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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Jul 07. 2017

별이 멈춘 마을, 베들레헴 성지순례

이스라엘 성지순례 에세이

이곳이 예수탄생지라 알려졌다. 성당 안에 있다.

긴 줄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그 곳..
그 거룩한 자리를 보기위해

멀리서도 왔다.

동방박사로 자칭하고서...

별자리를 터치하고

'구세의 의미'를

묵상하기엔 너무나 짧은 시간.

뒤에서 사람들이

눈빛으로 재촉하고 있었다.

몇 초의 짧은 시간.
그러나

내가 여기 왔음은 분명했다."


2천년 전 팔레스타인의 작은 마을 베들레헴의 어느 동굴 마굿간에서 구세주는 태어나셨다. 그 거룩한 성탄의 도시 베들레헴을 운좋게도 지금까지 두번 방문할수 있었다. 갈 때마다 난 그 거룩함에 항상 압도되었다(오는 11월에 또 간다. 벌써 마음이 설렌다…). 거리에서 만나는 베들레헴 사람들을 보며 그리스도를 떠올렸다. 지나는 갓난 아기를 보며 보자기에 싸여 새록새록 잠자는 아기 예수를 떠올렸다.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너무도 낯익은 이름 베들레헴은 매년 크리스마스 자정때 전세계로 중계되는 자정 미사전례와 캐롤송이 퍼지는 ‘성탄 성당(The Basilica of the Nativity)’이 있는 도시이다. 나는 갈 때마다 이 성당에서 그리 멀지않은 ‘베들레헴 스타(the Star of Bethlehem)'라는 이름 한번 거창한 호텔에 머물렀다. 높은 건물이 별로 없는 25,000명의 작은 도시에서 그것도 언덕위에 위치한 호텔이었고 그래서 꼭대기 층에 있는 호텔식당에서 아침과 저녁을 먹으며 베들레헴 사방을 내려다 볼 수있었다. 그러나 내가 기대했던 도시의 야경이나 풍경은 아니었다. 여기는 홍콩도 아니고 뉴욕도 아니다. 겉으로 보이는 풍경은 다른 이스라엘 또는 팔레스타인 도시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정확한 시간에 도시 곳곳의 모스크에서 확성기로 들려오는 기도소리는 이 도시의 시민이 아랍계 무슬림이 대부분이란 걸 귀로 느끼게 해주었다. 그러기에 베들레헴의 이미지, 즉 우리 마음속에 떠오르는 조용한 시골마을의 이미지는 오래전에 사라졌다.


이 호텔 바로 옆에 ‘베들레헴 대학교(the University of Bethlehem)’가 있다. 가톨릭 교회가 운영하는 대학이었다. 두번째 방문에서 난 이곳 대학도 둘러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우리 본당신자의 언니가 수녀님으로 이곳 대학과 도시에서 몇십년을 계셨기 때문이었다. 전화를 드렸더니 흔쾌히 연세드신 수녀님이 나와 주셨고 그간 이곳에서 사목하신 경험들을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졌다. 수녀님은 복잡하게 얽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부침을 다 경험하셨다. 포화소리가 끊임없이 들리던  밤, 제발 멈춰 달라고 절절이 기도하셨던 얘기도 들었다. 무슬림이 대부분인 이곳에서 수녀님들이 교육사목을 할 수 있는 것도 놀라웠다. 위험하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베들레헴에 수십년 사신 수녀님답게 말씀하셨다.


“세상에 위험하지 않은데는 없어. 마음속에 위험을 느끼는 것 자체가 위험이지…”


베들레헴은 팔레스타인 서안(West Bank)에 위치해 있다. 놀란 곳은 예루살렘에서 약 10km밖에 되지않는 지척의 거리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구역이고 이곳 베들레헴은 팔레스타인 자치구역이다. 사실 한 도시처럼 가까운데 나라는 다르다. 그리고 여기서 20-30리란 거리는 많은 것을 말한다. 어떻게 보면 구세주가 오신 2천년 전과 지금의 시간차처럼 메울수 없을 만큼의 상처의 골이 두 민족간에 또 두 종교간에 깊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우선, 눈에 바로 보이는 어글리(ugly)한 8미터 높이의 콘크리트 장벽이 이 두 도시를 물리적으로 가로지르며 구분하고 있었다. 평화라는 낙서가 군데군데 뿌려져 있는 베들레헴쪽 벽엔 사실 슬픔과 고통이 서렸다. 우리 코치(coach)는 매번 이곳을 통과했는데 통과때마다 이스라엘 군인 몇몇이 총을 들고 코치안으로 들어와 살피곤 했다. 다들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었고 노인들이 대부분인 이 코치안에 들어올때마다 수줍게 영어로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수줍어하는 병사들. 그렇다. 총대를 메고 유니폼을 입어서 긴장되지만 아직도 엣된 얼굴이 햇빛에 거무스레 탄 병사들을 보며, 이들도 희생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평화가 빨리 정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평화의 염원은 안타깝게도 아직도 먼것 같았다.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은 아주 달랐다. 속만아니라 겉도 달랐다. 어떻게 보면 예루살렘은 정돈되고 부유하고 깔끔하지만(구시가를 빼고) 베들레헴은 그렇지 않다. 베들레헴은 유대인들의 성지인 구약의 라헬(레이첼)의 무덤이 있고 그리스도교의 예수성탄 성당이 있어 관광산업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래서 정치적 평화가 경제적 번영을 위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베들레헴에는 올리브 나무로 만든 목각용품을 파는 관광객을 위한 가게들이 많았다. 거리를 걷다보면 먹음직스러운 빵을 파는 가게나 노점상도 많이 볼수 있는데 원래 베들레헴(Bethlehem)이란 의미가 히브리어로 ‘빵 집(빵 마을. the house of bread)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아랍계가 대부분인 이곳에선 아랍어로는 베들레헴이 ‘푸줏간(the house of meat)’이라고 한다.


베들레헴이 유명한것은 뭐니 뭐니해도 예수님이 탄생하신 그 작은 동굴안 마굿간 바로 그 자리위에 지어올린 ‘예수성탄 성당(the Basilica of the Nativity)’이다. 이 성당은 327년에 콘스탄틴 대제의 어머니인 헬레나 성인의 지시하에 세워졌다고 한다. 헬레나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발견해 로마로 옮겨 가져갔던 분이고 또 성지 곳곳을 찾아 발굴하고 거기에 성당을 세웠다. 아마 이 한 분의 노력이 아니었으면 지금 우리가 알고있는 여러 그리스도교 성지들은 영원히 묻혀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후 이 성당은 529년 사마리아 인들과의 전쟁으로 심하게 훼손되었다가 동로마 유스티노 1세에 의해 다시 지어졌다. 그 뒤 오토만 터키령, 영국령, 그리고 1차대전 후에는 요르단령으로 되었다가 1967년 ‘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에 편입되었다. 마지막으로 1995년 ‘오슬로 협정’에 의해 베들레헴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포함되어 오늘에 이른다고 한다. 다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과 마찬가지로 굴곡이 심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인구 구성도 역사와 함께 많은 변화를 겪었는데 1947년에 그리스도교인이 약 85%였으나 1998년엔 40%로 내려앉았고 그후로도 많은 이들이 외국으로 계속 이민을 떠나고 있다고 한다. 몇년후에는 아예 그리스도교인은 없을 거라고 아랍계 가톨릭인 우리 가이드는 한숨을 조용히 내쉬었다.

이 성탄성당은 여러 그리스도교 종파가 같이 관리하는데 이를테면 그리스 정교회, 가톨릭 그리고 아르메니아 정교회 등이다. 이들은 크리스마스를 다른 날로 기념하는데 가톨릭이 12월 25일이라면 그리스 정교회, 콥트, 그리고 시리아 정교회는 1월 6일(가톨릭에서는 주의 공현 축일. Epiphany)에 성탄을 지낸다. 마지막으로 아르메니아 정교회는 1월 19일에 성탄절을 지낸다. 다같은 그리스도교회이지만 날짜만 다르게 해석하는게 아니라 성당 주권주장도 서로 달라 가끔은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무덤 성당(Holy Sepulchre)’과 같이 논쟁과 싸움이 벌어진다고 한다. 안타깝다.


이 성당은 중요한 성지의 성당이라 바실리카로 지정되어 불리며 이 성당으로 들어가는 문은 원래는 큰 아치형 문이었으나 오토만 터키령이었을때 대부분 윗쪽을 막아 아주 낮은 문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유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그러나 이 문을 고개를 숙이며 들어가는 문이라고 해서 이름도 그럴듯하게 ‘겸손의 문(Door of Humility)’라고 불린다. 바로 옆의 성당은 가톨릭에서 관리하는 근대 고딕스타일의 성 카타리나 성당이다. 여기서 예수성탄 동굴(The Grotto of the Nativity)과 그 위에 세워진 성당으로 곧바로 갈 수 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바로 그 자리는 은색의 ‘베들레헴 별(the star of Bethlehem)’로 덮여있으며 주위는 대리석으로 깔려있다. 그리고 공중에는 은색의 램프들이 켜져있어 ‘정교회 성당’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바로 이 자리에서 순례자들은 경배와 기도를 올리며 2000년 전의 시간으로 올라가 목동들과 동방박사들처럼 구세주로 오신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는 것이다. 본 성당안의 코린토식 거대한 원주형 기둥들도 볼만하다. 특히 햇빛이 창을 통해 들어올때면 환상적인 장면을 창조해 낸다.


이 성탄성당을 중심으로 여러 채플(소성당)들이 밀집해 있는데 각각의 채플을 둘러보며 기도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성 요셉 채플(the Chapel of Saint Joseph)’이며 여기에서 천사가 나타나 성 요셉에게 성모님과 아기예수님을 데리고 이집트로 얼른 피신하라고 전갈했다는 자리이다(Matthew 2:13). 또 ‘죄없는 아기들의 채플(the Chapel of the Innocents)’은 헤로데 왕의 지시에 따라 죽음을 당한 아기들을 위한 성당이다(Matthew 2:16–18). 다시 성 카타리나 성당쪽으로 가면 지하 동굴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이는데 아래로 내려가면 여기가 ‘성 예로니모 채플(the Chapel of Saint Jerome)’이며 이탈리아 반도로부터 온 성 예로니모가 이곳에서 성서를 라틴어(불가타 역. The Vulgate)로 번역했다고 알려져 있다. 여러 단체 순례객이 많아 미사를 하려면 예약이 필요한데 두번 다 난 이 동굴 성당에서 미사를 할수 있어 축복이었다.

성당안은 대체로 어둡고 침침하지만 성당 밖으로 나오면 베들레헴의 밝은 햇빛으로 찬란하다. 여기가 그리 크지 않은 ‘구유 광장(Manger Square)’으로 매년 크리스마스 자정이면 수많은 순례자들이 모여 캐롤송을 다같이 부르는 곳이다. (내 목소리가 좋지 않아 캐롤부르는 건 삼가했다. 하지만 우리 그룹의 몇몇은 벌써 캐롤을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항상 있는 단체사진을 찍었다. 여러명의 아랍계 아저씨들이 카메라를 들고 항상 광장을 서성이며 사진찍을 것을 권유한다. ‘치즈’라고 하면서 능숙하게 스마일을 유도하신다.


이 구유 광장을 나와 멀지 않은 곳에 걸어서 ‘우유 동굴(Milk Grotto)’이라는 곳에 갈수 있다. 성서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 지역에서 내려오는 설에 의하면 성모님이 이집트로 피신하는 도중 잠시 쉬어갔던 곳이며 아기 예수에게 모유를 먹인 곳이라고 한다. 모유를 먹이는 동안 모유가 아기 입밖으로 흩어져 성모자가 앉은 바위위에 몇방울 떨어졌는데 기적적으로 바위의 색깔이 우유처럼 하얗게 변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의 바위는 정말 하얀색인데 그뒤 약간은 미신적으로 아기를 갖지 못하는 부인들이 이곳에 와서 기도하며 또 바위의 일부분을 떼어 갈아마셨다고 한다. 믿어지지 않지만 많은 이들이 임신에 성공했다고 한다. 지금은 그 자리에 성당이 세워졌고 수녀님들이 관리하고 계신다. 약간은 첨가된 이야기겠지만 이 이야기속에서 성가족(the Holy Family)의 인간적인 면을 발견할수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굶주리고 고통받는 세계의 아기들과 산모들을 기억하며 기도해도 좋을 것이다.

이 우유동굴에서 코치를 타고 얼마가지 않으면 성서에 나오는 목동들이 머물렀던 베들레헴 들판이 나온다. 동굴이라 하기엔 깊지 않은 움푹 파여진 이곳이 신약성서 복음서에 나오는 목동들이 불을 쬐며 밤을 보내던 곳이라고 한다.바로 이곳에서 하늘로부터 천사가 나타나 메시아의 탄생을 알려줬던 곳이다. 미사때의 ‘대영광송(Gloria)’의 첫번째 구절이 이 천사가 목동들에게 노래한 말이다.


“하늘 높은 데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Glória in excélsis Deo
et in terra pax homínibus bonae voluntátis”


이 곳에서 들판을 내려다보는 것도 좋지만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도 멋지다. 메시지를 전하러 온 천사가 하늘 중간 어느쯤에 날고있을 상상을 하면 풍경의 느낌은 배가된다. 이 천사의 얘기를 듣자마자 목동들은 구유동굴로 냅다 뛰어갔다. 그리고 아기 예수를 보며 경배했다. 그들은 성모와 성 요셉을 빼곤 첫번째로 구세주를 알현한 사람들이었다.

베들레헴은 바쁘다면 하루 안에 다 볼수있다. 그렇지만 저녁에 호텔로 돌아오면 약간은 지친다. 그래서 힘을 얻기위해 낮거리에서 이 도시의 의미인 ‘빵집’을 음미하며 베들레헴의 빵을 사서 먹어봐도 좋다. 마음씨 좋은 아랍 아저씨들(대부분이 남자들이 이 일을 한다. 식당의 웨이트도 상점의 점원도 대부분이 남자들이었다.)들이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가끔 덤으로 주신다. 사실, 다른 국적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수법을 써먹는 걸 금방 알았다. 그러나 전통적인 방법으로 오븐에서 막 구워낸 아랍사람들의 빵은 정말 맛있다. 런던 테스코의 빵과는 비교가 안된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것은 인류에게 ‘일용할 양식(빵)’으로 이곳에서 나신 구세주이다. 그래서 그분은 구유(먹을 것을 놓는 곳)안에 눕혀졌는가 보다. 그분은 이곳 빵 마을에서 태어나 인류에게 “삶의 양식(The Bread of Life)”이 되셨다. 구세주가 태어나신 이곳 빵마을 베들레헴에서 아직도 빵이 필요한 많은 이들을 기억했다. 아직도 빵이 필요한 많은 사람들이 도처에 있다… 미사때마다 받아 나누는 성찬(Eucharist)도 같은 의미다. 왜 그분이 이 빵 마을에 태어나셨는지 조금은 알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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