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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전쟁

더 비기닝

by 고재욱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오래 지내지는 못했다. 엄마의 병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꽤 위험한 병으로 분류된, 엄마는 폐결핵 3기 진단을 받았다. 폐에 몇 개의 구멍이 생긴 상태였다. 나는 경상남도의, 서울과 384km 떨어진 할머니 집으로 보내졌다.

어린 아기를 보낸 엄마의 걱정과 달리 할머니의 방목형 돌봄 속에서 나는 아주 강하게 자랐는데, 뱀에 물리고 벌에 쏘이고 강물에 빠져 사라질 뻔했고 불장난으로 산을 태우기도 했다.


의외로 시골 구석구석은 작은 아이에게 재밋거리가 많은 곳이었다. 긴 나무 막대로 울타리를 치고 파란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축사에 사는 하마보다 더 큰 소, 검은 눈 속에 작은 촛불을 켠 채 짧고 뾰족한 뿔을 가진 흑염소, 옆집 아이를 용케 구별해서 옆집 아이만 쫓아내는 집 지키는 용감한 거위, 듣기와는 달리 목욕을 좋아하고 짧은 꼬리로도 반가움을 나누는 돼지, 도시에서는 두꺼운 종이 위에서나 만났을, 시골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그 동물들이 꼬마가 애정 하는 장난감이었고 친구이자 가족이었다.


나는 가끔 할머니의 심부름으로 겁도 없이 닭장 안으로 들어가 알을 꺼내오곤 했는데, 그럴 때 할머니는 '우리 강아지'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느 날 닭장을 살피던 할머니가 당분간 알을 꺼내지 말라고 했다. 나는 앞으로 할머니의 칭찬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슬펐다. 사실 닭장에서 알을 꺼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네 살짜리에겐.


알이 눈앞에서 보이지 않자 닭들은 자연스럽게 관심에서 멀어졌다.

이십여 일이 지나갔다. 얼음 밑으로 흐르는 물 같은 소리가 닭장에서 들렸다.

"달구 새끼가 나왔다" 할머니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나는 깡충깡충 온 마당을 뛰어다녔다. 그날부터 나는 노란, 어미 닭보다 더 큰, 병아리가 되었다.

제법 자란 병아리들이 마당에 나와서 일렬로 줄을 맞추어 걷고 있었다. 병아리가 지나간 자리에는 작은 꽃잎 자국이 찍혔다. 나는 줄 맨 뒤에서 가느다란 막대기로 병아리 기차를 운전 중이었다. 갑자기 이 녀석들에게 뭔가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당 한쪽 꽃밭에 놓인 크고 널찍한 돌을 밟고 분유 먹던 힘을 다해 점프를 했다. 그 바람에 놀란 병아리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때 발밑이 물컹거렸다. 나는 놀란 발을 급하게 치웠지만 병아리 한 마리가 계란 프라이로 변해있었다. 내가 목격한 첫 죽음이다. 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죽음 앞에서는 눈물이 난다는 걸 그때 알았다. 할머니는 오히려 나를 걱정했다.

"달구 새끼들이 와 기 나와서 우리 아를 놀라게 하노. 우리 강아지 안 다칬나?"

나는 할머니 품에 안겨서 감히 납작해진 병아리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뒤늦은 후회를 할 뿐이었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눈이 있었는데,

ㄷㄷㄷ

큰 누렁이도 녀석의 날카로운 부리와 날서린 사지창 앞에서는 꼬리를 내렸다. 너른 마당이 제 것인 양 활개 치는, 붉고 커다란 감투를 흔들며 새벽에게도 큰소리치는 붉은 수탉의 두 눈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음을 나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졸지에 카인이 되고만 나는 좀처럼 불편해진 마음을 추스를 수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 하염없이 걷고 걸었다. 슬픈 기억이 사라지기만 바랬다. 하지만 운명은 자주 장난질이다. 그것도 아주 짓궂게.

좁은 길, 집과 창고 사이로 있는, 마당과 집 뒤에 있는 헛간을 연결하는 그곳에서 나는 그만 수탉과 마주쳤다. 어쩌면 녀석이 나를 기다린 것 같았다.


나는 용서받고 싶었다. 자식 잃은 아비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고 만다'는 말을 녀석이 이해해주길 바랬다. 나는 평화를 원하며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녀석의 두 눈에 타오르는 불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자식을 잃은 아비의 심정을 온전히 이해하기엔 살아온 날이 일천한 꼬마였다. 붉은 수탉은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달려들었다. 나는 두려움에 눈을 감았다. 얼굴도 가물가물한 엄마 대신 할머니를 떠올렸다. 눈에서 끈적하고 뜨끈한 것이 흘렀고 나는 비명을 질렀다.


할머니는 그날 검은 숫돌을 쉭쉭 갈았고 새벽이 오기 전에 수탉의 목을 비틀었다.

- 내 새끼 눈에 피눈물을 흘렸으니.

피고 수탉에게 선포한 할머니의 사형선고 판결문 내용이다.

한쪽 눈이 퉁퉁 부은 나는 허옇게 질린 수탉의 두툼한 다리 하나를 쥐고 다짐했다.

"복수하리라!"

병아리 살해사건의 진실은 이미 어디에도 없었다. 내 잘못은 절대 권력의 비호 아래 조용히 묻혔다.

오른쪽 쌍꺼풀 안 쪽으로 흉터가 남았는데, 겉으로 보기에 티가 나지 않는다.




복수는 복수를 낳는 법, 수탉은 내 사과를 받아들였어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복수의 마음은 내게 상처를 남긴 수탉뿐 아니라 모든 닭을 향하게 되었다.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끝나지 않을 전쟁이.


오늘도 나는 휴대폰을 집어 든다.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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