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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Aug 10. 2021

나답게 사는 삶, 살고 계신가요?

<올리브 키터리지>, <다시, 올리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장편소설


'누군가 그랬다. 우리는 살면서 세상에 잘한 일 보단, 잘못한 일이 훨씬 더 많다고. 그러니 우리의 삶은 언제나 남는 장사이며 넘치는 축복이라고. 그러니 지나고 후회 말고 살아 있는 이 순간을 감사하라고. 정말 삶은 축복이고 감사일까? 우리 엄마와 할머니에게도?'


2016년 방영된 미니시리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딸로 출연한 고현정의 대사다. 김혜자, 나문희, 고두심, 박원숙, 윤여정 등 베테랑 배우들이 출연해 '황혼 청춘'들의 인생 찬가를 그린 드라마다.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살아있다'라고 외치는 황혼 청춘들의 이야기를 지금도 기억한다. 기대 수명이 백세 시대를 훌쩍 넘어서면서  중년, 노년의 삶도 자연스레 조명된다. 20~30대와 40~50대를 지나 노년으로 접어들던 60~70대의 삶이 이전과 달라지고 있.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으 준비된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이 맞이하는 삶의 질은 확연히 차이 날 것이다. 이런 얘길 나누다 보면, '난 적당히 살다 갈 거야. 오래 살아 뭐해'라고 단언하듯 얘기하는 이들을 종종 만난다. 그런데 그게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디어 마이 프렌즈'가 노년을 맞은 부모 세대의 한국적 삶을 다루었다면, 이번에 읽게 된 <올리브 키터리지>와 <다시, 올리브> 1, 2권의 책은 중년과 노년의 미국적 삶을 밀도 있게 다뤘. 이 책은 주인공 올리브와 그녀를 둘러싼 메인 주 바닷가 마을 크로스비 주민들의 이야기다. 평범하지 않은 주인공 올리브와 평범한 이웃들의 이야기 속에  중년과 노년의 '늙음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가는 노련하고 익숙하게 사람들의 내면을 스토리 속에 녹여낸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이웃집 이야기 들려주는 것처럼 빠져들게 한다. 책을 덮었을 때, 나와 내 가족, 이웃의 삶을 함께 살아낸 듯했다.


당신은 짐승 같은 여자하고 결혼해서 그 여자를 사랑하게 될 거야, 올리브는 생각했다. 아들이 하나 생길 거고, 그 애를 사랑하게 될 거야. 하얀 가운을 입고 키가 훌쩍한 당신은 약을 사러 온 동네 사람들한테 끝도 없이 친절할 거야. 당신은 눈이 멀고 벙어리가 되어 휠체어에서 생을 마감할 거야. 그게 당신 인생이 될 거야
- 올리브 키터리지 291page


주인공 올리브는 먼저 떠난 남편의 어린 청년 시절 사진을 보며 이렇게 회상한다. 자신의 모습에 '짐승 같은 여자'라는 수식어를 붙일 만큼 올리브는 올리브답게 산다. 올리브는 한 남자의 아내이자 한 아이의 어머니이자 그가 속한 마을 커뮤니티의 일원이다. 그리고 마을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수학선생님이다. 올리브의 성격은 퉁명스럽고 비호감에 가깝다. 올리브는 누군가에게 사과를 해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올리브가 상식을 넘어서는 행동을 하는 건 아니다. 소신과 원칙을 가지고 자신만의 삶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올리브는 타인이 기대하는 기준점에 맞춰 살지 않을  뿐이다.


올리브는 아들이 자신을 '나르시시즘'으로 여기고 있다는 걸 나이 들어 직면한다. 아들에 대한 사랑만큼은 지극했기 때문에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결국 아들에게 '엄마가 없는 유년시절'을 보내게 했다는 걸 노년에 깨닫는다. 결혼 후 중년, 노년을 살아가는 동안 올리브는 두 남자의 사랑을 받았고, 엄마와 소원해졌던 아들의 마음이 다시 그녀에게 돌아오지만 즐겁지 않다. 자신이 즐겁지 않은 것은 그녀 자신 때문이었음을 너무 늦게 깨닫고 받아들인다. 




나 또한 비교적 나답게 사는 삶을 지향하며 살아왔다. 올리브처럼 아들에게 '엄마가 없는 유년시절'을 보내게 했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있다. 남편의 이해와 친정 엄마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허약 체질인 나는 워킹맘이 되면서 애초부터 '원더우먼'이 되지 않기로 결정했다. 가사 일에 서툰 나는 굳이 잘하려 애쓰지 않았다. 김밥은 김밥집에서, 반찬은 반찬가게에서 소비하고 기본 요리는 남편과 번갈아 하며 세 식구 불편함 없이 살아왔다. 나에게는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그런데 어떤 이는 김밥을 왜 직접 싸지 않느냐며 이해할 수 없어했다. 누구를 위한 잣대인지는 모르지만 과거에는 더욱이 그랬다. 요즘은 유기농 마켓에서 새벽 배송을 주로 이용하는데, 나를 아는 지인들은 나를 위한 시대가 왔다고 호응한다.


가족과 사회 공동체 안에서 나답게 사는 일은 쉽지 않다. 상식이라는 범주안에서 이탈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나답게 사는 삶과 더불어 사는 삶 사이엔 넘사벽이 있는 걸까? 그런 면에서, 중년을 지나 노년까지 변화하는 삶의 방식에 적응하며 나답게 삶을  올리브가 존경스럽다. 올리브의 삶은 다가올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 올리브의 삶을 통해 중년과 노년의 삶, 늙음과 죽어감에 대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이었다. 아울러 삶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나의 삶에 대해서도 곱씹어보았다.


당신은 자기애가 강하고 꿈이 큰 여자와 사랑에 빠질 거야. 결혼을 하고 아들을 하나 낳을 거야. 당신은 아내와 아들을 사랑하며 행복한 꿈을 꿀 거야. 그러다가 흙수저인 당신은 샐러리맨으로 현실의 벽을 느낄 거야, 아내가 꾸는 꿈을 응원하다가 거센 폭풍우를 만날 거야. 현실은 녹록지 않을 거야.
그렇게 광야에서 헤매던 여자를 하나님이 이끌어주실 거야. 당신도 아들도 함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될 거야. 무너지지 않을 믿음의 성을 쌓아갈 거야. 당신과 여자는 마주 보며 중년과 노년의 삶을 그 어느 날까지 묵묵히 살아갈 거야.
- 옥돌여행의 삶 가운데



[올리브 키터리지]와 [다시, 올리브]의 저자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1956년 미국 메인 주 포틀랜드에서 태어났다. 문학잡지 등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던 그녀는 2008년 발한 세 번째 소설 [올리브 키터리지]로 언론과 독자들의 호평을 받으며 2009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HBO에서 미니시리즈로도 제작되었다. 2019년 [올리브 키터리지]의 후속작인 [다시, 올리브]를 펴냈다. 주인공 올리브 키터리지의 말년을 절절하면서도 아름답고 우아하게 그려낸 이 소설은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오프라 북클럽 추천 도서'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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