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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May 26. 2017

'예술, 인간, 자연'의 삼위일체

이탈리아 여행 에세이-타오르미나의 고대극장

하늘과 바다사이, 그 수평선위에 인간은 예술을 낳았다...

"The Greek-Roman Theatre of Taormina is one of the treasured marvels in Sicily..."


그리스 문명은 대단하다.

로마 문명도 대단하다.

이를 이룩한 인간들은 더 대단하다.

예술이 이들을 대단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가끔 파괴도 시켰다.


시칠리아 동쪽 해안 '이오니아'해를 바라보는 정상에 타오르미나는 위치해 있다. 사진은 금방 스러질 것같은 정문. '메시나 대문'이라 불린다.


2300년 전쯤에 지어진 이 시칠리아의 운치있는 옛도시 타오르미나(Taormina)에 있는 고대 극장(theatre)은 바다와 주위의 산이 지척에 내려다 보이는 최고의 요지에 건설되었다. 풍수상으로 최고였다. 그리스 사람들도 풍수를 알았을까? 아님 풍수는 모든 인간의 공통 직관(intuition)일까? 이성을 중시한 고대 그리스인들이 비이성적인 직관을 따랐을까? 지금 남아있는 극장은 대부분 벽돌로 지어져 로마 시대때 보수 증축했지만 그리스 시대때의 원래 플랜(plan) 그 위에 원형을 파괴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고대 극장의 관객석(the Cavea)은 약 5천명을 수용할 정도로 크며 시칠리아에서 시라쿠사에 있는 고대극장 다음으로 크다고 한다.


시칠리아의 역사만큼 각양각색의 마른 과일로 만든 알록달록한 스위트는 정말 보기좋다. 그러나 너무 달다... 시끄럽지만 정많고 친절한 시칠리아 사람처럼.

2300년도 전이라?

이곳에 오르면 이 2300년이란 역사의 흐름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직접 느낄수 있다. 과거로 돌아가 둥근 극장안을 어슬렁 돌아다녔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匹馬)로  돌아드니

산천(山川)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 듸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갑자기 길재의 시조가 떠올랐다. 무대위의 배우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그들이 입었던 옷과 대사들이 왁자지껄 쏟아졌다.


와... 그리스의 고대극장. 멀리 삼각형 산이 가끔 성질을 부리는 에트나 화산


그리스 인들과 시칠리아 인들은 이 최고의 명당 자리에 지름이 약 120미터나 되는 큰 극장을 지었다. 100미터 달리기를 할 때 헉헉거렸던 내가 생각났다. 여러개의 알을 품은 암닭처럼 산 정상을 넓게 차지하고 앉아 그리스, 로마, 아랍, 스페인, 노르만 등의 여러 시대를 이 극장은 오롯이 그 안에 품고 있었다. 화석이 된 알들을 부화시키기 위해 꼬끼오 소리도 지르지 않았다. 잠시, 어떻게 이 무거운 돌을 산정상으로 옮겼고, 둥그런 형태는 어떻게 수학적으로 계산해서 설계했고, 그 테크놀로지는 어디서 왔을까는 주머니에 도로 집어넣었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명상(meditation)하는데 방해가 됐기 때문이다. 최고의 명당인 이 자연풍광속에 인간은 심오한 예술을 심었다. 자연이 인간의 예술적 영감을 불어 넣어줌을 이 고대인들은 잘 알았을 것이다. 결국 예술은 자연을 모방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예술론에 따라 자연 안에, 자연의 영감을 받아, 인간은 예술을 이렇게 정초시켰다.


고대극장 뒤편, 절벽위에서 바라 본 이오니아 해. 여기서 이오니아 학파의 그리스 철학이 탄생했다.


그리고 이 예술적 영감을 본받아 아직도 오페라나 콘서트를 이 고대의 극장에서 갖는다고 하니 예술을 향한 인간본성인 욕구를 잠시 느껴보았다. 그리고 관객석에 앉아 중앙 무대를 조용히 바라보며 한편의 연극을 본다고 상상을 했다. 배우들이 무대위에서 움직이고 대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몇초만에 상상은 정지되었다. 무대 뒤로 보이는 한폭의 동양화같은 풍경, 산과 바다가 상상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과연 그리스 관객들이나 로마 관객들이 이곳에 앉아 공연되는 연극에 도데체 집중이나 할 수 있었을까?


지척에 타오르미나 타운이 보인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에 머물며 영감을 얻어갔다.


또 여기서 얼마나 많은 작품들이 지난 2300년 동안 공연되었을까? 이런 문화적 전통으로 이 시실리아의 타오르미나에선 영화제도 열리며 여러 현대극도 공연이 된다고 한다(셰익스피어는 물론 심지어는 록 콘서트도 열린다고 하여 놀랐다). 하지만 여긴 이런 예술적인 공연말고 로마시대땐 글라디에이터(gladiator) 극장의 구실도 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사람들은 문화적이다가 또 야만적이 된다. 사실 예술과 야만은 통하는데도 있다. 변태 가학성(글라디에이터를 내려다 보먀 환호하며 즐기는 관객들처럼)이 가끔 예술적 Taste(감상/미감/취미/취향)로 오인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끔찍하다. 여기 고대 극장에서 오른편 멀리 아직도 여전히 끊어오르는 활화산인 에트나(Etna) 산의 삼각형 정상을 바로 볼수 있다. 분출하는 에트나의 화산처럼 인간이 이성을 잃으면 종잡을 수 없을 것이다. 글라디에이터가 사자를 죽일때 미칠듯 내지르던 관객들의 집단심리처럼. 아님, 반대로 글라디에이터가 사자에게 물어 뜯겨 죽을때 지르던 변태가학성 심리처럼...


에트나 화산 아래의 해안선. 시칠리아에선 바다와 하늘이 비슷한 색이다.


극장 관객석 뒤로 올라가면 거기엔 깍아지른 듯한 절벽이 있다. 그 위에 서서 내려다 보는 쪽빛 바다와 해안선 그리고 산들을 보노라면 문득 여기에 옛날에 길고 하얀 수염이 휘날리는 신선들이 살았구나 생각했다. 이 신선들은 가끔 극장의 연극을 보았으며 잠이 오면 뜨거운 태양을 피해 나무 그늘아래 누워 바다를 내다보며 낮잠을 잤을 것이다. 아니, 여긴 지중해 시칠리아이다. 그들은 동양의 신선들이 아니라 그리스의 신들이었을 것이다. 아폴로, 아프로디테, 박카스, 헤르메스, 디오니게네스...


정말 신선놀음이다...


이곳에선 천상과 지상을 하나로 항상 연결시키는 것같다. 하늘없는 바다는 상상할 수없고 바다없는 하늘을 상상할 수 없다. 시칠리아인들은 이 지혜를 몸소 느끼며 터득한 것같다.

고대 극장을 빠져 내려왔다. 좁은 골목에 셀피 스틱을 든 수많은 관광객들이 지나고 있었다. 빽빽하게 기념품 상점들도 밀집해 있었다. 거기에다 아이스크림을 파는 노점들도 있었다.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사서 부끄럼도 없이 먹었다. 시칠리아의 아이스크림은 최고였다. 지중해의 태양 아래여야 아이스크림은 제 맛을 발휘한다는 전설은 사실이었다. 이 시칠리아의 아이스크림은 예술이고 역사고 문명이고 뜬구름처럼 다 날려보냈다. 시칠리아 아이스크림 먹는게, 이게 바로 신선놀음이었다.


고대극장으로 올라가는 입구. 항상 관광객들로 붐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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