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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Oct 11. 2019

혼란과 마주하기

비장애 형제 '용용'의 이야기

혼란스러운 감정과 마주해본다. 최근에 토익 시험을 치렀는데 보기 a와 c 둘 다 정말 정답 같아서 어떤 것을 택해야 할지 아주 혼란스러웠고 그것이 곧 복통으로 이어졌던 경험을 했다. ‘혼란스러움’은 내가 무얼 어찌해야 할지 잘 알지 못하는 것,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할지, 가령 누군가 내게 엄마와 아빠 중에 누구를 더 사랑하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의 감정과 비슷한 거 같다. 


나의 엄마와 아빠는 자주 다투었다. 두 사람은 오빠를 양육하는 방식과 오빠의 장애를 받아들이는 방법이 많이 달랐다. 엄마는 내가 10살 즈음이었을 때, 이런 질문을 하셨다. 


“너 엄마랑 살 거야 아빠랑 살 거야?” 


내가 기억하는 첫 ‘혼란스러움’이었다. 둘 중 누군가를 택해야 하는 것은 정말이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둘 다 정답 같은데 하나만 택하라니...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의 부모인 두 사람은 헤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한 집에 살고 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둘의 목소리가 커질 때면 고민한다. ‘누구랑 살지?’ 이제는 아마 답이 ‘그냥 혼자 살자’ 이겠지만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두 번째 ‘혼란스러움’은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이었다. 우리 집에 학습지 선생님과 같은 적당한 낯선 이가 올 때면 내 마음 안에 여러 명의 자아가 등장하여 나를 괴롭혔다. 그들끼리 싸우는 내용은 주로 이런 것들이었다. 


‘저 선생님이 우리 오빠를 본 후 분명 나에게 고생이 많다고 말씀하시겠지? 그 이야기는 정말 듣기 싫은데!’

‘그래도 오빠를 숨길 순 없는 노릇이잖아?’

‘오빠가 아니라 사촌이라고 할까? 잠깐 우리가 돌보고 있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할까?’

‘그러기엔 오빠한테 미안하잖아. 오빠가 원해서 이렇게 태어난 것도 아닌데 오빠가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건 뭔가 잘못된 것이야.’


그 후로도 나의 혼란스러움을 조장하는 여러 자아들의 싸움은 멈추지 않았다. 학창 시절에는 내게 주어진 과제와 동생으로서의 역할만 어떻게든 잘해오면 됐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난 후 조금 다른 종류의 싸움들이 시작되었다. 오빠의 보호자가 될 준비를 해야 하고, 성인이 된 한 명의 주체로서도 나를 잘 지켜내야 한다. 언젠가 한 번은 이런 고민을 했다. 


‘나 혼자만 너무 잘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입고 싶은 옷, 먹고 싶은 음식, 가고 싶은 곳을 망설임 없이 다니는 나인데 오빠는 시설에서 그 세 가지 중 어쩌면 단 한 가지도 하고 있지 못함을 생각하니 괴로웠다. 한참 이러한 고민들로 혼란스러워할 때 즈음, 그 당시 만나고 있던 애인은 내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네가 행복하면 네 오빠도 행복할 거야.’ 이 말이 맞는지 아닌지는 오빠로부터 직접 들은 것이 아니고, 또 들을 수 없기에 알 수 없다. 그저 이것을 믿고 살아갈 뿐이다. 


 혼란스러움은 때로 좌절감으로 이어지기 십상인데, 스스로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질문들을 잘 대답해내지 못하고 그 어디선가 허우적대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는 것이 괴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혼란스러움을 느끼며 수고로움을 겪는 나 자신에 대한 충분한 위로와, 그 과정을 거친 후 내리는 선택과 행위에 대해 존중해주는 연습을 꾸준히 해보려 한다.





Written by 용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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