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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틸다 하나씨 Oct 20. 2023

베트남에서 카페 사장으로 살아보니

" CÀ PHÊ_커피의 나라에 살다

2013년 나는 카페 알기를 우습게 알았다.


미국 댈러스에 이민 가 살고 있는 사촌언니가 20년 만에 연락을 했다. 미국 사이언스랩에서 만드는 영양보조제 판매 사업이 한국에서 성공해서 동남아시아 총판까지 따게 되었는데 베트남에서 나와 같이 이 사업을 시작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마침 막내를 출산하고 쉬고 있던 중이라 한 번 해보자고 무턱대고 시작했다. 십여 년 전 베트남에서 가장 어려운 사업분야 세 가지 중 하나가 제약 사업이었건만 나의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디로부터였을까? 


대로변에 쇼룸을 내고 싶었지만 터무니없이 비싼 임대료에 어쩔 수 없이 골목 안 쪽에 자리 잡은 3층짜리 주택을 임대했다. 야자수 나무가 심하게 우거져 밖에서는 집 안이 들여다 보이질 않는 곳이었다. 보자마자 너무 심란해져서 세 번이나 다시 돌아섰지만 그래도 아르누보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예쁜 집 구조는 마음에 들었고 나무를 좀 뽑아내고 열심히 갈고닦으면 예쁜 공간이 되겠다 싶어 계약을 했다. 임대가 끝나고 법인이 나왔지만 여러 달이 지나는 동안 영양 보조제 상품에 대한 등록 허가서는 나오질 못하고 있었다. 일반 비타민류가 아니라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제품이라 검열은 더욱 까다로웠고 결국 등록비용만으로 어마어마한 돈이 드는 상황이 되었다.

그때 나의 십년지기 베트남 친구가 명언을 남겼다.

"베트남에서 돈으로 안될 때 필요한 게 있어."

"그게 뭔데?"

"Much more money!"

"하하하..." 그 노무 머치모어머니가 없는 나는 헛웃음으로 비타민 사업을 잠정 중단해야 했다.

장소는 임대한 상태에서 막막했다. 다시 재기할 때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고, 

그 시간 동안 임대료를 메꿀 수 있는 대체 사업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식당은 자신이 없고 1층에 카페나 차려볼까.

그렇게 나의 카페는 시작되었다
 

지금은 베트남 하노이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예쁜 카페들이 넘쳐나지만

십여 년 전만 해도 하일랜드커피, 카페 쯩우옌 정도의 큰 프랜차이즈와 골목 상권의 작은 로컬 카페들만이 있었다. 그래도 두 곳의 프랜차이즈는 있으니, 카페 재료 공급은 가능할 테고 대략 인테리어 하고 가구를 채워 넣으면 되겠지 했다.

하지만 웬걸... 알아보니 하일랜드와 카페 쯩우옌은 호치민등 각각의 본사에서 직접 모든 물품을 받고 있었고

내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카페 재료 써플라이어라는 업종은 그 당시 없었다. 로컬카페는 모두 베트남식 연유커피나 에그커피를 팔고 있어서 한국식 카페 재료를 구하기가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목록을 정리해 보니 백여 가지가 되는 카페 재료들을 하나하나 발품으로 얻을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다.


카페 차리는 것이 여자들의 로망이라는데 나는 애초부터 그런 로망 따위는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울며 겨자 먹기로 메인이 돼버린 카페사업이었다.

덜컥 얻어버린 주택. 지하 1층 지상 3층의 4개 층 건물...

1층에서 간단히 테이크 아웃 정도만 하려던 애초의 생각과는 달리

4개 층을 모두 카페로 전환해야 했고

덩치가 너무 큰 사업장을 혼자 감당할 수 없어 남편에게 합류해 줄 것을 부탁했다.

나와 남편은 급히 바리스타 자격증 코스를 등록해서 난데없는 커피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급작스럽고도 당황스럽게 시작한 카페에 우리는 생존이 달렸고 열심히 해야 했다.

하지만 1년 6개월간 하루 매출은 5만 원 남짓, 들어오는 베트남 손님들도 모두 셀 수 있을 정도였다.

우리는 이 사업장을 살리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급기야 남편은 로스팅 기술까지 배우며 커피 자판기 임대 사업으로 확장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열심히 달리며 조금씩 이곳을 살려냈다.


아침의 나라 베트남은 5시부터 운동을 하고 6시에 아침식사를 하고 보통 7시 이후면 출근을 한다.

우리도 7시에 가게 오픈을 해서 물청소부터 시작해 땀을 흠뻑 흘리며 건물 전체를 청소한다.

그러고는 마감하는 밤 11시까지 바깥공기 한 번 안 쐬며 열심히 노력했다.

그렇게 1년 반이 넘도록 노렸했지만 매출표를 보며 눈물 흘린 날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눈물로 심은 노력은 헛되지 않았고 10주년이 된 지금은 첫 매출의 수십 배는 더 올랐다.

90% 이상이 베트남 고객층이고 빙수 맛집으로 소문이 나서 이제는 베트남 분들이 맛도 퀄리티도 인정해 주는 카페가 되었다. 처음에는 그렇게도 베트남 손님들이 안 들어와서 대로변의 목 좋은 곳이 아니라 그런 걸 꺼야 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우리 카페가 너무 럭셔리해 보여 비싼 곳일까 지레 겁먹고 들어오질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런 반전이 있었을 줄이야... 

물론 그런 망설임도 있었겠지만, 한국인이 우리나라에 와서 카페를 차린 다하니 그들이 오랜 시간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우리를 조용히 지켜보던 베트남인들의 마음이 열리고 입소문이 퍼지는데 1년 반이 걸렸다. 한국 사고방식으로 6개월 안에 폐업을 결정했었다면 어쩔 뻔했는가. 이후로 하나 둘 베트남 손님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다음번에 친구를 데려오고, 그 다음번엔 가족들을 데려와 우리 카페의 지하부터 3층까지 신나게 가이드 역할까지 해주었다. 그에 더 해 더 큰 반전이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베트남의 상권은 골목 안이 명당이라는 것을 누가 알았을까

오토바이 생활 민족인 베트남인들에게는 찾아가는 문화가 깊숙이 발달되어 있다. 그래서 이쁜 옷가게들도 도무지 알 수 없는 골목 곳곳에 숨어있다. 우리 기준의 목 좋다는 대로변 코너집들은 오히려 불편해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갑자기 정차하기도 주차하기도 불편하기 때문이다. 우리 카페처럼 한가로운 가로수 골목길을 따라 들어오다 널찍하고 안전한 내부 주차장에 오토바이 주차를 편히 할 수 있다면 높은 점수를 주었다. 이런 팁을 누가 알려주었겠는가. 처음엔 난항을 겪었지만 나도 모르게 로또자리를 얻을 꼴이어서 감사할 뿐이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고, 그간 수도 없는 분들이 찾아와 카페 창업에 대한 문의를 하러 오셔서 차라리 베트남에서 카페 차리기 컨설턴트가 되는 게 더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길이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이제는 인테리어로 경쟁하는 멋진 카페가 많아졌다. 경쟁은 심해졌지만 눈물로 갈고닦은 내공이 있어서 그래도 이제는 마음이 단단하고 편안하다.



로부스타 커피 생산 수출국 세계 랭킹 2위의 베트남.

그리고 아름답고 평화로운 커피의 도시 부온마투옷에 세계 커피 박물관까지 보유한 나라이다.

우리는 그런

커피의 강국에 살고 있다

거리마다 노천카페를 즐기는 낭만이 가득한 도시라 많은 사람들이 커피 사업에 매력을 느끼는 곳이다.

하지만 스타벅스보다 훨씬 미리 들어온 커피빈 앤 티리프와 글로리아 진스커피 체인들도 연유커피, 에그커피등을 즐기는 독특하고 견고한 커피 문화를 가진 베트남에서 일찌감치 기브업을 했다.

인구 1억의 매력적인 시장을 뚫고 들어오려 때를 지켜보던 스타벅스가 몇 년 전에 드디어 들어왔지만

사실 별을 보고 있는 상황이 아니다. 스타벅스에 열광하는 한국의 분위기와는 완전히 딴 판이다. 

이렇듯 글로벌 커피 체인의 무덤이라 불리는 베트남이다.

스타벅스의 커피는 ‘카페 쓰어다(연유커피)’에 길들여진 베트남인의 입맛을 사로잡지 못하고 있고

가격면에서도 반 값의 가격에 판매되는 자국민 최대 커피 브랜드인 하일랜드를 이기지 못하고 있다.

인구 60%에 달하는 젊은 층의 사랑을 기대해 보았지만, 버블티를 더 사랑하는 그들의 입맛마저 사로잡지 못했다.


(1,2) 베트남의 핀 커피 문화 (3) 베트남의 커피 농장 ⓒ vinpearl


우리 카페는 베트남 고산지대에서 소량 생산되는 수출용 아라비카 원두로 시나몬 로스팅한 상품을 만든다. 그중에서도 S18 사이즈의 최상급 원두를 구하느라 때마다 애를 먹는다. 그 덕에 우리 커피 아니면 마시지 못하겠다는 고객층도 많이 생겼다. 주로 한국인과 외국인들이다. 아무리 최고의 커피를 만든다 해도 일반 원두커피로는 도저히 베트남 마켓을 뚫고 들어갈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아메리카노보다 많이 팔리는 것이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인기 있는 ‘박씨우(연유커피에 우유를 더한)’이다. 버터 혹은 향신료와 섞은 로부스타 원두를 강배전 한 후 핀으로 추출하여 연유, 요거트, 계란등을 섞어 마시는 베트남만의 커피 입맛에 우리 모두는 두 손을 들고 있는 중이다. 커피 판매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보니 극복의 메뉴가 필요했고 수많은 메뉴를 시도했다. 마침내, 빙수에서 잭팟이 터졌다.


커피의 나라에서 커피로는 승부를 볼 수 없는 재미있는 나라다. 


그런데 사실 진짜 원두맛을 구분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 카페의 아라비카가 인정을 잘 못 얻던 초창기에 남편과 나는 실험을 했다.

한국 손님들이 주로 찾는 에티오피아, 케냐, 콜롬비아 원두와 베트남산 아라비카로 만든 우리 커피를 이름이 쓰이지 않은 종이봉투에 나누어 담고 블라인드 시음회를 했다.

네이밍이 된 커피 봉투에서 내려 줄 때는 모두 에티오피아, 케냐, 콜롬비아 중 하나를 꼽았지만

이름 없는 커피 봉투에서 내려 준 커피에서는 우리 카페의 커피를 1위로 뽑았다.

베트남이 로부스타 생산량으로 세계 2위가 되었지만 

그에 비해 소량 생산되는 아라비카 원두도 아주 훌륭하다는 반증이다.


쌉쌀하고 묵직한 아로마의 로부스타도 물론 매력 있지만

품질 좋은 베트남 고산지대의 아라비카의 풍미는 초콜릿 향을 품으면서도 화사한 산미를 띠고 있어

이름만으로도 유명세를 탄 다른 나라의 커피 맛 그 이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베트남 커피는 품질이 낮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퓨어 로스팅 아라비카 원두는 자국민에게는 선택받지 못하지만

세계에 나가서는 엄지 척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커피인데 말이다. 

베트남만의 두터운 커피 문화에 가려서 빛을 못 보고 있다. 


베트남은 챙겨가지 못하는 게 많아서 참으로 억울할 일이다.


베트남 중부지역의 커피도시 부온마투옷에 있는  '세계 커피 박물관' ⓒ 마틸다 하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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