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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Apr 12. 2022

"능숙해질 때까지 계속 춤을 추는 거야"

무라카미 하루키, <댄스 댄스 댄스>, 문학사상, 2009


나는 오늘도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춤을 춘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호흡하며 어느새 능숙하게 스텝을 밟고 있다. 때론 느리게 때론 빠르게, 쉼 없이 오늘을 살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댄스 댄스 댄스> 책을 읽으며 스텝에 대해 생각했다. 삶의 한가운데를 지나오며 나는 지금 능숙하게 춤을 추고 있는 걸까. 지나온 삶의 흔적들이 음악 위에서 리드미컬하게 재생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가이자 번역가다. 1949년 교토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29세에 데뷔했다. 1982년 <양을 쫒는 모험>으로 제4회 노마문예상을, 1985년 <세계의 끝과 하드 보일드 원더랜드>로 제21회 다니자키 준이치로상을 수상했다. 그 외 다수의 작품과 수상 이력으로 하루키 신드롬을 일으키며 전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했다.



<댄스 댄스 댄스>는 형식상 4부작의 끝이지만 하나의 독립된 소설이다. <양을 쫒는 모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 노르웨이의 숲>에 이어 완성했다. 3개월 만에 일사천리로 써 내려간 <댄스 댄스 댄스>는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춤추며 돌아가듯 숨 가쁜 현대 젊은이들의 삶과 사랑과 성의 이야기를 엮어낸 소설이다. 중단편을 통틀어 다수 작품의 공통 주제가 부질없고 덧없는 '상실'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또한 그의 음악적 취향이 <댄스 댄스 댄스>에서도 수많은 노래들로 재생되며 색을 드러낸다.



이 책의 주인공(나) 서른넷의 이혼 경험이 있는 자유기고가다. 과거 기묘한 사람과 사건에 휩싸였다가 모든 것이 끝나고, 반년 동안 평형감각을 회복하기 위해 방 안에 틀어박힌다. 다시 사회로 되돌아와 자유기고가로 여성 잡지 등에 잡다한 글을 쓰며 생활한다. 다시 출발점에 선 나는 자아 탐구를 위해 삿포로로 여행을 떠난다. 돌핀 호텔에서 관념의 세계인 '양 사나이'와 재회하고, 하와이로 재생 여행을 떠나며 기묘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이어진다. 돌핀 호텔로 다시 돌아온 나는 상실감과 절망을 극복하고 프런트 여성 유미요시와 새 출발을 한다.



"그래서 난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춤을 추는 거야"라고 양 사나이는 말했다.
"음악이 울리는 동안은 어쨌든 계속 춤을 추는 거야. 내가 하는 말 알아듣겠어? 춤을 추는 거야. 계속 춤을 추는 거야. 왜 춤추느냐 하는 건 생각해선 안돼. 의미 같은 건 생각해선 안돼. 의미 같은 건 애당초 없는 거야. 그런 걸 생각하기 시작하면 발이 멈춰버려. 한 번 발이 멈추면 이미 나로선 어떻게도 도와주지 못하게 되고 말아. 그렇게 되면 자네의 연결고리는 모두가 없어지고 말아. 영원히 없어지고 마는 거야. 그렇게 되면 당신은 계속 이쪽 세계에서밖엔 살아가지 못하게 되고 말아. 자꾸자꾸 이쪽 세계로 끌려들고 마는 거야. 그러니까 발을 멈추면 안돼. (중략) 두려워할 건 아무것도 없어. 당신은 분명히 지쳐 있어. 지쳐서 겁을 먹고 있어. 누구에게나 그런 때가 있어. 무엇이고 모두 잘못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야. 그래서 발이 멈춰버리거든."
(상 p.167)



'양 사나이'는 그림자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념의 세계다. '음악이 울리는 동안은 어쨋든 계속 춤을 추는 거야'라고 이야기하는 '양 사나이'의 목소리가 내 안에서도 들려온다. '당신은 분명히 지쳐 있어. 지쳐서 겁을 먹고 있어. 누구에게나 그런 때가 있어.' 의미와 생각을 곱씹으며 주저앉지 말고 다음 스텝을 밟아 나가라고 등을 떠민다. 삶의 의미가 옅어지 삶도 <댄스 댄스 댄스> 책 속의 음악을 흥얼거리며 힘을 내어 스텝을 밟는다. 스텝 바이 스텝, 인생의 허들을 넘어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고도 자본주의의 삶과 사랑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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