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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Jul 24. 2017

아주 아일랜드적인, 아주 세계적인 작가, 존 맥가헌

아일랜드 소설가, 존 맥가헌

사진 출처: The Irish Times

아일랜드는 인구라 해봐야 남북 합쳐도 서울 인구보다 훨씬 적은 6백만 여명의 작은 나라이다. 하지만 이 인구 소국은 영문학사에 기록되는 걸출한 대가들을 배출했다. 통계를 낸다는게 이상하지만, 아마 인구대비 유명 시인과 소설가들을 산출한다면 단연 아일랜드가 될 것이다. 지금도 아일랜드 출신 작가들은 영국과 미국에서 열렬한 환영과 인기를 얻고있다. 아일랜드 대중가요만큼이나 문학도 영미 중심의 영어권 세계에 아이리쉬의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이 아일랜드에서 ‘제임스 조이스’ 이후 최고의 소설가라 칭하기도 하는 존 맥가헌(John McGahern. 1934 – 2006)은 많지는 않지만 굴직한 소설들을 썼다. 그의 소설은 읽기는 쉽지만 문학성이 대중적인 것은 아니다. 어렵고, 다루기 쉽지않고, 또 불편한 주제들이 그의 소설안에 항상 스며들어있다. 제임스 조이스가 더블린을 그의 문학적 배경으로 삼았다면 존 맥가헌은 아일랜드 전체, 특히 아일랜드 시골이 그의 문학적 배경이었다. 조이스의 더블린이 마비(paralysis)되어 있다면, 맥가헌의 아이리쉬 시골도 마비로 묘사될 수 있다. 그의 고향 Leitrim 군은 가끔 그의 소설을 푸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단테의 피렌체처럼 맥가헌은 이 시골을 사랑했음이 분명하다. 더블린의 거리지도를 보며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을 읽듯, 존 맥가헌의 소설을 읽으려면 아일랜드의 시골 풍경(landscape)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산과 들 그리고 강과 호수는 소설속 인물들이 바둥대며 살아가는 곳이자 든든한 버팀목이다. 워즈워드(Wordsworth) 만큼이나 자연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아일랜드의 풍경을, 목가적이든 아니든, 염두에 두지 않으면 그의 소설읽기는 핵심을 벗어난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개인적으론 존 맥가헌의 소설은 문자로 그린 풍경화같다. 물론 그 풍경화는 우리가 보는 그 가시적 아름다움뿐만은 아니다. 즉 그의 소설이 ‘컨스터블(Constable)’적인 풍경화는 아니란 말이다.  그가 그리는 아일랜드 풍경화는 생채기가 곳곳에 감추어져있는 상처 투성이고 그래서 힐링이 필요한 인물들이 그 속에 대거 등장하며 서로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중요한 건 그 안에 항상 죄없는 희생양이 있다.



존 맥가헌은 어린 아이였을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 그때 그는 겨우 10살이었고 그 밑에 또 6명의 동생들을 줄줄이 남겨놓고 그의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그녀는 지역 초등학교 교사였다. 그런 어머니는 그의 버팀목이었다. 일찍 돌아가셨음에도 평생 그의 가슴에 남아 그의 평생교사가 되어버렸다. 가끔 인터뷰에서 그는 그런 어머니를 따라 자신은 그때 이미 죽었다고 했다. 이는 아일랜드 경찰서를 일컫는 ‘가르다(Garda)’의 경사(경찰?) 직업을 가진 가부장적인 그의 아버지로 인해 어머니의 그리움은 더했다. 그의 자라온 환경은 그의 소설속에 그대로 녹아있다. 그래서, 그의 소설속 ‘아버지’와의 관계는 항상 문제를 일으킨다.



이 불편한 ‘아버지’와의 관계는 가톨릭 교계제도로 옮겨갔다. 더블린의 UCD(University College Dublin) 을 졸업하고 교사로 가톨릭 학교에서 일했던 그가 그의 소설인 어둠(the Dark. 1965년)에 묘사된 가톨릭 교회의 부패와 직설적인 애정묘사땜에 아일랜드 검열부(the Irish Censorship Board)에 의해 금서로 낙인찍혀 그는 교직을 잃어야만 했다. 당시 아일랜드에서 주교 한마디면 금방 선생직을 그만 둬야하는 가톨릭 교회의 등등한 위세에 작은 개인인 가톨릭 학교 교사가 그에 맞설 수는 없었다. 정든 교사직을 잃고 그는 영국으로 미국으로 떠돌아 다녔다. 런던 남쪽 서섹스에서도 살았다고 하며 공사판을 비롯해 여러가지 직업을 전전 했었다. 남성적인 가톨릭교회의 위계 제도를 싫어했음은 그가 묘사하는 아버지와의 불편한 관계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반면에 가톨릭 교회 전례의 풍부함과 상징성을 좋아해 그의 소설속에 녹여넣었으며 문학적 상상력의 모티브도 되었다. 그의 소설속 문장에 자주 드러나는 반복(repetition)이나 시시각각 변하는 만물과 때(time)가 되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신비로운 계절의 순환은 가톨릭 교회의 전례적 신비와 많이 닮아 있다.



존 맥가헌과의 만남은 아주 옛날 영국의 대학에서 ‘아일랜드 문학강요’란 과목을 신청했을 때였다. 수업 토론의 주제로 그의 소설 ‘여인들 중에서(Amongst Women)’를 교수가 지정했고 나중에 개인별 방학숙제로 그의 소설


그들은 해돋는 동쪽을 마주할 것이다(That They May Face the Rising Sun. 2001)’이 특별히(?) 나에게 돌아왔다. 영어소설이라 지레 겁을 먹었지만 사실 읽기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악명높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나 특히 ‘피네간의 경야’같은 어이없고 도저히 이해안되는  소설들과 많이 달랐다. 그리고 그의 소설은 재미가 있었다. ‘여인들 중에서’란 특이한 소설의 이름은 가톨릭의 ‘성모송’중 한 구절인 ‘여인중에 복되시며(Amongst Women)’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리고 소설속 폭군 아버지 ‘Mr 모란’의 가족들이 저녁식사후 잠자기 전 항상 ‘로자리오(묵주)’기도를 바치는 것에서도 사정을 파악할 수 있다. 이 소설의 내용은 어쩌면 꼭 60-70년대 한국과 비슷하였고 ‘맨 부커 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작으로 선정되지는 못했다.



그리고 방학 숙제로 나온 소설, ‘그들은 해돋는 동쪽을 마주할 것이다(That They May Face the Rising Sun. 2001)’도 이전 소설과 비슷한 일면이 있었다. 제목도 그전 소설처럼 재미있는데 아일랜드 풍습에 의하면 아일랜드 사람들은 죽으면 무덤의 관, 즉 죽은이의 머리가 동쪽을 향할수 있도록 묻는다고 한다. 즉 해가 뜨는 동쪽으로 향함은 부활때에 막바로 일어나 해를 맞이(face) 할 수 있기 때문이라 한다. 런던의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물으니 이 풍습을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아마 가톨릭 이전의 이교도 풍습에서 오지 않았나 하는 사람도 있다. (특히 ‘뉴그랜지(Newgrange)’란 아일랜드 석기시대 유적(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됨)을 보면 일년중 딱 단 한차례 동지(Winter Solstice)에 겹겹이 쌓인 무덤의 돌틈으로 햇빛이 깊은 무덤속 정중앙 한가운데를 비춘다고 한다. 1년에 단 한번, 그것도 동짓날에. 이 무덤 유적이 지름이 약 85미터이고 높이가 약 13.5미터이다. 그래서 석기시대에 어떻게 이 고도의 수학적, 과학적, 기술적인 집약체인 이 유적을 완성했는지 신비롭다.)



하여튼, 그런 유명하고 중요한 작가가 한국에선 지금까지 그의 소설이 한권도 번역되지 않았다(교보문고와 예스24를 검색해도 없었다.).


개인적으론 좀 이상하다 싶었다. 아무리 미국과 영국 중심의 책들을 소개한다해도 이 중요한 아일랜드 작가가 빠진다면 정말 모순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한국인이라면 금방 눈에 가는 그의  단편소설 모음집에 수록된 단편소설인 ‘한국(Korea. 1994년)’도 들어있기에 말이다.


대표작:

-막사(The Barracks. 1963. 그의 첫 소설이다.)

-어둠(The Dark. 1965)

-고별(The Leavetaking. 1975)

-포르노 작가(The Pornographer. 1979)

-여인들 중에서(Amongst Women. 1990)

-그들은 해돋는 동쪽을 마주할 것이다(That They May Face the Rising Sun. 2001). 미국에선 호숫가(By the Lake. 2002)란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다음편은 그의 단편소설 ‘한국(Korea)’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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