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이맘때쯤의 일이다. 나는 많이 친하지는 않지만 서로 얼굴을 알고 지냈던 그녀의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을 들었다. 다들 신랑의 회사 근처로 이주해 온 우리들은 낯선 곳에서 적응하느라 힘들었다. 가족도 친구도 없이 오롯이 나 혼자서 아이의 육아를 책임지고 회사 일을 해야 했다. 다른 아이 엄마들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낯선 지역의 아파트 안이 세상의 전부였다. 아파트 단지 밖에는 개발이 덜 되었던 시기라서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유모차를 끌고 밖에 나가보았지만 갈 곳이 없어서 다시 되돌아와야만 했다.
지금은 도시처럼 개발이 완료되어서 문화적인 삶을 누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지만 그렇게 되기까지의 기간 동안 아기 엄마들은 서로를 의지하고 나이를 초월한 친구로 지내게 되었다.
나는 결혼도 늦게 하고 일하느라 아이도 늦게 낳았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웹디자인 재택근무를 했기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주변 엄마들과 친하게 지내기 힘들었다. 다행히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알게 된 엄마들 5명과 지금까지 자매처럼 서로 정을 주고받으면서 지내고 있다. 나보다 다들 나이가 한 참 어리지만 우리는 나이를 초월한 친구로 우정을 쌓고 있다. 우리는 서로를 "우리 멤버"라고 호칭을 하면서 소속감도 느끼고 있다.
나의 나이를 초월한 친구의 친구인 그녀가 2년 전에 갑자기 하늘별로 여행을 떠났다. 그녀는 건강검진에서 발견된 대장암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마흔이 채 안 되었던 그녀는 젊어서 인지 암의 진행 속도도 매우 빨랐다. 본인의 병을 알게 된 지 8개월 만에 그녀는 지구별에서의 삶을 마감했다.
그 소식을 전해 듣게 된 "우리 멤버"들은 한동안 마음 둘 곳을 못 찾고 우울해했었다. 친하진 않았지만 그녀를 알고 있었던 우리들은 그녀의 두 명의 아이들과 그녀의 남은 가족과 그리고 젊은 나이에 떠난 그녀의 삶을 안타까워하고 애도했었다. 그녀의 아이들은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었다.
나는 내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건강검진에서 이상 소견이 발견되어 병원으로 불려 가 의사로부터 치료를 권유받고 3년 정도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그때 내가 얼마나 이 세상을 살 수 있을지 불안했고 나의 삶 보다 내 아이의 미래의 시간에 함께해 줄 수 없는 안타까움과 걱정이 내 마음을 칼로 도려내듯이 아팠다. 다행히 나는 의사에게 3년 만에 "이제는 일반인과 동일하게 사셔도 됩니다! 다만 일 년에 한 번 정기검진만 받으러 오세요."라는 말을 듣고 안도하였고 그 이후 나는 가족들과 그동안 돈을 모으기 위해 절약 생활하면서 여행 한번 제대로 못 간 것을 한풀이하듯이 6개월에 한 번씩 우리 가족이 가고 싶은 나라를 여행 다녔다. 작년에 코로나가 번지기 직전 1월 초까지 우리 가족의 해외여행은 3년 동안 지속되었다.
나는 삶에서 돈이 많으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을 하고 많이 아끼면서 목돈을 모으는데 집중했고 내 가족과의 추억을 쌓는 것에는 다음으로 계속 미루었었다. 국내여행조차도 돈이 아깝다고 당일여행으로만 다녔던 지독한 짠순이 생활을 몇 년간 했었다. 내가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기한이 없다고 느꼈을 때 다 부질없게 느껴지고 제일 아쉬웠던 것은 "가족과의 온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 이였다.
여행은 일상을 떠나서 가족끼리 있는 것이라서 우리 가족만이 온전하게 시간을 보내기에 너무 좋았다. 나는 가족과 추억 쌓기를 열심히 하면서 내가 아팠던 시절도 잠시 잊고 평온한 삶을 살다가 그녀의 부고 소식을 듣고 다시 한번 "삶"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그녀와 인사와 대화 몇 마디만 나누는 사이였는데도 마음이 너무 아팠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그녀의 젊은 나이가 안타까웠다. 그녀가 얼마나 살고 싶었을지, 얼마나 그녀의 아이들의 미래의 시간에 함께 해 주고 싶었을지, 나는 그녀의 간절함을 알고 있기에 한동안 마음이 슬펐다.
우리는 나의 삶이 마치 무한한 듯 일상을 살고 있다.
"지금은 시간이 없어 다음에 하지 뭐."
"아이의 꿈을 먼저 이루고 나서 내 꿈은 그다음에 생각해 보지 뭐."
"가족은 바쁜 나를 이해해 줄 거야, 내가 조금 한가해지면 가족과 시간을 보내면 되지 뭐."
이런 생각과 말들을 하면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무한한 듯 착각하면서 살고 있다.
하지만 삶은 언제 어떻게 나에게 메시지를 보낼지 모른다. 부지불식간에 하늘별로의 여행 초대를 받게 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