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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Jun 24. 2017

윔블던 테니스: 비오는 날 먹는 딸기와 크림

런던 에세이-내리는 비도 전통이 되고...

윔블던(Wimbledon) 테니스 시즌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영국 신문들은 물론이고 BBC방송에선 생중계가 날마다 진행되고 선수들의 액액대는 고함소리도 백그라운드 음악처럼 들려온다.


테니스에 별 관심이 없는 나는 이 시즌만 돌아오면 짜증이 났었다. 왜냐하면 윔블던 테니스 장을 지나는, 또 내가 자주 이용하는 버스노선이 임시로 바뀌기 때문이다. '미사'하러 일 주에 두번가는 수녀원이 윔블던 테니스 장 가까운 곳에 있었고 이 시즌 동안 버스에 내려 한참을 걸어가야 수녀원에 당도할 수 있었다. 그것도 새벽 6시에 일어나 가야하니 아침잠 많은 나는 무척이나 힘들었다. 알람시계를 두개나 머리맡에 두어도 그랬었다. 윔블던 시즌이 아니면 몇몇 안전요원들만 제복을 걸치고 지키던 한산한 이곳이 이 시즌만되면 수많은 인파들이 테니스 장 앞 좁은 2차선 거리를 우루루 모여 다니고 버스 노선도 임시로 바뀌어 시간도 많이 걸렸다. 다국적 수녀님들이 사시는 수녀원은 테니스장에서 가장 가까운 사우스필즈( Southfields)역 위쪽 거리에 있었다. 미사를 기다리는 연세드신 수녀님들을 생각하면 늦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 기간이 2-3주 정도라 참을 만했다.


이 시기엔 이 ‘사우스필즈’ 역과 테니스장에서 더 멀리있는 ‘윔블던’ 역엔 테니스 대회 특별버스가 항상 대기하고 관중들을 테니스장까지 데려다 준다. 또 얼마나 많은 봉사자들과 안전요원들을 이 기간 배치하는지 거리의 한 3분의 1이 이 요원들이며 저마다 유니폼을 걸치고 활기차게 거리를 걷는 모습도 볼만하다. 경기때마다 밖에 떨어진 공을 잽싸게 잡은 뒤 제자리로 돌아가는, 또 땀흘리는 선수에게 타월을 건네주려 항상 서서 대기하는 ‘볼 보이와 걸( Ball Boys and Girls)’들도 많이 볼수 있다. 이들은 윔블던과 가까운 지역의 학교에서 학교장 추천을 받으며 또 심사해서 뽑는다고 한다. 이 ‘볼 보이와 걸’로 일하면 졸업때 약력(cv)난에 자랑스레 이 경험을 쓸수도 있으며 또 높이 쳐주고 또 인기도 많다고 한다.


뭐니 뭐니해도 윔블던 시즌에 가장 유명한 전통은 ‘딸기와 크림(Strawberries and Cream)’을 먹는 것이다. 이 시기를 일컬어 ‘딸기와 크림 시즌’이라해도 과언은 아니다. 1877년에 시작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이 테니스 대회(공식 명칭은 The Championships, Wimbledon)에 왜 이 딸기와 크림을 먹는 전통이 생겼는지 정확한 유래는 아무도 모르지만 아마 이 지역의 딸기 시즌이 이 대회가 시작되는 6월 마지막 주쯤이고 여기에다 달고 진한 크림을 함께 먹는 것이 유행하지 않았나 싶다. 혹자는 이 딸기와 크림을 함께 먹는 전통을 튜더(Tudor)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주장한다. 그 첫 인물은 약 1500년경에 악명 높은 헨리 8세(가톨릭으로부터 성공회를 분리한)의 충복 '울시 추기경(Cardinal Wolsey)'이라 한다. 그러고 보면 이 딸기와 크림을 함께 먹은 역사도 엄청나다. 하여튼, 이 윔블던 기간동안 약 142,000봉지(23 톤)의 딸기가 소비되고 7,000 리터의 크림도 이 시즌동안 먹어치운다고 하니 대단한 먹보들이다.


한편 테니스가 항상 중상류층이 즐기는 스포츠란 이미지가 있어서 28,000병의 값비싼 샴페인도 이 기간동안 소비된다고 한다. 개인적으론 달달한 크림과 함께 먹는것보다 딸기만 먹는게 더 좋다. 윔블던이 시작된 초창기인 빅토리아 시대때 수확한 딸기는 영국인들의 전통인 스콘(scone)과 함께 오후에 마시는 차(afternoon tea)의 일부분이었다고 한다. 지금으로 보면 딸기 농사를 짓던 주변지역과 가까운 켄트(Kent) 군 농부들에겐 소비진작을 위한 아주 자본주의적인 전통이다. 어떻게 보면 초콜렛을 선물하는 발렌타인스 데이나 빼빼로 데이니 뭐니 하는 곳도 이런면에선 비슷한 것같다. 딸기와 크림은 윔블던 대회의 거의 상징이나 같아서 작년엔 윔블던 역 앞엔 붉은 딸기 사진으로 도배해 놓았었다.


그리고 윔블던이라면 빠지지 않는게 또 있다. 영국왕실 가족이 매 대회때마다 관람을 하는데 빅토리아 시대땐 선수들이 로얄석에 앉은 왕실 가족을 향해 절하는 전통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테니스를 좋아하는 케이트 캠브리지 공작부인과 윌리암과 해리 왕자도 자주  카메라에 잡혔다.


마지막으로 윔블던 대회에서 아주 영국적이고 악명(?) 높은 ‘비’를 빼 놓을 수 없다. 자주 경기중에 비가 내려 십여명의  요원들이 잔디장을 우루루 덮게로 덮는 것도 하나의 전통이라면 전통이 되었다. TV생중계를 하는 아나운서도 이럴 땐 항상,


“ Oh, dear…” 를 연발한다.


가끔은 경기가 몇 시간 중단될 뿐아니라 아예 다음날로 연기되는 때도 있다. 그렇기에 영국 TV의 기상예보는 이 기간동안만은  윔블던 기상예보라 할만큼 진담반 농담반으로 윔블던 날씨가 어떨지 보도한다.


하여튼 이 대도시 런던 한구석의 윔블던이 이 2주동안 전세계의 이목을 끄는 ‘브랜딩화'에 성공한 것은 오래된 역사와 함께 하는 이 유형무형의 전통이다. 이런 전통은 돈벌이란 이유로 마구잡이로 창조한 ‘브랜딩화'가 아닌, 또 소위 한때 '창조경제’란 말로 생색낸것이 아닌, 자연스레 역사와 지역 특성을 가미한게 '전통'이 되어버린 예이다. 매번 불편하고 찝찝한 ‘비’도 영국식 농담으로 넘기는 지혜도 살펴볼만하다. 윔블던 테니스 대회 중 크림을 듬뿍 친 딸기를 비오는 날에 먹는 것도 하나의 재미일 것이다. 아니, 이젠  테니스 팬이든 아니든 하나의 ‘의식(ritual)’이며 '전통'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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