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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Aug 23. 2019

이혼시대

사후(死後)이혼이라는 제도가 있다.

사후이혼이란, 말 그대로 배우자가 죽고 나서 하는 이혼을 뜻한다. 얼마나 미웠으면 죽었는데도 이혼을 하려할까? 심정적으로 이해는 되지만 굳이 그럴 것까지 있나, 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하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배우자의 죽음은 부부관계의 종료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후이혼을 해야 하는 이유는, 당연히 살아있는 사람들 때문이다. -항상 살아있는 사람이 문제다. 산 사람이 괴롭히지 죽은 사람은 그러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배우자가 죽어 부부관계가 종료됐다 해도 인척관계는 종료되지 않는다. 때문에 남편이 죽어도 시아버지 제사에 참석하는 며느리, 부인이 죽어도 장모님 생일에 가는 사위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좋게 좋게 살아서 서로 얼굴 보는 게 괜찮다면 아무 문제 안 된다. 그러나 그 반대라면 어떤가?

마주하기조차 싫은데 인척이라는 이유로 연락하고 만나야 하는 일이 자꾸 생긴다면, 당연히 그 인척관계도 끊어내고 싶어진다. 그래서 이혼하려하지만 이혼할 배우자가 없다. 어쩔 텐가? 아쉽게도 국내법에는 배우자와 사별하면 인위적으로 인척관계를 단절시킬 방법이 없다.

일본에는 있다. 일본의 민법과 호적법에 따르면, 살아남은 배우자가 인척관계를 종료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해 신고하면 법적으로 이혼이 성립된다. 바로 사후이혼이다.     

결혼은 고대의 유산이지만 이혼은 현대의 선물이다. 이혼을 ‘선물’이라 칭한 이유는 좋은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투쟁의 산물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이혼이 제도로 성립되는 데까지 고된 과정이 필요했다.


서양에서조차 카톨릭이 대세였던 시대에는 제도적 이혼이 거의 불가능했다. -남자 입장에서 힘없는 여자를 내쫓는 행위를 이혼이라고 하지는 말자. 그건 폭력이고 억압이니까.

잉글랜드의 국왕이었던 헨리8세, 뭐든지 제 맘대로 하는 르네상스 시대의 군주였지만 이혼은 맘대로 할 수 없었다. 형 아서 튜더가 요절해서 왕세자가 된 주제에 형수인 왕비 캐서린과 20년을 살고 나서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이혼하고 궁녀였던 앤 불린과 결혼하고자 했다.

그러나 큰 걸림돌이 있었으니 교황 클레멘스 7세가 결혼무효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쯤 되면 이혼을 접을 만도 하지만, 헨리8세는 교황과 결별을 선언하고 수장령을 내려 잉글랜드 교회를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분리시켰다. 영국의 청교도를 탄생시킨 잉글랜드 종교개혁의 시작이다. 왕이 이혼하려고 나라의 종교까지 바꾼 형국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여자 입장에서 이혼이란 ‘거의’가 아니라 ‘그냥’ 불가능한 것이었다.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는 왕비가 아들이 없을 경우 폐할 수 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왕실의 이혼이라해도 역시 부인을 내치는 행위에 불과했고, 기껏해야 처(妻)를 버리는 고위관료를 탄핵하는 식의 보호장치만 있었을 뿐이다.


조선시대는 한술 더 떠 공식적인 이혼에는 국가의 승인이 필요했다. 게다가 합법적인 이혼이란 게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국가가 이혼을 강제하거나 남편이 칠거지악 등을 빌미로 처에게 이혼을 요구하는 두 가지 형태뿐이었다. 부인은 남편의 동의 없이 이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으며 몰래 도망했다가 재혼이라도 하면 극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심지어 어릴 적 부모들의 일방적인 약속에 의해 정혼이라도 했다면, 얼굴 한번 보기 전에 신랑감이 죽었다 해도 혼인으로 인정해 죽을 때까지 혼자 살아야 했다.     


역사적으로 이혼이 제도화된 게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혼은 쉬워도 이혼은 여전히 쉽지 않은 문제다. 싫어서 헤어지겠다는 데 안 되는 건 뭐 이리 많고 뭘 계속 기다리라는 건지, 당사자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다.


결혼 과정을 영화화하는 일은 많아도 이혼 과정을 영화로 만드는 일은 거의 없다. 그만큼 볼장 다보고, 바닥까지 가는 게 이혼의 지난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연애는 환상이고 결혼은 현실이지만 이혼은 악몽이다. 드라마 <연애시대, 2006>를 보면 손예진의 이혼사유를 묻는 오윤아의 질문에 손예진은 이렇게 답한다.

"더 미워하기 싫어서."

사랑했던 남자의 바닥까지 보고 싶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드라마다. 현실의 부부는 이 정도면 보통 이혼하지 않는다.


이혼을 앞두면 기억력이 좋아져서 그동안 배우자에게 섭섭했던 모든 일을 한꺼번에 쏟아낸다. 연락을 씹고 남들 앞에서 창피했던 이야기 같은 건 기본, 새집 인테리어를 하면서 누가 돈을 더 많이 냈고, 삼겹살 먹고 싶은데 파스타 먹어야 했던 일, 더 이상 섹시하지 않다고 했던 말까지 모두 이혼 사유로 열거된다.


결혼할 때에는 거의 따져보지 않았던 결혼의 정의가 이혼할 때에서야 하나씩 명확해 진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결혼하면, 나는 이 정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너는 아니구나. 사랑하면, 나는 이것까지 이해할 줄 알았는데 너는 아니구나. 그래, 우린 성격이 안 맞구나.

결혼할 때 이런 세부적인 것까지 일일이 따져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합의될 수 없었던 부부의 의무와 사랑의 정의에 대해, 각자 쪽지 시험이라도 봐서 서로 얼마나 다르게 생각하는지 미리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할 수 없다. 부부관계를 지속하기 싫으면 이혼하자. 다만 <연애시대>의 손예진처럼 바닥까지 보기 전에 이혼하자. 그래도 한 때는 사랑했던 사이 아닌가? 서로 다른 결혼을 기대하고 다른 사랑을 꿈꿨다 하더라도 그건 죄가 아니다.

다만, 이혼했다면 서로 상처주지 말고, 다시 합치지도 말자.      


그림: 데이비드 호크니 作 <모델이 있는 미완성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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