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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희 Oct 25. 2018

두칸, 미열의 체온과 열정

2019 춘하 서울패션위크 리뷰

두칸은 뜨겁고 날 것 같은(raw) 느낌의 브랜드다. Doucan이란 글자 아래 새겨져 있는 Apes La Mousson은 뜨거운 열대 계절풍이 지나가고 난 뒤를 의미한다. 디자이너 최충훈은 늘 그 뜨거운 열기를 하이톤으로 노래해왔다.


하지만 오랜 시간 패션쇼를 지켜보다 보면, 간혹 그런 마법 같은 순간을 만나기도 한다. 마치 해와 달이 겹치는 일식의 순간처럼, 늘 한결같은 목소리를 내는 디자이너가 어느 날 문득 ‘트렌드’라는 것과 조우하는 순간 말이다. 그런 순간에는 날 것 같던 느낌은 세련미로 빛을 발하고, 디자이너의 개성은 매니아를 넘어 폭넓은 대중을 유혹한다.


두칸의 2019 춘하 컬렉션에서 바로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 이날 게스트들은 놀랍도록 트렌디한 버전의 두칸을 만났다. 여전히 최충훈다운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찬 하이톤의 노래였지만 이전의 쇼와는 어딘가 남달랐다.


오프닝 룩은 스카프 프린트의 슬립드레스였다. 프린트 드레스가 두칸에서 이런 식으로 다루어진 적이 있었던가? 디테일 또한 극도로 정성스러웠다. 최충훈은 그 드레스의 헴라인을 레드 스칼럽으로 일일이 처리하고 레드 태슬을 달아 마무리했다.

이 밖에도 그동안 두칸에서 주로 보아왔던 드레스들과는 다른 톤의 드레스들이 연달아 등장했다.

하나같이 공들여 마감된, 그리고 내년 춘하시즌 가장 강하게 부상하는 트렌드 중 하나인 보헤미안 트렌드를 겨냥한 드레스들이었다. 기모노 가운과 오프숄더 드레스, 2겹의 에이프런 드레스, 그리고 집시풍의 소매를 가진 카프탄들이 강렬한 두칸의 프린트를 만나 색다른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애슬레저풍의 바디수트와 티셔츠 드레스들도 매우 참신한 시도였다. 최충훈은 여기에 액세서리로 스타일을 완성했다. 니하이 부츠, 두칸의 프린트를 그대로 담은 실크 프린트 부티(bootie), 벡 벨트 등이 두칸다움을 불어넣었다.

쇼에서 또 하나 돋보였던 것은 액세서리였다.

특히 주얼리는 쇼의 hero였다. 지금까지도 두칸은 ‘full styling’을 전개하는 드문 브랜드 중 하나였다. 두칸의 런웨이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빈틈없는 메이크업과 주얼리, 잡화로 무장하고 등장하는 모델을 보는 건 일상적인 일이지만, 이번 시즌 주얼리들에는 정교한 일관성이 부여됐다.


 모델들은 한결같이 투박한 금색의 원반과 프린지로 제작된 거대한 이어링을 하고 있었고, 슬립가운 위로는 섬세하게 비즈들을 짜넣은 비브(bib) 스타일의 목걸이가 화려하게 빛났다. 이들은 아프리카의 마사이 부족이나 모로코 왕실의 전통의상을 오가는 모호한 이그조틱(Exotic) 무드를 자아냈다.

한편, 모자와 구두는 아르데코풍의 신비로움을 쇼에 가미시켰다. 의상만큼이나 꼼꼼히 준비된 슈즈들과 예술적인 조형미로 가다듬어진 모자, 여기에 두칸의 시그너쳐인 셔츠 드레스와 러플 블라우스가 만나면서 쇼의 중반부는 미스터리한 시간여행으로 관객을 몰아갔다.

이국과 복고, 클래식과 아트, 부족주의 스포티즘 등 모든 매력적인 모먼트들이 담겨있는 컬렉션이었다. 전체적으로 놀랍도록 트렌디한 버전의 두칸이기도 했다.


이번 춘하 컬렉션은 원래부터 최충훈 스타일을 사랑해오던 두칸의 팬들에게도 반가운 제안이지만, 무엇보다 그간 두칸의 옷을 주저했던 여성들에게도 또 다른 유혹이 될 의상이란 점에서 중요한 모멘텀이다.


최충훈은 변하였는가? 아니, 결코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이 변화는 과연 어떤 말로 정의될 수 있는가?

두말할 것 없이 이 변화는 어느 틈엔가 최충훈의 세계가 넓고도 깊게, 한단계 다른 레벨로 진화했음을 의미한다. 그는 자신의 고집스런 목소리를 바꾸지 않고도, 이제 세상이 이해하는 언어, 아니 세상을 매료시키는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색이 강한 디자이너들이 스스로의 길을 걷다가 만나는 마법 같은 순간, 어쩌면 그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 이런 순간을 직면했었는지 모른다.


디자이너 의류는 공산품이 아니다. 패스트패션이 아닌 디자이너의 옷을 고르는 사람들은 언제나 특별한 가치를 원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그 옷이 나를 돋보이고, 나에게 어울리고, 나를 멋진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기를 기대한다. 디자이너 패션이 진정으로 어려운 이유는 여기에 있다.

아마도 두칸은 이제 그 열쇠를 발견한 모양이다. 과연 다음 시즌에는 두칸이 또 어떤 트렌드를 보여줄 수 있을까. 이제  최충훈은 그저 그란 사람을 보고 싶어 하던 팬들을 넘어, 매 시즌 그의 버전으로 말하는 트렌드를 학수고대하는 팬들을 만나게 될 듯하다.

분명코 두칸에게 새로운 날개가 되어 줄 이 변화.  

부디 이 놀라운 진화가 시즌을 거듭하며 지속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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