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즈음 스멀스멀 코로나의 저주가 몰려올 때, 그 누구도 2020년 한 해가 진짜 이렇게 지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을게다. 모두가 합심하여 조심하다 보면 지난번 메르스처럼 몇 달 후면 잠잠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그야말로 설마가 사람 잡았다.
3월부터 남편네 회사는 사회적 거리두기 정부 지침에 (지나친 거 아니냐 싶을 정도로) 아주 협조적이었다. 아직 재택근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일주일이 넘는 기간을 전원 유급휴가를 허했고, 그 뒤로 꾸준히 순번제로 재택근무를 진행해오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번 3차 대유행이 시작되며 회사에 확진자가 나와버렸고, 현재는 2주일간의 재택근무 기간 중에 있다. 딸아이는 아빠 회사 소속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어서, 안 그래도 똑같이 생긴 부녀가 세트로 집콕 붙박이가 되어 버렸다.
식구들이 집에 있어서 가장 힘든 건 바로 나! 어쨌든 식구들이 삼시 세끼 밥은 먹을 수 있게끔 챙겨야 하다 보니 그야말로 매일 어떤 음식을 만들어 내느냐가 세상 골치 아픈 미션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어쩜 하루가 이런가 싶게 먹고 치우고 돌아서면 또 밥할 시간이 온다. 이건 그냥 뫼비우스의 밥띠이다. 남편과 아이에게 '뭐 먹고 싶어?'라고 물으면 예외 없이 돌아오는 답은 '아무거나'인 경우가 대다수인 것을, 그 아무거나를 아무거로 만들어내기 위해 내 머릿속만 정신 사나워지는 물으나마나 한 질문을 그렇게 매일 던진다.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그때는 아침에 눈을 뜨면 밥을 먹고 동네로 '출근'해서 엄마가 창을 열고 밥 먹으라며 이름을 불러줄 때까지 밖에서 구르고 뛰고 그저 열심히 노는 것이 일과였더랬다. 당시엔 지금처럼 대형 마트에서 대량으로 장을 보던 시절이 아녔어서, 엄마들은 해 질 녘이 다가오면 저녁 찬거리를 준비하기 위해 가까운 슈퍼마켓으로 향하는 게 일과였다. 오며 가며 마주친 동네 아주머니들은 서로에게 묻는다.
"오늘 그 댁은 저녁에 뭐해 드세요?"
그렇게 동네 아줌마 정보 네트워크는 길거리에서, 또 슈퍼마켓에서 이루어졌다. 엄마들은 늘 '뭘 해 먹어야 하는지'가 큰 고민이었다.
온통 땀범벅이 되어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저녁밥 먹으러 뛰어 들어가면, 밥상엔 항상 푸짐하게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처럼 밀 키트가 있던 때도 아니고, 하나하나 엄마의 손길이 닿아야만 음식 한 가지가 나오던 시절, 식탁 위에 빈 곳이 안 보이도록 정성스레 음식을 만들어 주시던 엄마의 밥상이 너무도 그립다.
어디 밥상뿐이던가. 그 시절 엄마들은 새벽같이 일어나 아이들의 도시락을 싸주셔야 했다. 우리 집도 오빠가 고등학생이던 시절에는 야간 자율학습 때문에 점심, 저녁 두 개씩 도시락을 싸들고 다녔는데, 엄마는 늘 반찬이 겹치면 안 된다며 이것저것 고민하시고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하시던 게 생각난다. 그 철없던 시절에는 엄마의 고충을 10분의 1도 이해하지 못했다. 입 밖으로 투정을 내어놓진 않았지만 맘에 들지 않는 반찬은 손에 대지도 않고 그대로 가지고 오는 날도 허다했으니 말이다. 지금도 그 생각이 불현듯 떠오르면, 그때 그 시절 나에게 꿀밤이라도 먹여주고 싶다. (지금 우리 딸이 만약 나에게 그런다면, 도시락을 안 싸주겠다며 으름짱을 놓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란 엄마...)
정말 우리 엄마는 그걸 어떻게 다 해내셨는지 모르겠다.
배달의 민족 대한민국은 이 험난한 시절에도 끄떡없이 다양한 맛집을 집에서 만나볼 수 있기에, 정말 아무 음식도 떠오르지 않을 때나 그냥 손가락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을 땐 어김없이 배달앱으로 움찔움찔 눈이 간다. 가뜩이나 세 식구가 계속 집에서만 '먹고사는 중'이다 보니 여느 때보다 식비가 정말 많이 드는 마당에, 사실 배달 음식이 몇 번만 추가돼도 우리 가정 한 달 엥겔지수는 끝없이 치솟기 일쑤이다. 매달 또 그렇게 지낼 수는 없어서 정말 웬만하면 부득부득 '냉장고 파먹기'를 시도하게 된다. 그렇게 또 파먹어 보니 먹을게 나오긴 계속 나온다는 게 더 신기할 지경이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코로나로 인해 마트에 휴지가 동나버리는 '희한한' 사태를 경험한 미국인들에 반해, 다소 여유롭게 집콕 생활을 즐기고(?) 있는 한국인들은, 정말 엄청나게 촘촘한 배달 네트워크의 힘인 걸까 아니면 전쟁이 나도 끄떡없을 만큼 꽉꽉 들어찬 냉동실 덕분인 걸까.
■ 여보야 인간적으로 우리 하루에 한 끼는 시켜먹으면 안 될까?
일찍이 대학시절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지낸 나는 오랜 세월의 단련 덕분인지 음식 솜씨만큼은 나쁘지 않다. 게다가 원래 솜씨 좋았던 엄마 덕에 좀 먹어본 입도 한가닥 한 듯 싶다.덕분에 우리 남편은 신혼초부터 간이 안 맞는 음식을 먹고도 맛있다며 거짓말을 해줘야 하는 통과의례 따위를 겪어보지 '못'했다. 게다가 이 남자의 입맛은 어쩜 그렇게도 코리아 오리진에 충실한지, 모처럼 외식을 하고 싶어도 고르는 게 죄다 한식이다. 상대적으로 입맛이 너무나도 글로벌한 나는 아쉬울 때가 참 많다. 무조건 남편의 선택에만 맞춰주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맞춰줄 수 있는 게 더 많기 때문에 생기는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다.
"나는 우리 와이프가 만들어주는 음식들이 제일 맛있더라고..."
이걸 웃어야 하나 화를 내야 하나. 진심으로 해주는 칭찬인걸 알지만 가끔은 이 사람이 '매기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으니, 내가 너무 삐딱한 건지... (다 코로나 블루 때문인 걸로 하자)
이런 칭찬은 고래만 춤추게 한다.
코로나 덕분에(??) 다양한 음식을 시도해 보게 된다. 굴전, 홍합탕, 김밥, 닭갈비, 오늘도 우리집 주방은 'OPEN'
코로나로 인해 우리는 너무나 새로운 세상을 맞이했다. 남편 회사도 재택근무가 과연 가능하냐던 논란이 강제적으로 잠재워진 듯하다. 세 식구가 매일 집에서 북적이니 이게 주말인지 평일인지 분간이 안 되는 날의 연속이지만, 이렇게 셋이 부대끼며 지내는 동안 그 안에서 깨알 행복들을 찾아가 보는 나름의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다. 물론 나름의 긍정적인 측면을 바라봤단 것이지, 실상 결론은 하나뿐이다. 가족들 간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급하다는 것.(궁서체) 각자 일터로, 학교로, 그렇게 하루를 열심히 보내고 저녁에 얼굴을 마주했을 때 가족은 더욱 돈독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지금은 그야말로 가족애가 과유불급이다. 사실 가족뿐만 아니라 사람의 관계라는 게 다 그렇지 않던가. 우리는 모두 그렇게 각자의 영역이 존중받기를 끝없이 갈구하고 있다.
올 한 해 아이가 며칠이나 등원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매일 뭐하며 놀아줘야 하는지가 끝없는 고민거리였는데, 혼자 노는 법을 모르나 싶을 정도로 엄마에게 치대던 아이도 한해를 지나오며 많이 성장했고, 지금은 나 혼자 숨을 쉴 수 있을 만큼 딸아이도 혼자 노는 시간이 늘어났다. 덕분에 나는 이렇게 글도 쓸 수 있고, 틈틈이 책도 펼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우리는 다 상황에 적응해 가는 중인가 보다.
결혼을 하고 식구들 밥을 챙겨주다 보니 늘 하는 말이 있다. 남이 해주는 밥은 다 맛있다는 것이다. 뭐가 됐든 내가 만들지 않은 음식은 그게 그냥 잘라 놓은 오이일지라도 세상 맛있기 마련이다. 요즘은 '요섹남'(요리 잘하는 섹시한 남자)이 대세라는데, 우리 남편은 요리와는 담을 쌓았다. 그러나 나보다 집안 정리를 잘하는 관계로 이 부분은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 (다만 그냥 나 혼자 아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