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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Aug 11. 2019

이유를 설명할 이유는 없다

24살의 나이로 요절한 배우 제임스 딘이 주연한 영화 <이유 없는 반항>

너무 옛날 영화라 본 적은 없어도 제목은 누구나 들어봤을 영화이다. 영화는 미국의 비행 청소년들을 다루고 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주연 배우들이 제법 나이가 있고 덩치가 커서 별로 청소년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냥 영화에 대해 말해 보자. ‘이유 없는 반항’ 제목이 암시하듯이 제임스 딘을 비롯해 나탈리 우드, 살 미네오 등 영화의 주인공들은 벌이는 헛짓거리에는 별 이유가 없다. 술 마시고 경찰서를 들락거리던 제임스 딘은 ‘버즈’ 일당을 만나 절벽 앞에서 자동차 경주를 벌이는데, 절벽 근처까지 차를 몰고 가서 먼저 탈출하는 놈이 ‘겁쟁이’가 되는 무모한 게임이었다. 


적당히 달려가다 둘 다 차에서 뛰어내렸으면 누가 몇 센티 멀리 갔는지를 따지면서 평화롭게 끝났겠지만, 제임스 딘의 경쟁자는 옷이 손잡이에 걸려 탈출하지 못했고 그대로 추락해 죽고 말았다. 


몰려다니며 사고나 치고 다니는 비행 청소년들이 졸지에 범죄자가 되는 순간, 이들의 ‘이유 없음’은 이제부터 이유가 있게 된다. 잃을 게 많은 놈은 그게 두려워 계속 더 큰 사고를 치고, 양심에 가책이 심한 놈은 자수를 하네 마네 하며 관람객들을 가슴 졸이게 한다. 


영화 자체 보다는 영화에 대한 평이 더 끝내준다. ‘사회와 부모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결국은 목숨까지 잃고 마는 청소년들의 비극을 그린 영화.’ 이 평가가 맞는 말이라면 이들의 ‘반항’은 처음부터 이유가 있었다. 기성세대가 그들을 이해해 주지 않았다는 것. 


어차피 영화 제작자가 영화를 많이 팔기 위해 만들어 놓은 제목을 가지고 더 시비걸 생각은 없다.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반항은 이유가 없어야 더 멋진데 포기는 왜 이유가 있어야 하느냐?


정답은 영화와 현실은 다르니까.

맞다. 영화와 현실은 상당히 다르다. 미국 청소년들의 아이콘이 되어 불멸의 인생을 살 것 같았던 제임스 딘은 24살에 교통사고로 죽었고, 살 미네오는 난데없이 피자배달원에게 칼을 맞아 37살에 죽었으며 나탈리 우드는 43세에 물에 빠진 익사체로 발견됐다. 


별 상관없지만 제임스 딘의 미들네임이 바이런인데, 젊음과 반항의 상징과 같았던 영국의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도 짧은 인생동안 멋진 시 쓰기와 주색잡기를 반복하다가 36살에 돌연사했다. 


이유가 없다는 것은 종종 이유를 명확하게 말하기 어렵다는 말과 혼돈된다. 이유를 말하자면 구구절절 정확하지 않은 이야기를 주절주절 해야 하는데, 그렇게 얘기해도 그게 이유가 될지 안 될지 자신 없기 때문에 우리의 두뇌가 그냥 ‘이유 없음’으로 처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조현병 환자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해를 끼쳤을 경우 이 미친 짓의 이유를 명확하게 밝힐 수 있을까? 그럴 때 우리는 이렇게 쓴다. ‘한 조현병 환자가 이유 없이 행인을 다치게 했다.’


잘 따져보면 어떤 행위에 대한 이유가 있는 것 보다 없을 때가 더 많다. 엘리베이터 버튼 앞에 서 있으면서도 남들을 위해 열림 버튼을 눌러주지 않는 이유, 8차선 도로의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스마트폰에 머리를 박고 있는 이유, 더 빨리 가지도 못할 거면서 끝없이 차선을 바꾸며 왔다갔다하는 이유. 각자 나름의 이유를 댄다고 해도 그것에 대한 반박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리고 심지어는 이렇게 단정 짓는다. ‘그건 이유가 되지 못한다.’


어떤 면에서 ‘갑’은 이유가 없어도 되고 ‘을’은 항상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부장은 예정에 없는 휴가를 내며 ‘일이 좀 있어서’라고 말하면 끝이지만, 직원은 멀쩡한 친구 부모가 죽거나, 가끔은 두 번 세 번도 죽는다, 이미 돌아가신 장모님이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 연인이나 부모자식 간에도 마찬가지인데 주도권을 쥔 쪽은 이유가 없어도 되고, 없는 쪽은 항상 이유를 준비해야 한다. 참고로 자식이 ‘을’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완전 편견이자 착각이다. 


이쯤 되면 이유라는 게 참 이유스럽지 못하다는 것을 짐작했을 것이다. 인간사에 제대로 된 이유가 있기는 한가? 어떻게 말해야 온당한 이유라고 판단해 줄 것인가? 근거가 확실하면 훌륭한 이유가 된다. 하지만 근거가 확실하지 않아도 말을 잘하거나 관계가 훌륭하면 온당한 이유로 인정해준다. 이유가 점점 이유 같지 않아진다. 


포기에도 이유는 없다. 가물가물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이유를 억지로 생각해 내지 마라. 잘 떠오르지 않는 이유를 애써서 만들어봐야 나중에 변명거리로 쓰일 뿐이다. 포기할 만하니까 두뇌가 그리 판단한 거고 어떤 선을 넘었다는 느낌이 들면 툭 털어버리고 포기하라. 


제임스 딘은 산타 모니카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1년 만에 법학을 포기하고 UCLA로 편입해 본격적인 연기를 시작했다. UCLA도 그의 경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자 이마저 중퇴했다. 두 번의 대학 포기가 없었으면 오늘날 우리는 제임스 딘을 배우로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유 없는 포기, ‘이유 없는 반항’ 만큼 멋진 어감은 아니지만 인생에서 반항보다는 더 나은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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