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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금금 Apr 11. 2024

결혼 10년 만에 고등어조림을 했다

요리를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적당히 볼 줄 아는 혀가 있었고, 조금만 넣어도 맛을 끌어올릴 수 있는 조미료들을 갖추고 있었다. 꼼꼼하지 않은 성격 덕분에 음식하는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음식을 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김치 비빔국수다. 차가운 물에 헹군 하얀 국수에 성기성기 끌어 넣은 김치와 고추장, 설탕, 간장, 식초 등으로 간을 해서 먹으면 가벼운 한 끼 혹은 야식으로 안성맞춤 식사가 된다. 남편이 될 줄 몰랐던 남자를 처음 집으로 초대했던 날, 자신 있게 비빔국수를 내놨다. 어떻게 먹어도 맛있는 비빔국수에 오이를 고명으로 올리고 고소함을 더 해줄 깨소금을 뿌려 맛스럽게 손님에게 대접했다.


한 젓가락 뜬 남편은 당황한 기색을 표하며 살포시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조심스럽게 꺼낸 그의 말은 '밀가루 냄새가 많이 나서 먹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밀가루 냄새가 난다고? 전혀 생각지도 않은 이야기였다. 물론 나도 알고 있었다. 국수를 먹을 때 미끄덩 거리는 느낌이라던지 특유의 텁텁함을 알았지만 무시하고 먹었다. 그렇게 먹어도 배속에 들어가는 국수에는 차이가 없었고 맛에 민감하지 않은 나에게 큰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수를 먹으러 온 남자가 남편이 된 이상 이렇게 국수를 끓일 수는 없었다. 국수를 끓이고 나서 찬물에 충분히 헹궈 전분기를 제거해야 만 미끄덩 거리지 않고 밀가루 냄새 없는 국수를 먹일 수 있었다. 당연히 그렇게 먹는 국수 맛은 내 입에도 더 맛있었다.


국수와 쌍벽을 이루는 것이 고기 종류의 음식들이다. 특히 돼지고기와 같은 것들은 웬만해서 손을 대지 않는데, 내가 요리하면 꼭 돼지 비린내가 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다 남편이 나서서 요리를 하는 날 큰 깨달음을 얻었다. 남편은 돼지 핏물을 아주 꼼꼼히 제거하고 요리를 하는 것이다. 물에 담가서 빼고 키친타월을 이용해서 제거를 하는 등 재료 손질에 가장 큰 힘을 쏟는다.


최근에도 정육점에서 사 온 돼지고기를 하던 대로 핏물을 빼지 않고 간장에 버무려 음식을 했더니 아이들도 남편도 먹기를 꺼려했다. "잘됐지 뭐! 나 혼자 단백질 섭취 실컷 할 거야"라며 먹었지만 큰 접시에 담긴 고기에 나 홀로 바삐 움직이는 젓가락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시장을 보다 고등어가 눈에 들어 왔다. 평소 엄마가 해주시던 고등어조림을 참 좋아했었다. '한 번 해볼까?' 싶은 생각에 카트에 고등어를 태우고 팔뚝만 한 무도 집으로 데리고 왔다. 대략적인 요리 순서는 알지만 제대로 해보고 싶은 마음에 검색창을 열고 '고등어 무조림'을 찾았다. 편스토랑에서 류수영이 했다던 방법이었다.


계량해야 하는 양념들이 나와 있었다. 고춧가루, 간장, 설탕 등을 하나의 수저로 계량했으니 제대로 퍼 올려서 한 것은 아니었다. 대략의 눈대중으로 퍽퍽 밥공기에 재료들을 담아냈다. 맛이 부족하다 싶으면 조금씩 더 보충하면 된다는 무사안일주의가 또 발동했다.


고등어 무조림을 알려주는 창에서는 고등어 비린내 제거를 위해 흐르는 물에 고등어를 씻고 굵은소금, 식초, 밀가루에 담그라고 했다.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어차피 생선이니까 비린내가 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먹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무를 썰어 양념장을 풀어 끓이기 시작하면서도 머리에 고등어를 손질할까? 말까? 얕은 생각밖에 없었다.


어차피 하기로 한 거 제대로 해보자! 매번 재료 손질을 안 해서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격이 되었으니 귀찮더라도 기초 공사를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으로 고등어를 흐르는 물에 씻었다. 물에 굵은소금과 식초를 넣고 밀가루는 꺼내지 않았다. 차마 밀가루까지 넣는 정성에 이르지는 못했다. 어차피 굵은소금과 식초 만으로 충분히 고등어의 단짝인 비린내를 쫓아 내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무가 어느 정도 읽었을 때 손질한 고등어를 넣고 한소끔 끓여 주었다. 15분 뒤, 완성된 고등어조림에 무를 접시에 먼저 깔고 고등어를 올렸다. 숭숭 썰었던 대파와 반달 모양으로 잘린 양파들이 푹 읽어 고명처럼 고등어 위에 얹혔다. '맛있어져라' 주문을 걸며 마법의 가루처럼 깨소금을 살포시 뿌려주었다.


꽤 그럴싸한데? 내가 한 거 맞아? 오랜만에 제대로 된 밥을 한 것 같은 생각에 핸드폰 카메라를 열었다. 사진으로 봐도 꽤 맛있어 보였다.



남편은 쓸데없는 칭찬을 하지 않는다. 뭘 해도 맛있다며 연신 칭찬을 늘여 놓는 친정집에서 자란 내가 제일 적응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신혼 초 '맛있어?'라고 물어보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남편이었다. 그래서 음식을 하고 난 뒤 식탁을 유심히 본다. 남편의 젓가락이 부산스럽게 움직인다면, 그 음식은 맛있다는 말보다 값진 평가를 받은 것이다.


고등어조림을 내놓고 여유롭게 밥을 먹는 듯했지만 나의 눈은 남편의 젓가락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먹나? 안 먹나? 많이 먹나? 음식을 한 사람으로서 궁금증을 참을 수 없는 대목이었다. 냄새에 예민한 사람이라 특히 고등어와 같은 음식을 내놓는다는 것은 실패할 경우 내가 다 먹을 것을 각오하고 내놓는 것이다. 밥과 함께 침을 꼴깍 삼키며 유심히 고등어 조림을 지켜봤다.


말을 안 했지만 남편은 밥을 조금 더 달라고 했으며, 고등어와 무를 많이 건져서 먹었다. 성공이다! 역시 단짠에는 이길자가 없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역시 재료 손질이었을 것이다. 매번 귀찮아서 재료 손질을 건너뛰어왔다. 아무 양념을 잘해도 묻혀 버렸던 음식들을 생각하니 가장 기본적인 것을 왜 잘해야 하는지 알 것 같다.


밥이 부족했던 나는 즉석밥을 두 번이나 돌렸다. 작은 밥공기로 나온 것이라 두 공기를 먹은 것이다. 내가 했지만 맛있었던 고등어 무조림. 그리고 매운 것을 못 먹어서 미역국에 밥을 두 공기씩 먹으며 맛있다고 하는 아이들. 까다로운 입맛에도 맛있게 먹는 남편의 모습을 보니 괜스레 흐뭇했다. 패스트푸드처럼 영양가 없는 음식으로 끼니를 때운 것이 아니라 좋은 재료를 가지고 정성을 다한 음식으로 가족들을 배불리 먹였다는 뿌듯함일까.


전업주부인 나에게 기본적인 임무라고 한다면 가족들의 건강을 챙기는 것이다. 귀찮다고 빠른 게 좋다며 대충 만들어 먹다 버린 국수가 되지 않아야겠다. 10첩 반상은 아니더라도 고등어조림 같은 메인 요리 하나로 잘 먹은 한 끼에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오늘도 레시피를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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