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는 숫자에 집착했다
공부량과 성적은 비례하지 않지만 앉아있는 시간과 살 찌는 속도는 비례했다. 먹고 자고 앉아있는 고3 생활이 끝나고 남은 건 70kg 초반의 몸무게였다. 키가 168cm이라 더욱 거대해 보였던 몸뚱이.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TV에 나오는 여자들처럼 여린 몸매를 갖겠다며 ‘살 빼기’에 돌입했다.
처음으로 시작한 다이어트는 무식하기 짝이 없었다. 무조건 숫자가 줄어드는 것에만 집중하여 매일 아침 체중계에 올라갔다. 매일 몸무게가 감소하는 것도 사실상 문제가 있는 감량인데 심지어 그때는 매일같이 숫자가 바뀌어야 만족했다.
다이어트가 아닌 중노동의 현장
운동을 하여 체지방을 감량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건강의 증진이다. (지금의 내게는 그렇다) 하지만 주객이 전도되어 건강은 안중에도 없고 오히려 몸을 혹사시키는 운동법으로 한달에 12kg 감량에 성공했다.
실천은 어렵지만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한달 헬스를 등록하고 한달간 죽음의 살 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30대에는 시도해 본 적이 없으나 적어도 20대에는 효과가 좋았다. 그때 빠진 것은 체지방보다 수분이 많았겠지만 날이 갈수록 점점 등과 붙으려 하는 뱃가죽에 만족감을 느꼈다. 초반에는 하루에 1kg~1.5kg까지 무게가 줄었고 점점 몸무게가 줄어드는 데 가속도가 붙는 느낌도 들었다.
대학생이 되기 전 헬스를 끊었기 때문에 하루 종일 운동에 매달릴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헬스장에 가면 런닝머신을 한시간 한다. 근력운동에 대해서는 방법도, 효과도 몰랐던 시기라 무식하게 런닝머신만 죽어라 걷는다.
런닝머신만 걷는 것은 중노동이 맞다. 실제로 트레이드밀은 19세기 영국에서 죄수들을 고문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고문기구였다. 그렇게 아침 고문(?)이 끝나면 집에 와서 양배추 조금, 달걀 한 개 정도를 먹고 누워 있는다. 먹은 게 없으니 움직일 기운도 없다. 건조기에 널려 있는 빨래처럼 아무렇게나 바닥에 널부러져 있다가 5~6시가 되면 다시 헬스장에 가서 오후 고문(?)을 시작한다. 한번은 그러다가 갑자기 어지러워서 정신을 잃고 쓰러질 뻔한 적도 있다. 런닝머신에서 빠른 속도로 걷다가 쓰러지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지만 그런 일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무식과 젊음의 콜라보로 이루어 낸 살 빼기. 나의 다이어트는 무 자르듯 한달이 끝이었다. 스스로는 ‘그래 이제 살 빼기 끝이야’라고 선언했으나 몸은 아니었다. 다이어트 후 유지가 더 어렵다는 것을 모르고 극도로 제한하던 식이를 마치 해방이라도 시키듯 바로 일반식으로 바꿨다. 여기서 놀란 것은 단순히 한 끼를 일반식으로 밥, 국, 반찬으로 먹었을 뿐인데 몸무게가 바로 1~2kg 늘었다는 것이다.
다이어트가 끝난 줄로만 알았던 내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무조건 굶어서 뺀 게 아니라 운동도 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줄 알았지만 천만의 말씀. 손실된 수분과 근육을 채워 넣기 위해 몸은 입으로 들어오는 모든 음식들을 빠르고 깊게 흡수했다.
‘모든 양분을 빨아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넣겠다’ 모드가 된 몸은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스스로를 회복시켰고 한달의 고문(?)은 소용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 이후로도 다이어트 자극 사진이나 주변에서 몰라보게 달라진 사람들을 보면 ‘고문해서 살 빼기’ 의욕이 불타올랐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운동을 한다고 하면 빨리 걷기, 걷다가 달리기 정도만 지속하였다.
탄력있는 몸,
슬림하게 근육이 잡힌 몸을 만들고 싶다
지금은 각고의 노력에 몸통도 감복하였는지 60kg 이하 몸무게를 유지한다. 뚱뚱에서 보통~슬림으로 가기까지 약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중간에 찌고 빠지고를 반복했지만 현재는 안정적으로 유지가 되고 있다. 하지만 30대가 되니 또 다른 목표가 생겼다. 바로 탄탄한 몸매를 가지는 것. 근육이 붙어 건강해 보이는 몸, 좀 더 욕심을 내자면 화려한 王자 복근은 아니어도 11자 라인의 복근을 만들어 보고 싶다. 시켜도 다시는 못할 것 같은 고문의 역사는 추억이 되고 이제는 근육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동네에서 다녔던 헬스 체인점이 있는데 회사 앞에도 오픈을 했길래 코로나로 인한 기나긴 동면을 깨고 헬스를 시작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