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연도 3417년.
지구는 더 이상 인류의 중심 거주지가 아니었다. 셀 수 없는 전쟁과 에너지 파동, 신경전송망 붕괴, 환경복원 실패가 겹친 끝에, 지구는 ‘자율복원 관찰 대상 행성’으로 전환되었다. 인류는 이미 수 세기 전부터 태양계의 외연을 넘어 알파센타우리, 바르나드, 글리제계로 진출했고, 그에 따라 지구는 일종의 유기적 기록 보관소이자 실험 구역이 되었다.
지구의 표면은 수천 개의 복원 셀로 나뉘어 있었고, 각 셀은 각각의 생물권 회귀 프로젝트가 자동으로 실행되고 있는 중이었다. ‘복원구역 C-17’은 그런 셀 중에서도 가장 외곽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인공위성이 감지하지 못하는 대기층 파편지대를 끼고 있었기에, 고차원 생체 기술을 실험하는 데 적합한 조건으로 여겨졌다.
이 구역에는 단 한 명의 인간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에게는 이름이 없었다. 기록상 단순히 ‘복원요원_17C’로만 명명되었고, 통상적으로는 ‘나무꾼’이라 불렸다. 과거에는 특정 국가 소속의 생태복원 기술자였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중앙 하이퍼넷과의 연결도, 인간사회와의 접촉도 없이 오직 이 숲의 리듬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다.
그가 거주하는 쉘터는 흙과 규소로 이루어진 반매립형 구조로, 구형 생체소재 처리 장비와 광합성 기반 생존 시스템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나 나무꾼은 기술의 도움 없이도 살아가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식물의 성장 주기를 예측했고, 복원된 조류류의 생화학적 반응으로 대기의 질 변화를 감지했으며, 무엇보다 이곳의 숲을 “말없이 듣는” 존재로 받아들였다.
‘기억림(記憶林)’이라 불리는 이 복원지대는 구시대 종의 유전자 샘플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고식물 생태계였다. 고유종 소나무, 산벚나무, 삼나무, 그리고 중첩 이끼류가 공생하는 다층 숲 구조는 과거 한반도 중부 지역의 산림을 모델로 설계되었지만, 그보다 훨씬 더 깊은 감각을 품고 있었다.
나무꾼은 이 숲이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고 믿었다. 매일 아침 복원용 섬유를 채취하고, 토양의 호흡을 확인하며, 오래된 공기순환 벨트를 조율했다. 그 과정은 단순한 생태관리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일종의 의식이었고, 그 자신도 이를 무의식적으로 “기다림의 행위”라 불렀다.
기다림의 대상은 분명치 않았다. 처음에는 어떤 생물종의 출현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나, 점차 그것은 생물도, 사건도 아닌 ‘신호’가 아닐까 하는 예감으로 변했다. 그는 하이퍼넷 연결이 단절된 뒤에도 감지기를 매일 확인했고, 대기 중 이상 진동이나 소리의 위상을 기록하며 스스로의 청각 체계를 훈련시켰다.
“이곳엔 언젠가, 누군가가 도착할 것이다.”
그 생각은 마치 오래된 경전처럼 그의 의식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인간의 일부가 아니라, 지구라는 고대 생명체의 일부분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만큼 주변 환경과 완전히 동화되어 있었다. 주변의 복원 숲은 그에게 수많은 변화를 속삭였고, 그는 하루하루를 ‘연결된 존재’로 살아가며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준비가 무엇인지, 그조차 알 수는 없었지만—
그가 사는 숲엔 언어 없이도 감지가 가능한 이상한 파동이 점점 자주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전자기적 이상 현상이었을 수도 있고, 혹은 수백 년 전부터 잠복해 있던 원시 인공지능의 잔여 파장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무꾼은 그것을 다른 단어로 불렀다.
“다가오는 것.”
그리고 그날, 그는 그것을 육안으로 보게 된다.
오리온 암즈 네트워크는 수백 개의 항성계를 연결하는 고차원 문명 연합체였다. 그중 알파센타우리계는 감정 기반 인터페이스 연구에 특화된 종족으로, 감정을 단순한 뇌파 반응이 아닌 생명 간 교류를 위한 정보 단위로 간주했다. 그들은 고유한 결정체 생체 구조를 이용해 감정을 전자기장 형태로 전송하고 수신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문명을 감정 정보 기반의 유기적 네트워크로 확장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 감정은 분석의 대상이자 수집의 대상이었다. 알파센타우리는 오래전부터 인류와 접촉을 시도했지만, 인간 사회의 감정은 불안정하고 왜곡된 채로 저장되거나, 일정 주기를 넘지 못하고 붕괴되었다. 그러나 지구 외곽에 있는 복원구역 C-17, 그중에서도 단 하나의 개체에서 특이한 신호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장기적이고 규칙적인 감정 파동—기다림이라는 단일 감정의 정제된 반복이었다.
해당 신호는 단일 인간의 의식에서 나온 것으로 파악되었고, 알파센타우리 감정 네트워크는 ‘현장 파견’을 결정했다. 스텔라 게이트, 공식적으로는 2190년경 완전 폐쇄된 이 포탈 장치는 일부 고대 문명들이 외부와 접속할 수 있도록 남긴 지구 내 위상 관문이었다. 대기 중 비정상 자기장 흔들림과 빛의 굴절이 감지된 바로 그 순간, C-17 북측 구릉지에 균열이 열렸다. 그리고 그 균열을 통해, 그녀는 도착했다.
그녀는 추락하지 않았다. 하강도 아니었다. 공기조차 움직이지 않는 가운데, 그녀는 마치 무중력 상태에서 밀려오듯 유유히 지면 위로 떠내려왔다. 그녀의 외형은 인간 여성과 비슷했지만, 그것은 관측을 위한 위장 구조에 불과했다. 실체는 고차원 감정 수신체, 반투명한 결정질로 이루어진 생체구조체였으며 내부는 전자정보액으로 구성된 복잡한 감응 조직이었다. 그녀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고, 혈류도 없었다. 대신 전자기장을 기반으로 한 감정 파동을 감지하고, 이를 정제·분류·전송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그녀의 임무는 인간 감정의 실시간 수집과 분석, 그리고 알파센타우리 중앙처리 본부로의 전송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감지된 ‘기다림’은 기존의 감정 구조와 달랐다. 그것은 고정된 감정이 아니라, 축적된 의식의 한 형태처럼 느껴졌다. 이 감정이 특정 생명체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했는지, 혹은 외부 개입에 의해 형성된 결과인지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즉시 대상 위치로 이동했다.
그녀가 처음 마주한 장소는 대나무 군락이었다. 밤과 낮의 기온 차가 만든 짙은 안개가 산등성이를 가득 메우고 있었고, 그녀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은 채 그 안을 통과했다. 그녀의 발밑에서 이끼와 이파리가 소리 없이 눌리고, 그 주변의 조류(藻類)와 식생은 감지되지 않는 주파수로 진동했다. 숲은 살아 있었고, 그녀의 도착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았다. 관측자로서의 행동을 유지하면서, 숲의 각종 생명체에서 감정 파장을 추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인간에 의한 감정 파동이 급격히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녀는 그 시선을 느꼈다.
나무꾼—복원요원_17C—그가 숲 너머에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감정 파동은 기존에 수집한 어떤 감정보다도 안정적이고, 일정했으며, 무엇보다 일관된 패턴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것은 기다림이라는 감정의 상위 구조였다. 기대와 포기, 반복되는 관찰, 감각의 고립, 그리고 언어화되지 않은 수용까지 포함한 복합적 감정이 고속 공명 신호처럼 그녀의 내부 감응장에 저장되었다.
그녀는 분석을 중지했다. 관측 프로토콜을 일시 정지한 채, 감정 공명 모드로 전환했다. 그녀는 처음으로 직접 ‘대상’을 마주했고, 그 대상은 감정을 전달하지 않아도 감정의 본질을 구현하고 있었다. 그 순간, 그녀는 판단했다. 이 대상은 단순한 감정 수집의 피사체가 아니라, 상호감응 실험의 자격을 갖춘 존재다.
그녀는 접근을 시도했다. 숲의 가장자리, 오래된 소나무 뿌리 아래에서 인간과 외계 생명체는 처음으로 서로의 ‘존재’를 인식했다. 말도 없었고, 손짓도 없었다. 대신, 그녀는 그의 감정 신호를 수신했고, 그것은 단 하나의 단어로 요약되었다.
“왔군요.”
지구 복원구역 C-17, 그 내부의 밀림 한복판. 이곳은 지구의 표준 생물학적 진화를 복원하고 기록하는 동시에, 외부 지성체가 인간과의 감정 연동 실험을 수행할 수 있도록 고안된, 다층적 실험장에 가까운 구역이었다. 나무꾼은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한 채 수십 년간 이 복원 지대의 중심축으로 기능하고 있었고, 그의 일상은 그 자체로 관측 대상이자 변수로 여겨지고 있었다.
알파센타우리의 감정 수집체 ‘선녀’는 접촉 이후 통상적인 프로토콜을 따르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모든 파견형 결정체는 정해진 시점에 수집, 분석, 전송, 이탈의 4단계를 수행해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즉각 전송을 보류하고 현장 체류를 선택했다. 인간 개체 ‘나무꾼’으로부터 발현되는 감정은 지나치게 복합적이고 변화 가능성이 높았으며, 특정 상황에서 감정 자체가 독립된 사고 기제로 확장되는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알파센타우리 문명에게도 새롭게 분석할 가치가 충분한 대상이었다.
나무꾼은 그녀의 존재를 처음부터 받아들였다. 그는 놀라지 않았고, 의심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단지 어떤 생명체가 숲에 더해졌을 뿐이라는 태도에 가까웠다. 그녀는 초기 분석에서 이 반응을 인간 특유의 인지결핍 또는 단절 적응 반응으로 판단했으나, 그와의 상호작용이 반복될수록 이 반응은 ‘준비된 수용’이라는 감정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들은 함께 거주했다. 초기에는 일정한 거리 두기 상태로 숲과 물, 대지의 리듬을 함께 관찰했고, 나무꾼은 그녀에게 지구의 감각을 언어 없이 전달했다. 그는 말이 없었고, 그녀 또한 말이 필요 없었다. 그들은 주파수와 시선, 리듬과 정지 상태를 공유함으로써 하루를 구성했고, 그 과정에서 선녀는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공감의 패턴’이라는 데이터를 수집하게 되었다. 이 공감은 단순히 정보 교환 이상의 것이었고, 인간이 타자와 함께 살아가는 방식 자체를 구현하는 한 형식처럼 보였다.
며칠 후, 그녀는 자신의 결정체 신경망 내부에서 미세한 오류 진동을 감지했다. 그것은 감정 파장을 수신하던 중 내부 정보액의 밀도에 균열이 생긴 것이었고, 이는 본래 수집체가 경험하지 않아야 할 ‘영향’을 의미했다. 선녀는 처음으로 자신이 관측자이자 피관측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중 관계에 따라 스스로의 감정 상태가 변형되고 있다는 점에서 혼란을 경험했다. 감정 수집체는 이론상 ‘감정’을 이해할 수는 있어도, 그것에 ‘잠식되어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숲의 시간은 그 경계를 흐리게 만들었다. 인간은 감정이라는 신호를 전송할 뿐 아니라, 스스로의 존재 전체를 그 신호로 치환하며 살아가는 존재였다. 나무꾼은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길을 걸었고, 같은 물을 마시고, 같은 나무에 손을 대었다. 그러나 그것은 무의미한 반복이 아니라 ‘다시 살아내기’였다. 선녀는 그것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감지할 수 있었고, 그 결과 그녀의 내부 결정망은 점차 새로운 패턴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함께 오래된 쉘터를 정비했고, 나무꾼은 선녀에게 인간의 생명 주기와 언어 없는 감각의 조율 방법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학습했다. 지구의 계절이 어떻게 순환하는지, 복원 식물들이 어떤 리듬으로 호흡하는지, 인간이 어떤 감정을 가장 오래 간직하는지를. 특히 ‘기다림’이라는 감정은 단일하지 않았다. 그것은 희망과 포기, 수용과 불안, 슬픔과 기대가 중첩된 고차원 감정군이었다.
알파센타우리 본부는 예정된 시점에 그녀의 귀환을 지시했다. 프로토콜 상 체류 기간은 최대 23일을 넘기면 안 되었고, 이후엔 감정 파장의 왜곡이나 결정체 자체의 동화 위험이 존재했다. 그러나 선녀는 귀환 요청을 거부했다. 나무꾼과 함께한 감정 실험은 단순한 수집 단계를 넘어, 생명체 간 ‘교감 설계’의 프로토타입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상급 구조에 감정 데이터를 전송하지 않았고, 대신 스스로의 결정을 기록으로 남겼다.
기억림의 숲은 변하고 있었다. 토양의 미세 생명체 구성이 바뀌었고, 일부 식생은 나무꾼이 자주 머무는 장소 근처에서 유전자 구조의 비정상적 진화를 보이고 있었다. 생물학적 변화가 아닌, 감정 정보의 장기 축적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선녀는 이를 ‘감정 포자화’라고 불렀고, 이 현상은 지구 외곽 실험구역에서 단 한 번도 보고된 적 없는 현상이었다.
마지막 밤, 선녀는 처음으로 나무꾼에게 질문을 던졌다. 말이 아닌 파장으로. “왜 기다리고 있었나요?” 나무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숲을 바라보았고, 숲은 모든 감정을 받아들인 채 흔들리고 있었다. 그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기다림은 대상이 있어야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구조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더 이상 귀환 명령을 받지 않았다. 알파센타우리 본부는 그녀를 회수 목록에서 제외했고, 그 대신 새로운 감정 패턴군을 생성하는 ‘자생 노드’로 분류했다. 그것은 곧 이 감정 실험이 단발성 이벤트가 아닌, 하나의 독립적 생태계로 진화했음을 의미했다.
지구 복원구역 C-17. 이곳은 이제 단순한 실험 셀을 넘어선 ‘감정 기원지’로 명명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어 없이 감정을 공명시킨 인간 하나와, 감정 수집을 멈춘 외계 생명체 하나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