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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Jun 23. 2017

'땅끝'에서 새로운 길을 보다.

산티아고 순례 에세이- 순례의 동반자

-
'피니스테레(Finisterre)'...
'땅의 끝'.
거긴 가장 소중한 것을
아낌없이 태워버리는 곳이다.
'나'...까지도 과감히 태워버려야 하는
바로 그곳에서,
홍해가 갈라지듯
새로운 길이 열렸다.
-

산티아고 순례를 앞두고 여러 계획이 머리속에 꽉차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준비한건 하나도 없었다. 미루고 미루는 성격이 일조를 했다. 아니 준비물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장거리 '도보 연습'을 한번도 하지 못했다. 방안에서 몇번 달리기 연습한게 고작이었다. 장장 두 달을 넘게 산티아고 순례를 갔다 온 경험자인 우리 본당신자 수산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준비물을 알아보고 계획했었다. 그런데 생각지 않았던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여행 제안이 갑자기 들어와 내가 준비할 시간은 딱 하루뿐이어서 게으른 나에게 핑계대기도 좋았다. 금요일 늦은 밤에 폴란드에서 런던으로 와서, 토요일 하루 준비하고 일요일 오전엔 성당일 그리고 오후는 신자집에서 모임이 있어 저녁까지 보냈기에, 준비할 시간은 오직 토요일 하루만이었다. 지고 갈 배낭이며 쉽게 입고 빨 브라운색 등산용 바지, 슬리핑 백, 등산용 신발(부츠)도 사야 했다. 더구나 생애 처음으로 하는 장거리 도보여행이라 모두 걸 새로 장만해야 했다. 겨우 하루 가진 것도 토요일이라 야외여행이나 등산용품을 위한 상점들이 문 닫을 것도 걱정이 됐다. 겨우 시내 Covent Garden뒤에 있는 야외활동 숍에서 배낭과 바지 한벌, 신발 그리고 슬리핑 백을 샀다. 나중에 집에 와서보니 판쵸를 사지 않은 것을 알았는데 이미 때는 늦었다. 나의 영적 지도자인 프랑크 신부님이 이 북쪽 스페인 출신이라 날씨가 영국처럼 변덕스러워 판쵸가 꼭 필요하다고 했는데 말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순례의 출발지인 프랑스 St Jean Pied de Port(상쟝)에 도착하면 숍이 있겠지 그리고 순례 여권(credencial)도 사야하니까. 애써 태연하게 마음을 먹었다. 다행히도 등산용 신발을 쌌는데 반값 세일 해서 £16였다. 얼씨구나 좋다 하면서 다른 생각도 할 겨를없이 덥석 바구니에 담았다. 신발도 튼튼해 보이고 무게도 가벼워 좋아보였다. 기억에 £30이상하는 신발을 사 본적이 없어 원래 가격 £32는 꽤 괜찮아 보였다. 싼게 비지떡이라고 그런데 나중에 이게 문제가 될 줄이야. 쯧쯧...

딱 하루만에 이 반값 세일 신발은 그 가치가 드러났다. 걷다보니 금방 진가를 알수 있었다. 포장된 도로를 걸을 땐 그래도 별 무리가  없었지만 비포장 도로나 오솔길 특히 자갈밭을 걸을 땐 발이 계속 아팠다. 둘째날과 셋째날은 더 심했다. 발에 물집도 한 다섯군데 생겨 저녁에 바늘로 물을 빼내고 반창고를 붙였는데 다음날은 바로 물뺀 그 자리에 생살이 벗겨져 고통은 더 심했다. 더구나 무릅아래 다리에, 한번도 장거리 도보연습도 안하고 왔기에, 알(?)이 베겨 걷기에 너무 아팠다. 더구나 알베르게 도착해서 얼마되지 않는 계단 오르기가 정말이지 100층 빌딩을 올라가는 듯했다. 평생 지은 죄를 여기서 다 보속하는구나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몇몇 친절한 순례자가 뿌리는 스프레이나 바르는 연고도 줘서 사용했지만 효과는 별로 없었다.

"내탓이요
내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

'신발이나 돈 아낄 생각말고 제대로 샀더라면' 생각하면서 수산나가 한 말이 발이 아플때마다 새록새록 기억났고 자신을 질책했다. 경험자가 한 말을 들을 걸… 수산나는 친구와 함께 약 두달 동안 산티아고 순례를 했다. 나의 순례보다 더 긴, 프랑스 중부지방(Puy)부터 시작해서 상쟝을 거쳐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그래서 경험자로서 여러 충고를 나에게 해주었는데 특히 비싸더라도 신발만큼은 좋은 걸 구입해야한다고 신신 당부했었다. '알았어' 하면서도, 달리는 것도 아닌데 좋은 신발이 왜 필요할까 하며 싼 걸 산 것이다. 그리고 걸을 때 짚을 지팡이를 구입하라고 했다. 건데 지팡이는 없어도 괜찮았다. 더구나 알베르게에서 관리하기 귀찮고 별 도움도 되질 않고해서 안샀다.

나의 아집때문에 고통은 더 심해지고 이러다 순례를 못 끝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으레 겁도 났다. 참다못해 결국 3일째 되던 날 팜플로나(Pamplona)에 도착했을때 대성당앞 거리의 아일랜드 사람이 하는 여행숍에서 장장 €125를 주고 새 등산용 신발을 장만했다. 발만 아팠던 반값 세일의 그 신발은 그 아일랜드 사람에게 공짜로 주었다. 아무 마련도 없었다.

"Bye Bye..."

이 새로 산 등산용 신발은 비싼, 사실 다른 일반 등산용 신발에 비해 비싸다고 할 수도 없었지만 편하고 좋았다. 우선 신발 밑바닥이 두꺼워 걸어도 발이 편했다. 그후 27일 내내 이 신발은 배낭과 함께 하루에 25km나 30km를 걷는 나의 충실한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걸으면서 주위 풍경도 감상하지만 자주 땅을 내려다 보며 걷기에 오직 반복되는 신발의 움직임을 보며 묵상(?)도 되었다. 내가 어디론가 가고있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인식시켜주는 단순한 행위였다. 그래서 이 신발은 산티아고 순례동안 순례자인 나 자신에게 중요한 일부분이 되어버렸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항상 신발을 벗어 정성스레 햇빛에 내다 말렸다. 그리고 내일을 무사기원했다. 이 신발이 없었으면 산티아고 순례도 무사히 끝내질 못했으리라. 그래서 신발은 '조개 껍질'과 '순례 지팡이'등과 함께 산티아고 순례의 심볼이 되었는가보다.

산티아고 순례를 마친 순례자들이 “피니스테르(Finisterre. 땅의 끝)” 스페인의 서쪽 해안에 다다르면 자기가 신고온 신발을 태우는 풍습이 있다. 고단했던 순례의 과거를 태우고 이제 또 다른 인생의 순례를 떠나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뒤에 새로 태어난(born again)자신을 발견하고 그동안 동반자였던 자신의 신발을 태워버리는 행위 예술, 즉 과거를 지워버리는 다분히 이교도적 '셀레브레이션(celebration)'의 전통이다.



내가 피니스테르에 도착했을 때도 가파른 해안가 바위들 사이 사이에 신발과 소지품을 태운 흔적이 검게 남아있었다. 타다 남은 신발의 나머지 반쪽을 볼수도 있었고 또 아예 태우지 않고 바위위에 가지런히 놓아두고 간 주인없는 신발도 여러 켤레 보였다. 또 많은 사람들은 이 신발을 들고서 대서양을 배경삼아 사진도 찍었다. 심지어 한 바위위엔 등산용 신발 조각품도 있었다. 가만히 바위위에 걸터 앉아 대서양 바다를 내려보며 저 신발을 태운 순례자의 마음을 헤아려 보았다. 자기의 순례 동반자인 신발을 태우면서 그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러나 난 끝내 소중한 나의 동반자를 태워버리지 못했다. 이유는:
1. 단 한벌 뿐이어서
2. 비싸게 €125나 주고 사서
3. 태울 라이터가 없어서
4. 환경오염이 걱정되어서…

태우지 않은 이유를 댈려면 수없이 댈수 있을 것이다. 난 내 소중한 동반자인 신발을 다시 신고 산티아고로 돌아왔다. 그리곤 호텔 욕조에서 끈을 풀고 샴푸로 박박 밀며 그동안 켜켜이 쌓인 먼지를 씻어내었다.  순례동안에 묻어온 모든 고통을, 모든 나의 죄를  깨끗이 씻어내는 환희를 경험하였다. 희열이 느껴졌다. 하얀 욕탕안이 금새 지저분해졌다. 또 그걸 몸을 굽히고 씻어내느라 등도 팔도 아팠다. 그러나 마음은 새로웠다. 햇빛에 탄 얼굴엔 미소가 일어남도 느꼈다. 그리고, 내일, 다시 새로 깨끗이 씻은 €125짜리 비싼 신발을 신고 미사를 집전할 것이다. 그렇지만 '피니스테르'에서 가격으로 매길수 없는 자신의 소중한 동반자였던 신발을 가차없이 태운 순례자는 순례의 대미를 더 아름답게 장식한것 같다. 왜냐하면, 인생의 새 순례를 나보다 더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기에... 자기와 함께한 자신의 일부인 신발을 가차없이 태워버리는 행위는 상징적으로 ‘과거의 나’를 태워 버리는 행위이다. 꼭 ‘영세’의 의미와 닮아있다. 세속안에 죽음으로 그리스도안에 새 생명을 얻는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새생명…
그렇다! 다시 시작이다.
땅의 끝에는 그렇게 ‘새로운 길’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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