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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Nov 23. 2021

탱고가 바꿔놓은 많은 것들

서교동 메리골드 호텔 뒤편, 갈빗집 아래 지하 연습실.

동호회 생활은 재밌었다. 후루룩 후루룩 스피드하게 매주 토요일마다 이어지는 수업과 더 끊임없이 다이나믹하게 이어지는 뒷풀이(홍대 파불고기집 VVIP는 이 동호회가 틀림없다). 

동호회는 아카데미가 아닌지라 분위기부터 굉장히 자유로운 데다 동기들의 실력 차이도 극단적이었다. 탱고 자체를 처음 배우는 사람부터, C처럼 오랫동안 탱고를 해오던 사람까지 온갖 레벨의 성격 다양한 사람들이 동호회라는 이름으로 뒤섞여 있었다.

여기에 동호회 앞 기수 선배들까지. 나이도 다양하고 생각도 다양한 이 수많은 이들이 탱고 하나로 모여 동호회를 이뤄가고 있었다.      


이곳이 생각보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곳인지라 모 배우가(무려 닉네임이 ‘람세스’) 선생님을 한 기록도 있고, 거짓말같이 탱고 세계 챔피언인 아르헨티나 출신 마에스트로가 챔피언이 되기 전 강습을 한 적도 있단다.   

  

 

*

동호회로 이어진 탱고 인맥이 늘어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밀롱가에 갈 수 있었다. 


먼저, 밀롱가(Milonga)의 뜻은 두 가지로 쓰인다.

① 음악의 장르 중 하나로, 탱고, 발스(Vals)와 함께 배우게 되는 빠른 박자의 음악이자 춤.

② 특정한 시간에 탱고를 모여 추는 일종의 ‘탱고 클럽’이나 모임을 뜻한다.      


지금의 밀롱가는 ②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동호회에서 강습을 같이 듣고 술을 같이 마시면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L님도 밀롱가 같이 가요~”

“금요일에는 어디 밀롱가 가세요?”     

같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수많은 탱고인들의 희로애락은 밀롱가에서 만들어지고 또 만들어진다(거의 밀롱가가 탱고의 전부라고 생각될 만큼). 

밀롱가는 전 세계 곳곳에서 매일같이 열리며, 서울은 아시아에서도 단연 밀롱가 천국이다. 홍대와 강남을 중심으로 열리는 밀롱가가 수십 개이며, 원하면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탱고를 출 수 있다. 

보통 4시간, 코로나 이전 시대에는 늦은 8시부터 12시까지, DJ의 기분이 내키면 1시까지. 음악을 듣고 테이블에 앉아 술을 마시거나 춤을 출 수 있었다.      



*

춤에 술이 빠지면 쓰나. 술과 음악, 춤이 어두운 조명 아래 한데 뒤섞인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플로어를 도는 커플들을 바라본다. 음악과 음악 사이, 서로 어제 만난 것처럼 다정하게 포옹하며 인사를 나눈 뒤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이때부터 나도 슬슬 ‘땅또(땅고+또라이)’가 되어갔다. 밀롱가에 가서 병풍처럼 앉아있기 싫었고, 춤을 더 잘 추고 싶었다. 밀롱가에서 노는 것이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일상생활에 탱고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퇴근하면 자연스럽게 밀롱가로 발걸음이 향했고, 내 애플뮤직 플레이리스트에 탱고 음악들이 늘어났다. 초급 수업에서 듣던 지루한 음악이 아닌,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그러나 가사는 스페인어라 못 알아듣는) 탱고 음악들을 들으며 홍대로 향하는 지하철을 탔다.      

그렇게도 사랑하는 곡, Buscandote(너를 찾아서)

 

핸드폰에는 지금 흘러나오는 음악이 뭔지 찾아주는 앱인 ‘샤잠’이 접근성 좋은 페이지에 진출했다. 집에 자꾸 탱고 구두가 깔별로 번식했다. 


늘 지치고 무미건조했던 퇴근길 풍경이 달라졌다. 

정말 사람이 적은 조용한 효창공원역 승강장에서 나는 혼자 몸을 곧게 펴고 앞으로 걸어나간다. 4-3부터 2-1까지. 한 발로 조용히 서서 버티기도 한다. CCTV 말고는 아무도 보지 않을 그곳에서 나는 혼자 상상의 구두를 신고 몸을 쭉 펴고 스크린도어를 거울삼아 걸었다.      


탱고와 함께하며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늘 가벼운 목례나 악수로 끝내던 인사가 다정한 포옹으로 바뀌었다. 친구들이야 별일이 없었지만, 일로 만나는 분들에게 그런 당황스런(?) 인사법이 어색할 법도 한데 다행히 부정적인 반응을 내비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평소에 ‘말 걸기 어려워 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던 내게, 이런 인사가 나를 사람들이 조금 더 편안해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주말이 사라졌다. 일 년에 백 권 넘게 보던 책도, 그렇게 사랑하는 먼 곳의 맛집 투어도, 사진 출사도, 친구와의 만남(평일로 대개 옮긴다)도 모두 밀롱가, 밀롱가, 밀롱가… 밀롱가로 대체되었다.      


밀롱가에 가서 평소엔 절대 입지 않을 등 파인 드레스로 갈아입고, 구두끈을 질끈 동여매고 마루 위에 올라서면, 일상과는 유리되는 그 묘한 감각이 느껴진다. 여기서 나는 온전히 L일 뿐이고, 음악과 술, 탱고만이 이 시간과 공간에 존재한다. 


이 감각이 사람들이 수십 년간 탱고에 올인하게 하는 또 하나의 이유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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