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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Dec 09. 2017

갈릴래아 호수의 어부가 될꺼나?

이스라엘 성지순례-갈릴리

갈릴래아 호수의 물은 아직도 깨끗하였다. 옛날 이 깨끗한 무공해 갈릴래아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아 삶을 꾸려가던  '베드로'는 이 호수의 어부였다. 이 잔잔한 호수는 종교적 중심인 성전이 있는 도회지 예루살렘과 지리적으로 우선 멀다. 그래서 문화적으로도 시골인 이곳 갈릴리 호수 주변에 살던  갈릴래아 사람들도 베드로처럼 맘씨좋고 순박한 시골사람들이었다. 심지어 복음서엔 이런 시골 갈릴래아에서 뭐가 있겠느냐는 무시의 말도 나온다. 그러나 그들이 완전히 고립된 것도 아니었고 이곳은 결코 외지도 아니었다. 오래도록 문명의 중심이었던 시리아와 이집트를 잇는 무역의 통로였던 중요한 길목에 있었다. 그래서 멀리서 오는 외지인들도 빈번히 이리로 통과했을 것이다. 당시 로마제국도 이 이점을 적절히 이용했고 로마군인의 주둔지도 있었다. 그래서일까? 시골 사람들인 그들은 사실 열려있었다. 세상을 향해 그리고 구원을 향해... 메시아 그리스도의 말씀을 그들은 알아듣고, 새겨듣고, 또 받아들임으로 그들의 삶이 통째로 바뀌었다. 이제 이 호수에 사는 물고기가 아닌 전세계를 상대로 전인류를 상대로 복된 뉴스를 전파하라는 거룩한 사명을 부여받은 것이다. 물고기 잡던 순박한 어부들은 세계로 나갔다. 이제 물고기가 아닌 사람낚는 어부가 되었다. 그물을 쳐서 물고기 잡던  베드로는 그물을 버리고 말씀으로 무장한 가슴을 지니고 제국의 중심인 영원한 도시 로마에까지 갔다. ‘시골 갈릴래아에서 로마까지...’ 그의 거친 인생역정에는 배신도 있었고 눈물도 있었으며 환희도 있었다. 그리고 삶의 마지막은 처참한 순교였다. 갈릴래아 호수의 푸르름속에서 살던 그가 순교의 붉은 피로 로마에서 생을 마감했다. 거기는 갈릴래아에서 아주 먼 먼 외지였다. 무엇이 순박한 어부이던 그를 제국의 중심에까지 가서 선교를 하게 만들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그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그의 삶을 바쳤을까? 로마에 가서 그가 순교한 자리에 세워진 성베드로 대성당을 올려보아도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같은 유대인이었던 1세기 로마의 역사가인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도 로마로 진출했다. 그러나 그는 베드로와는 전혀 다른 이유로 로마로 가서 그의 이름을 알렸다. 그갈릴래아 호수를 보며 그 주변 경관과 어종의 풍부함에 시인인듯 감탄했다. 그는 “이곳을 자연의 야망(모델)이라 불려도 될것이다(One may call this place the ambition of Nature).”라고 한마디 했다. 이 역사가의 시적 감탄은 특히 요르단 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만나게 되는 '사해(Dead Sea)'와 비교해 특히 그렇다. 사해가 죽음의 바다라면 갈릴래아는 생명의 바다이다. 이 호수는 자연의 보고이자 수많은 생명의 산실이다. 그 산실에 아직도 베드로의 후손들이 그물을 쳐서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갈릴래아 호수는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 아랍인이 마시는 최대 담수호이기에 이런저런 규정도 많다고 했다. 그럼에도 호수 주변엔 작은 물고기잡이 배도 여럿 있었다. 그들 중엔 해가 뉘엿뉘엿 질때 고기잡이를 떠나는 이도 있다고 한다. 밤에 고기를 잡는 것이었다. 2011년부터 2년동안 이 고기잡이를 이스라엘 정부는 금지 했다고 한다. 이유는 호수의 물고기수가 엄청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것이 요즘은 일년에 4개월 금지규정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길이 20km 폭 12km이고 깊이가 깊은데는 약 40m까지 내려간다는 이 갈릴래아 호수는 사실 '바다'라고 불린다. 정식명칭은 엄연히 '갈릴리 바다(the Sea of Galilee)'이다. 과장이 심할까? 그런데 이 호수의 주변에서 생긴 사건들과 이곳 출신의 인물이 세계에, 역사에, 그리고 인류에 끼친 거대한 영향을 생각하면 대양이라는 명칭도 부족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많은 가르침과 기적들은 사실 이 호수 주변에서 일어났고 심지어 호수위에서도 일어났다. 요즘 순례자들은 코치(coach)나 자동차로 갈릴래아 주변을 순례하지만 미국의 소설가인 마크 트웨인은 1867년 말을 타고 호수주변을 구경했다. 코치나 자동차보다 훨씬 좋았을 것이다. 그는 요세푸스와 달리 갈릴래아 호수의 역사적 종교적 중요성과 영향에 대해 얘기했다.

“별이 빛나는 밤엔, 갈릴래아는 천국의 거대한 나침판인냥 거긴 경계가 없으며  이곳은 중요한 사건들을 만나는 극장과도 같다; 이곳은 세상을 구할 종교가 탄생한 곳이자 여기서 임명된 위대한 인물이 이곳 무대에 서서 하늘의 칙령을 선포하는 것을 목격하는 곳이다(In the starlight, Galilee has no boundaries but the broad compass of the heavens, and is a theatre meet for great events; meet for the birth of a religion able to save a world; and meet for the stately Figure appointed to stand upon its stage and proclaim its high decrees.).”

“그러나 대낮이 되면,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먼 대양의 작은 섬들에도, 멀고 광대한 대륙들을 포함한 온 세계에도 종이 울리는(영향을 미친), 1800년전 그 사건이 일어나고 그 말씀이 선포된 곳이 바로 이 작은 모래톱과 바위위란 말입니까?(But in the sunlight, one says: Is it for the deeds which were done and the words which were spoken in this little acre of rocks and sand eighteen centuries gone, that the bells are ringing to-day in the remote islands of the sea and far and wide over continents that clasp the circumference of the huge globe?)”

마크 트웨인이 지적한 것처럼 이 갈릴래아 호수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들의 영향은 지대하다. 그리고 또 한가지 놀란 것은 이 호수가 해면 약 200미터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가까운 지중해의 해수면보다 200미터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높은 곳에서 오신 그분이 낮춤으로 말씀을 선포하셨다는 말이 이제 언뜻 이해가 간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가 호수에 어망을 던지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마태오 4: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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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잔잔해 성서의 복음서에 나오는 폭풍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리스도께서는 저 물결위로 걸으셨다.

순례자를 태운 보트가 몇 보인다. 예수보트(the Jesus' Boat)라 불린다.

억새풀 비슷한게 있었다. 호수의 색과 잘 어울린다.

순례자를 태운 보트가 지나고 있었다.

그리 멀지 않은 호수변 산들이 보인다.

멀리 보이는 산들이 낮게 보인다. 위협적이지 않고 오히려 정겹다.

베드로의 후손들일까? 아직 통통배로 고기잡이를 하였다. 하긴, 큰 현대식 배로 고기잡이 한다면 호수의 물고기가 멸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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