고 혹시 검사지를 담임선생님이 먼저 읽으면서 줄을 쳤나 미루어 짐작만 했다. 그 줄을 친 부분은 "일반 사람들은 아이가 엉뚱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아이의 창의력은 매우 높습니다" 라고 되어있었다.



그 후 아이는 4학년이 되었고 그때 담임선생님은 쾌활한 내 아이를 많이 예뻐했다. 내 아이만 예뻐한 것이 아니라 반 아이들을 너무 예뻐했던 기억이 난다. 이벤트를 자주 했던 선생님은 아이들이 체육을 마치고 들어올 때 미리 교실에 초콜릿이나 사탕이 담긴 투명봉투를 서랍 안에 숨겨 놓고 아이들이 교실에 들어와서 발견하고 기뻐하는 그런 상황을 즐겨서 했다. 내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선생님은 다른 학년이 된 아이의 어린이날을 챙겨 주었다. 예쁘게 리본이 묶인 볼펜 한 자루였지만 나는 선생님의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그런 선생님에게 내 아이의 활동적이고 질문이 많은 성격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사랑스러운 아이로 비추어졌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학교 선생님을 비교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이는 그대로인데 사람이 어떤 관점에서 아이를 보는지에 따라 아이는 다르게 보일 수 있다고 말하고 싶어서이다.


내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나 4학년이나 중학생인 지금도 변한 게 없다. 아이는 그대로인데 어떤 관점에서 보는지에 따라 사회에 부적응한  아이로 보일 수 있고 또는 창의력이 뛰어나고 수업 시간에 적극 참여하는 아이로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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