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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애 Jan 13. 2022

고집

부리면 일이 생긴다




시아버님은 명리학을 공부하셨다. 남편과 연애할 때 공부를 시작하셨는데 결혼할 즈음 나의 생시를 물으셨다. 작년 연말, 아들 내외의 내년 사주를 봐주신다며 운을 떼시고 이미 준비해 오신 종이를 꺼내셨다. 아버지 스승이 결혼할 때 둘 사주를 보더니 아들이 특수 사주라며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며느리 사주를 보더니 이래서 둘이 만났구나 했단다. 남편은 나무가 많고 나는 흙이 많다고. 남편이 고집이 있는 편인데 나는 그보다 더 큰 고집이 있다며 음양오행으로 설명해주시면서 사주가 그렇다고 하셨다. 특히 내년 2022년에는 고집을 부리기보다 한 번 더 생각을 하고 행동하는 게 좋겠다며 자신의 생각을 밀고 나가기 전에 고민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라고 하셨다. 이건 남편을 포함해서 모두가 그러면 좋을 일이라고도 덧붙이시면서. 아무튼 내게는 강한 흙의 기운이 있기 때문에 금 액세서리로 그 기운을 약하게 할 수도 있고 운동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내가 많이 가지고 있는 (불필요한)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일이니까.





아이 책과 내 책이 연체되어 도서관에서 메시지가 계속 날아왔는데 내가 구경도 못 한 책 두 권이 함께 연체되었다고 쓰여있었다. 이 책들은 빌린 적이 없는데.. 아이 책은 안 본 지 오래되었고 내 책은 며칠 전에 완독을 했으니 이제 정말 반납하자. 성인 자료실에 먼저 들렀다 어린이자료실로 갔다. 대출반납 기기에서 반납을 한 뒤 안내데스크로 곧장 향했다. 저기.. 제가 빌린 적이 없는 책이 연체되었다고 메시지가 와서요. 그래요? 확인해 드릴게요. 카드를 이곳에 올려주시겠어요? 네~ 연체된 책이 두 권 있으시네요. 흠.. 저는 이 책을 빌린 적이 없는데요. 기계가 오작동을 할 경우는 없나요. 한 번씩 기계에 올리지 않고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인식이 될 때가 있더라고요. 어… 그런 경우는 없어요. 기계 위에 두어야만 인식해요. 그럴 수가 없는데? 도서관에 올 때면 내 책을 먼저 빌리고 아이 책을 빌렸는데 대출 책이 담긴 보조가방을 든 손으로 그림책을 빌리다가 오류가 난 적이 여러 번 있었기에 그렇게 말한 거였다. 그럴 일이 없다니.. 그건 그렇다 해도 정말 빌린 적이 없는데, 답답했다. 제가 책을 잃어버려서도 아니고 있는데 갖다 드리기 싫어서도 아니에요. 정말 빌린 적이 없어요!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그런데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나도 똑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절대 그럴 수가 없다와 내가 빌린 게 절대 아니다가 팽팽하게 맞붙었다. 동료 직원의 말에 맞장구를 치던 옆 직원이 그럼 한 번 확인한 뒤 연락을 주겠다고 해서 그러는 게 좋겠다는 말을 남기고 바깥으로 나왔다.





답답하고 격앙된 마음으로 도서관을 빠져나와 걸었다. 다른 볼 일이 있어 버스정류장에 도착해 버스를 기다리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도서관인가 보다. 어린이자료실인데 일단 책이 없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책이 우리 집에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기계 업체에도 연락을 해보았지만 책을 올려두지 않은 채 대출이 될 수는 없다고 하니 다른 가족이 카드를 썼는지 한 번 확인해 봐 달라는 말에 알겠다고 나도 찾아보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왠지 불길했다. 볼 일을 다 보고 돌아오는 길에 집이 가까워질수록 책이 집에 없었으면 하는 희망은 걸지 않았지만 책이 있으면 어쩌나 싶었다. 띠띠띠띠. 철커덕. 곧바로 에코백을 뒤졌고 처음 보는 듯한 책 두 권이 있었다. 내가 이걸 언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만화책만 빌리기 아쉬워서 급하게 책장에서 휘리릭 두 권을 골랐던 장면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하아.. 빌린  절대 없다고 그토록 고집했던 나를 책망했다.  기억에  일말의 의심도 없었는지 빌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는지 이유를 찾다가 그만두었다. 사과를  해야 하며 어떻게 사과할지 생각하기로 했다. 고집부리지 말자. 일기장에 쓰고 다짐했다. 하루가 지나고 일기장을 다시 펼쳤다. 어제 이런 말을 썼구나.. 고집과는 다른 문제이려나. 그럴 일은 절대 없어요. 당신 말은 틀렸어요.  말에 내가 틀렸을 리는 없다며 달려들 필요는 없었는데. 이겨서  하나. 틀릴  있지 않은가.. 고집이라는 글자를 새긴 금팔찌를 하나 맞출까. 비슷한 상황이 왔을  팔찌를 보며  날을 떠올릴 수만 있다면 일은 생기지 않을 텐데. 더군다나 죄송할 일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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