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의 끄트머리에서,
더욱 조용히, 입을 다물고 지내고 싶은 계절이 있다.
12월은 더 그러하다. 그럼에도, 그러지 못하는 시간들을 보내야만 하는 달이기도 하다.
저물어 가는 한 해를 앞두고 무엇이 그리도 요란스럽게 즐거운지는 모르겠으나, 모두는 그토록 한껏 들떠서, 먹고 마시고 춤추고, 끝없이 이어지는 말말말.
한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들끼리 식사 초대를 하고 파티를 계획하고, 서로는 마치 '풍요로움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듯 사치스런 음식들을 한껏 차려놓고 피로한 밤들을 양껏 채운다.
화려한 식탁의 차림들, 화려한 디저트들,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들. 모든 것이 과하게 넘치는 그것들이, 진짜 행복이라는 듯한 몸짓들. 며칠 후면 시댁에서 다시 한번, 그 광경들을 맞닥뜨려야만 한다.
그나마 늘상 일주일 꼬박 함께 지내던 것이 올 해는, 가족들 사정상 5일로 줄었다. 아무리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어머님이 힘이 좀 빠지셨다 해도, 사람의 본래 성정 자체가 어디 가지는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올해 크리스마스는, 좀 덜 화려하고 좀 덜 요란하고 좀 더 소박했으면. 그렇게 이젠 어머님도,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 줄을 조금이나마 아시게 된다면, 하는 바람을 지어본다.
아이의 생일이 있었다.
아이는 내게, 좋아하는 생크림 스페큘러스 케잌를 만들어줄 것을 주문했다. 덕분에 오랜만에, 생크림을 쓱쓱 바른 케잌을 만들어봤다. 이 케잌의 포인트는 신선한 블루베리와 생호두를 얹어야 한다는 것.
투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 내가 만들었지만 너무 맛있어서 자꾸만 손이 갔던 케잌.
이렇게 대충 만든 케잌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화려한 트리 장식이 없어도, 고급진 푸와그라가 없어도, 값비싼 선물이 없어도, 촛불과 꽃으로 장식한 식탁이 없어도, 근사하게 차려입지 않아도, 소박한 음식과 작은 선물을 나누고 시간을 함께 하는 것
우리의 진짜 기쁨은 사실,
그러한 작고 소박한 것들 사이에 있다. 이렇게 지금, 나의 작은 노래를 세상과 수줍게 나누 듯.
언제까지나 그렇게 살고 싶다.
작고 소박한 것, 단순한 것, 그래서 자연을 닮은 것, 그것들과 함께 춤추는 것. 그것이 나의 기쁨이고, 그것이 나의 영원한 노래가 될 것이기에.
이 아름다운, 노래처럼,
누구보다 광대한 그들의 마음
'거리를 나뒹구는 쉬운 마음'
'버려지지 않고서는 가질 수 없는 마음'
그, 마음처럼.
잔나비, < 나의 기쁨 나의 노래 >
별 볼 일 없는 섭섭한 밤도 있어요
오늘도 그런 밤이었죠
창을 열고 세상 모든 슬픔들에게
손짓을 하던 밤
노래가 되고 시가 될 수 있을 만큼
그만큼만 내게 오길
뒤척이다 잠 못 들던 밤이 있는 한
닿을 수 있어요
나의 기쁨
나의 노래되어 날아가
거리를 나뒹구는 쉬운 마음 되어라
이 삐걱이는 잠자리가 나는 좋아요
제 맘을 알 수 있나요
버려지지 않고서는 가질 수 없는
마음이 있어요
나의 기쁨
나의 노래되어 날아가
거리를 헤집으며 텅 빈 눈과 헛된 맘과
또다시 싸워 이길 나의 기쁨 나의 노래야
거리를 나뒹구는 쉬운 마음 되어라
* 메인그림 : 잔나비 2집 '전설' 앨범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