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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oonface Mar 23. 2020

아빠의 시간

현관문 너머 둔탁한 물건이 바닥에 마찰되는 소리가 들린다. 계단을 따라 멀어져 가는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이내 트럭이 떠나는 소리가 들린다. 시계를 보니 새벽 세시가 되어간다.

'아. 이 시간에 배달을 하는거였구나~ '


요즘 생활이 자유로워 새벽에도 깨어있는 날이 더 많아졌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시간, 아침이 밝기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나에게는 또 하나의 기다림이다. 창문 넘어 깜깜한 어두움이 가득한 시간, 여전히 찬 공기가 가시지 않은 시간. 모든 것이 정지되고, 살아있는 생명마저 깊은 수면 밑으로 아주 낮은 호흡만이 잠잠히 바닥을 메울 것만 같은 이 시간.

     

잠들지 못해 책상에 앉아 있던 나에게 새벽 배달원의 인기척은 누군가의 시간을 생각나게 한다. 나의 아빠도 이런 시간을 홀로 깨우지 않았을까.   

  

어렸을 적 아빠는 새벽 5시면 모두가 잠든 집에 홀로 조용히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식탁에서 간단히 식사를 챙겨 어둠을 뚫고 나간다. 엄마가 마중을 하고 들어오면 얼마나 바깥공기가 찬 지 이불속에 누워있는 나도 직감하게 된다. 아빠는 그렇게 내가 어릴 적부터 커서까지 새벽 공기를 뚫고 일터로 향했다. 새벽 이른 버스를 타고 가는 날도 있었고 다른 아저씨의 차를 얻어 타고 가는 날도 있었고 직접 운전을 해 다닌 적도 있다. 어떤 기간은 잠시 가족을 떠나 생활하며 그렇게 매일매일 일을 가셨다.     


"일찍 가면 뭐해?"   

그동안 나는 아빠에 대해 궁금한 게 별로 없었나 보다. 아빠가 어떻게 일을 해서 돈을 벌어오는지, 어떤 사람들과 어떤 하루를 보내며 희로애락을 경험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지. 그렇게 우리가 떨어져 생활하는 하루의 시간 속에 가장 가까운 사람인 아빠가 어떤 수고와 감정을 느끼고 경험하는지 말이다.   

  

"일찍 가면 아직 깜깜해. 소장이 올 때까지 불 피우고 몸을 녹이고 있지."

아빠는 그렇게 하루를 시작한다고 했다. 비가 오는 날은 바깥에서 일을 할 수 없어 늘 일기예보를 확인했어야 했고 더운 날은 너무나도 뜨거워 속옷이 땀에 흥건히 젖을 정도라고 했다. 추운 날은 장갑을 껴도 손과 귀가 떨어져 나갈 것처럼 시리다고 했다.

아빠는 그런 시간을 자연과 맞서며 그렇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터로 향했다.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나 보다. 하지만 아빠도 일이 가고 싶지 않은 날도 있었고 추워서 밖에 나가고 싶지 않은 날도 있었고 이불속에 좀 더 누워 따뜻한 온기를 더 느끼고 싶은 날도 있었을 것이다. 새벽마다 혼자 먹어야 하는 밥이 뭐 얼마나 맛이 있었겠나..     


아빠는 아빠이기에 혼자 해야 하는 것들을 알아서 척척해낸 것 같다. 그냥 무덤 하게 말이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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